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망우인문학

4.19혁명 60주년

정종배 2020. 4. 19. 03:51











 

 

 

 

 

 

 

 

 

 

 
4.19혁명 60주년/정종배
 
1960년 4월 19일 오후 4시에 쓴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 유서
 
수송국민학교 4학년 강명희 추모시
 
수송국민학교 학생 김한승 총에 맞아 사망하자
4 5 6 고학년 학생들이 1 2 3저학년은 학교에 있게하고
시위에 참여 악을 발악발악 해대 주위 어른들이
이제 그만 진정하라해도 계속 이어가
그 시위대 주변을 피했을 정도로 씩씩했다고 전해진다
4.19혁명 계기수업 언제부턴가 할 수 없었다
 
4.19혁명 참여 S대 법대졸
참척당한 망우리공원 묘비
언제인가 깨트려져
구리둘레길 제1길 길섶의 석축
모퉁이돌이 되었다
 
아버지 부재를 인정하지 않고
홀로 남은 어머니
게임으로 돈 벌어 지키겠다
고1 2학기 허송하다
고2 1학기 망우리공원 세 번 돌며
저기저기 묘비 읽고 난 뒤
다시 공부를 시작한
싸이코박사 이동훈
하버드대학원 유학 중에 있다
 
망우리공원 대향 이중섭 화백 유택 조각 묘비
제작한 조각가 차근호
1925년 출생지 명확하지 않고 1948년 평양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미술동맹에 참여하지 않고 숨어 있다 1.4후퇴 때 월남했다. 1952년부터 광주에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이중섭 화백을 친형처럼 따랐고 구상 시인과 이중섭 화백 청량리 뇌병원에서 적십자병원으로 옮겨 입원시켰으며 망우리 이중섭 묘지 쓸 때 "중섭이 형을 따라 가겠다"고 몸을 던지는 소동이 있었다
과도정부 '4.19혁명 기념탑' 제작 동아일보사 공모전 총 76점 응모 당선작 없는 건립위원회의 이윤형 김영중 최기원이 합작한 작품과 차근호 작품을 9월 6일 가작으로 뽑았다. 두 팀이 합작하든지 단일안을 다시 제출하도록 하였다. 심사위원 김환기 주원 김중업 김재원 최순우 이상범 방택근 응모 작가 명단에 최만린 최기원 김영중 등 쟁쟁한 작가들도 함께 있다. 다른 작가와 합작 권유를 받은 차근호는 단일안을 내지 못하고 심사위원이 특정 학교와 연관된 점이 지적되며 편파판정에 관한 시비가 일어나자 재공고 하였고 결국 12월 14일 이일영의 안이 1등 차근호 안이 2등으로 선정되었다. 차근호는 조선일보에 유서를 보내고 12월 17일 조각연구소에서 음독 응급처치 했지만 19일 35세 생을 마감했다. 심사위원이었던 이병도는 "이일영이 안이 서양의 것을 모방하지 않은 창의적인 것으로 차근호 것과는 200점 이상이나 차가 났다."고 술회하였지만, 박고석은 "패거리와 정치에 의해 좌우되는 남한 화단에 대해서 부조리에 대해 죽음으로 항거하였다."고 반박한 바가 있다.
유서에 "행여 4.19탑 설계 및 모형 제작 등에 소요된 빚더미에 절망한 음독으로 오해말라"고 쓰고, 지인에게 갚아야 할 돈과 소소한 술집 외상에 대한 당부가 적혀 있었다
홍제동 화장터 불구덩이에 처넣고 시인 구상과 일초 시인 고은 쐬주를 밤새 마셨다
4.19기념탑은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이 바뀌며 기념탑 건립 주체도 바뀌는 우여곡절 끝에 친일 전력의 조각가 김경승 작업으로 마무리 되어, 현재 수유리 현충원 '사월혁명기념탑'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부조, 연무대 무명용사탑, 육군 상무대 을지문덕상, 육사 화랑상과 범무상, 망우리 화가 함대정 묘비 등 작품과 서라벌예술대학에서 조각을 가르쳤다. 1959년 우리나라 최초 조각 연구소를 서울 정동에 '차근호 조각 연구소'를 개소하는 등 의욕적으로 활동했다
 
사진 중 묘비 제막 후 김이석 차근호 나오는 사진은 김이석 작가 아내인 박순녀 소설가 손 글씨 제공입니다
사진은 2020년 4월 16일 조현우 선생님 4월 17일 장훈고 제자 강남욱 부부 일행 망우리공원 답사 기념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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