이경숙李景淑/정종배
묘비 앞면 李景淑무덤
묘비 뒷면
소년시절엔 일정하 민족애의 꽃
청년 때엔 정열적인 어린의의 스승
장년엔 크리스챤홈의 태양
이 나라 MRA운동의 개척자의 하나
순수한 신앙 착한 덕행의 30년
일생은 이 고장 여성의 영원의 거울
1953년 11월 18일 서울대학교 교수 유달영 씀
성천 유달영 선생 개성 호수돈여고
이경숙 3년 내리 담임교사
입학 때는 우울하다
담임을 아버지로 믿고 따라
2학년부터 놀라운 성장에
눈을 몇 번이나 비벼 바라봤다
평균 97점 성적으로 졸업했다
늘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겸손했다
유달영 중매와 주례로 결혼했다
이경숙의 한결같은 신념은
"이 겨레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으로
페스탈로치와 같은 삶을 살고자
개성 큰 학교 스카웃을 외면하고
시골학교 교사로
늘 너그럽고 부드럽고 남 앞에서 말하기 쑥스러워하였지만
불의에는 엄숙하고 날카로운 얼굴로 맞서며
몸과 마음 다 바쳤다
샤머니즘에 완고한 시어머니 시집살이 고달펐으나
"제 며느리는 성인이죠
이 하늘 아래 그런 사람이 또 있을까요
나도 착하고 어진 마음씨에 결국 항복하고 말았어요 선생님"
며느리를 좇아 크리스천이 되었다
성천에게 고백했고
화장터에서 이경숙 몸에서 사리가 나왔다
큰 스승 시인 구상 말년에
불편한 몸을 고물차로 모시고
성천 집에 찾아가 수세하는 두 분의 우정을
지켜보며
아끼는 제자 중 이경숙을 으뜸으로 여긴다며
두 손을 잡아 주었다
아사카와 다쿠미 유택과 남동쪽으로 이웃하여
4월 5일 식목일 전후 다쿠미 선생 추모식
참배객들이 많을 때는
이경숙 선생의 유택을 이용했다
다쿠미 선생과 같은 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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