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망우인문학

2017중랑북페스티발

정종배 2017. 10. 21. 15:46

오전 중랑구립정보도서관 가족과함께 우리고장역사문화 알기 서촌 투어를 시작하였다.

시작 전 횡단보도 건너편 청와대 폭파하고 박정희 목따려 왔다는 무장공비를 맨 처음 막아서다 순직한

두 경찰관 동상 앞에 조화가 즐비하였다.

어제가 경찰의 날이었다.

처음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기념식을 치렀다

행사하며 문대통령의 파격적인 행보는 계속 이어졌다

권위와 목에 힘을 주는 권력의 맛에 마취되어

관계자들과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통치자는 아니길 빌어본다

분명 다른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절이 영원히 살아있길 기원한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시인의 언덕을 올랐다.

가을빛이 완연하였다.

오후에 중랑구 용마폭포에서 여는 북 페스티벌에 참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집사람한테 차량을 가져왔으면 좋겠다는 손전화를 드렸다.


집사람의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집사람이 대답은 당연하다는 생각이지만


지난 번 올림픽공원 전국학교예술교육 페스티벌 참여하여 목적한 바를 이뤘기에

직접 해당하는 중랑구의 행사에 함께 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싶었다.

좀 더 일찍 참여를 중랑구립도서관에 알리지 않는게 아쉬웠다.


청운도서관, 전망 좋은 공중화장실, 도심에서 걷는 포장않된 산길과 절벽을 오르는 내리는 좁고 가파른 계단 서울에서 마음 속에 담아둔 누구에게나 소개하고픈 골목길임, 정주영 회장 집, 김수근 건축가가 지은 집 담장, 청운동 유일의 현대그룹 임원들에게 분양된 아파트, 김상용의 백세청풍, 청운초등학교 담장 밖 송강 정철 시비, 김재규 박정희 대통령의 비극의 장소 무궁화 동산,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경찰 의장대와 사진 촬영, 수성성동 계곡 기린교, 박노수 미술관, 윤동주 하숙집터, 이상의 집, 노천명의 집, 청전 이상범의 집, 통인시장을 둘러 보았다.


초등학생들도 짜증내지 않고 부지런히 걷고 관심을 보였다. 학부모님께서는 여전히 좋아라 하셨다.


집사람이 차동차로 출발하며 곧바로 인도하고 가겠다며 네비 찍을 장소를 알려 달라하였다.

수성동 계곡으로 하려다 통인시장이라 알려주었다.

얼추 12시가 되었다.

세검정초등학교 삼거리를 지났다는 손전화다.

청전 이상범 작업실에서 나와 다음 주 건원릉 투어 약속하고 투어팀과 헤어졌다.

가족들은 통인시장에서 점심을 해결하겠다면 이동하였다.

부지런히 걸었다.

김광규 시인의 옛집 앞을 통과하며 손전화를 받았다.

참여 연대 건물 앞 세월호 리본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통인시장 입구를 통과하며 점심을 해결하여야 하는데 되내였다.

마침 제과점이 보였다.

들어가 3개 2000원 두 봉지 6000원을 계산하고 나와 주차된 차량 밖에서 집사람을 기다렸다.

오지 않았다.

차가 조금 밀린다는 통화 내용을 미뤄 기다리면 되겠다 싶었다.

전화 벨이 울렸다. 받았다. 토속촌삼계탕집을 지났단다.

시직단 못 미쳐 뒷길로 해서 통인시장 건너편으로 되돌아 오라하였다.

조금 있다 전화 왔다 사직터널이란다.

목소리가 높았다.

다시 설명하였다.

조금 있다. 다시 전화를 받았다.

집으로 갈테니, 택시 타고 일을 보란다.


맨 처음 전화 할 때도 택시 타고 일을 보라 하여

간신히 협의하여 김치 담는데 숨 죽은 시간을 이용하여 차를 인도하겠다는 사모님 엄명을

한참이나 지나쳤으니

당연하겠지만

이왕 나오셨으니

내 앞으로 차를 몰고 오라 다시 전화하여

옥인 파출소  네비를 찍고 왔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올랐다.

집사람과 나와 꼭지가 돌면 말이 없다.

차키를 내던지고 핸드백을 집어들고 풀풀 날랐다.

저런저런 하고 속으로 화를 품었다.

