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신문 방송 인용

정종배 교과서에 실린 작가의 묘가 방치돼 있어 안타까웠죠

정종배 2017. 3. 2. 10:07

한국일보

정종배 "교과서에 실린 작가의 묘가 방치돼 있어 안타까웠죠"

입력 2011.09.08 21:45 수정 2011.09.09 13:4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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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최학송 묘지관리인 정종배 서울 청량고 교사제자들과 함께 벌초하고 사비 들여 봉분도 정비

'그믐밤, 탈출기 등 명작을 남기고 간 서해는 유족의 행방도 모르고 미아리 공동묘지에 누웠다가 여기 이장되다. 위원 일동.'(서해 최학송 묘비석)

만해 한용운, 소파 방정환, 죽산 조봉암 등 근ㆍ현대사의 거물들이 묻혀 있는 서울 중랑구 망우리 추모 공원 한 쪽엔'빈궁 문학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최학송의 무덤도 있다.

간단한 이력이 새겨진 문학비, 잘 닦인 묘비석, 동그란 봉분. 지금은 여느 유명 인사들의 묘와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이런 형태를 갖추기까진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뒤따랐다.

서울 청량고 국어 교사이자 시인인 정종배(55)씨는 2002년 망우리 추모 공원을 산책하다 최학송의 묘를 우연히 발견했다. 기분 전환을 하면서 시상도 떠올리자는 생각에 망우리 공원을 다닌 지 2년쯤 지났을 때였다. "아카시아 나무 뿌리가 무덤 위를 덮어 봉분은 다 무너져 내렸고 잡초가 묘비석을 뒤덮어서 잘 보이지도 않았죠. 흉물스러웠어요. 남ㆍ북한, 연변 조선족 학교의 국어 교과서에 모두 실리는 작가의 묘가 이렇게 방치돼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최학송의 묘를 관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4~5년 전부터. 서울시에서 "후손이 나타나지 않는 무연고 묘를 정리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처음엔 벌초하는 수준에서 머물던 것이 2006년엔 사비로 잔디를 입히고 무너진 봉분을 다시 덮는 데까지 미쳤다. 또 작년 청담고 재직 당시엔 방과후학교인 '망우추모공원 저명인사 탐구 및 답사반'을 만들어 현재 서울 청량고에서도 운영하고 있다.

정씨의 이야기를 들은 제자들도 동참했다. 학생 30여명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 최학송 묘는 물론 곳곳에 있는 무연고 묘의 잡초를 뽑고 비석을 닦았다. 청담고 3학년 조호철 군은 "선생님이 박인환 시인의 묘 앞에서 비석에 적힌 '세월이 가면'을 읊는 걸 듣고 너무 감명 받았다"고 했다. 학생들은 작년엔 관할 구청에 건의해 봉분을 위협하던 아카시아 나무를 베어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정씨는 현재 최학송의 정식 묘지관리인으로 서울시시설관리공단에 등록돼 있다. 10년 넘게 추모공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그를 보고 관리사무소 소장이 제안했다. 북한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의 가족들 대신 묘지 관리 비용을 내는 등 사실상 후손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내년엔 최학송 사망 80주기를 맞아 추모식도 열 계획이다.

"최학송 100주기가 되는 20년 뒤에 전 많이 늙어 있을 겁니다. 그 땐 제자들이 주축이 돼서 추모식을 열고 묘지도 더 잘 관리해 주겠죠."

●서해 최학송

소설가. 1901년 함경북도 성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각지로 전전하며 밑바닥 생활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쓴 <탈출기>, <홍염>, <기아와 살육> 등을 통해 신경향파문학의 기수로 각광 받았다. 32년 31세의 일기로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