신호를 받고 좌회전하며 횡단보다 신호등 바뀔 때까지 멈춰 사모님께서 택시를 타는 걸 보았다.

원래 전화 약속은 7211 지선버스 평창동 버스정류장에 내려 집에 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홧김에 00질한다는 말대로

택시를 집어타고 가버렸다.


꼭지다 돌았으나 어디다 화풀이 할 대상인 사모님께서 날아가버리셨다.

빵 봉지를 벗겨내 죄 없는 빵을 우걱우걱 맛도 모르고 씹었다.

골고루 먹어보겠다고 산 빵이 여섯 종류였다.

네 개 연속으로 다른 종류의 빵이었으나 맛은 하나 화를 억지로 삼켰다.

간간 생수로 목을 추겼다.

역류성식도염 이후로 음식 먹으며 물을 함께 마시지 않았지만

웨낙 화와 함께 먹으며 체하지 않으려니 어쩔 수 없었다. 

네 개의 빵을 먹으니 북악터널 지나 국민대 앞을 통과하여

길음램프까지 왔다.

사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당근 받지 않았다.

언제까지 가나 보자.

만약 받지 않으면 행사 끝나고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 다짐했다.


마음을 진정 진정 가라앉히고 학교에 들어가 책꽂이에 책을 쇼핑 빽에 쓸어담아

영업용 택시 운전으로

행사장을 향했다.

손전화로 집사람한테 화를 풀어내겠다 전화를 하였다.

당연 받지 않겠지 그런데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차분하고 평상시 호흡이었다.

그럼 그렇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잘 하고 조심히 들어오시라는 말씀이셨다.

곰곰 생각해도 쉽게 해석이 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며 그래 들어가 듣겠다며 행사장에 책을 전시하였다.


박인환 이중섭 최학송 조봉암 함세덕 한용운 방정환 아사카와 다쿠미 도산 안창호 유상규 이인성 등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은 책을 뒤적거리며 팔 수 있느나며 멈춰 한참을 보냈다.

고마운 일이다

망우리공원에 이렇게 유명하신 분들이 묻혀 계시나며 다시 한 번 둘러 보시겠다며

여지껏 모르고 한 바퀴하였지만

이제부터는 좀 더 재미와 스토리를 엮을 수 있어 좋다며 고마워하였다.


60대 여인 창원 출신이라며 김희수 이사장님의 배워야산다 책을 뒤적이며 이웃 동네라 잘 아신다며 관심을 보이며 자랑스러워하셨다.

후지모도 다쿠미 사진집을 보면서 옛 추억에 한참을 잠기다 가셨다.

기록의 위대함을 확인하였다.

언제 어디든 망우리공원 홍보를 위해서는 달려가리라 마음 먹었다.


행사를 마무리 짓고 학교에 가 책을 넣고 집으로 달려왔다

토요일 오후 정체 정말 심하였다.

아리랑고개 앞 두고 남규한테 전화하여 요즘 피자집 운영에 대해 묻는 전화를 하였지만

차량은 멈춰 서 있어

삼거리에서 북아스카이웨이 쪽으로 차를 돌려 집으로 왔다.

늘 그렇듯 환한 미소로 작은 눈을 반짝이며 반겼다.

웬 일인가 먼저 답이 왔다.


10일만에 남편을 여원 건너 동 형님을 만났단다.

택시를 내리고 걷는데

낮은 시력으로 어떤 분이 다가오며

고맙다며 손을 잡고

살아 있을 때 말이라도 곱게 할 것인데라며

눈물 바람을 하여

사모님께서 속을 뜨끔하였단다


그래 천사를 만나

이혼 당하지 않으셨군요


어젯밤 간만에 사랑을 만끽하였다.

가을 단풍 구경 갈 필요도 없을만큼

인복이란 이런 것이 아닌지


그래 나는 장가 잘 갈 사주가 분명하다.

꼭지가 돌 때는 서로 부딪치지 않는 게 최 상책이라는 걸 오늘도 경험하였다.


만약 집사람에 조수석에 탓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상상만 하여도 몸서리처진다.


정말 현명한 사모님이시다.


팔불출의 자랑질이다.


용서들 하시라.

 





 

 

 

 

 

 

 

 

 

 

 

 

 

 

 

 

 

 

 

2017용마폭포 문화예술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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