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김말봉 소설가

정종배 2022. 2. 9. 08:59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김말봉 소설가

부산 최초 신춘문예 당선자 대한민국 최초 여성 장로 및 여성 작가 최초 예술원 회원
소설가 끝뫼 김말봉(金末峰, 1901.4.3.~1961.2.9.) 61주기


길섶의 꽃 한 송이 귀하지 않은 적 없다
돈을 벌 때 억센 어버이 손발도 자식에겐 언제나 따뜻하다
부산에서 태어나 함양군 안의에서 자란 끝뫼 김말봉
딸만 셋 막내로 사내 옷 입혀 여장부로 자랐다
1917년 일신여학고 3년 수료하고 서울 정신여학교 3학년 편입할 때
목포 박화성 소설가도 전학 왔다 기독교 엄격한 학풍에 숙명여학교로 전학 갔다.

1932년 중앙일보 필명 보옥으로 「망명녀」로 부산 출신 최초 신춘문예 당선
1935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설의식 주선으로 연재한
대중소설 「밀림」으로 대중소설 발표하고 여류 최초 대중소설 신문연재
순수문학에만 초점을 맞춘 문단에 “순수 귀신을 버려라” 일갈했다
1936년 1월 19일 죽은 남편 전상명이 좋아했던 ‘찔레꽃’을 제목으로
1937년 《조선일보》 이은상 편집국장 스카우트로 연재한
통속소설 「찔레꽃」으로 전국을 흔들어 신문 판매 부수가 놀랍게 늘었다
전처소생 첫째 딸 혜금이 원고를 들고서 마감 시간 맞추려 부산역으로 뛰었고
여고생 한무숙이 삽화를 그리다 서울로 올라와 소설가로 등단했다
오월이면 망우리 유택 앞에 찔레꽃 향기가 미어진다
경신학교 4학년 김동리 수필 쓰게 하여 신문에 실어주고
노산 이은상 씨앗 아들도 거둬주며
일본어로 소설 쓰기 거절하고 해방까지 절필했다.
1948년 공창제 폐지 여성해방운동 박애원 설립 운영하며
1954년 최초 여성 장로 1957년 여류작가 최초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살 첫사랑 전상명을 첫 번째 S언니 김경순에게 양보하고
일본 유학 동지사대 1년 후배 정지용 청혼도 거절했다
목포 사람 이의현과 일본에서 동거했다는 설도 있.다
1923년 김경순이 1남 1녀 두고 사별한 뒤
전상명이 보통학교 여선생님 여운영과 동거하여
홧김에 은행원 이석현과 결혼했다 혼인신고 하지 않고 작파했다
끝뫼의 출장지 평양행 열차를 수주 변영로 귀띔으로 전상명이
우연을 가장하여 만난 뒤 애정 도피행각을 벌이다 차지했다
1946년 혜금의 남편, 사위 금수현이 작곡한 가곡 를 작사하고
두 번째 남편 호걸 아나키스트 이종하 묘지 오른쪽에 누워 있다
이종하의 둘째 아들 이현우 방랑시인으로 김관식 천상병과 더불어
당대 3대 기인으로 불리며 「끊어진 한강교에서」라는
프랑스 시인·소설가인 아폴리네르풍 시로 유명했다
전처소생 가리지 않고 오롯이 원고료 받아 길러내며
6.25한국전쟁 임시 수도 부산에서
누구에게나 뻣뻣한 목 시인 박인환의 사과받고
김동리 소설 「밀다원시대」 시인 전봉래 자살과
아동문학가 강소천 구술을 바탕으로 한 소설 「흥남철수」
소설가 오영수와 잠자리를 깔아주고
후원받지 않은 예술인 손으로 꼽을 수 있듯
서울 수복 후 서울살이
조선신학교 교내 서울성남교회 새벽예배 빠트리지 않고 오간
서울역 앞 동자동 18번 20호 단층 양옥 젊은이들 드나들어
김환기 화백 평생 후원자로 '우주' 시리즈
2019년 132억 5천만 최고 경매 내놓은
전처소생 둘째 딸 재금의 남편, 사위 마테 김과 신상옥 감독 등
밝은 안목을 틔워주듯 망우리 유택 앞 찔레꽃 피고 진다.

1955년 5월 미국무성 초청으로 도미하여
6월 28일 루즈벨트 대통령 부인과 간담회
6월 29일 소설 『대지』의 작가 펄벅 여사와 만나 하루를 같이 보냈다
2017년 늦가을 이종하 증손자 결혼 앞두고 신부와 성묘할 때
또랑시인 마주해 이야기를 나눴고
2020년 4월 말 “순수 귀신을 버려라” 말에 눈이 번쩍 띄워
부산 선적 고등어잡이 등명 208호 박철웅 선장이 휴가 중 참배했다
2021년 코로나 팬데믹 늦가을 좌측 위에 있던
이종하 무덤을 김말봉 유택과 나란하게 옮겼다
비로소 정동향 어깨를 나란히 가족묘지로 거듭났다

앞에서 유명인사 묘역을 답사를 시작할 때
가장 가까운 유택은 소설가 끝뫼 김말봉이다.
서거 1년 후에 세운 묘비는 봉분에 바짝 붙어있다.
묘지번호는 100768번이다.
검은 오석의 묘비 앞면에는 시암 배길기 서예가 글씨인
‘作家金末峰長老之墓(작가김말봉장로지묘)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 푸른날개에서’.
「푸른 날개」는 1954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이다.
뒷면에는 그의 신문 연재소설 대표작인 「밀림」과 「찔레꽃」 등이 새겨져 있다.
옆면에는 묘비의 제작날짜인 ‘1962년 2월 9일 문우와 교우들이 세우다’가 적혀 있다.
김말봉 묘지와 조금 떨어진 오른쪽 위에 자리했다 지난 해 가을 옮겨 나란히 잠든 남편 낙산 이종하(李鍾河, ?~1954) 묘지의 흰 대리석 묘비 뒷면에는 네 명의 아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오른쪽 둘은 이종하 첫째 부인의 아들이고 왼쪽 둘은 김말봉이 낳은 아들이다.
두 분의 묘지 방향은 정동향 9부 능선이다.
명당수인 서출동류 전형적인 돈이 모이는 형국이다.
좌청룡 우백호가 서로 감싸 구리시 교문사거리에서 합수하여 왕숙천으로 흘러간다.
조산인 천마산은 문필봉으로 귀인격이다.
천마산 지맥의 최고의 명당과 인물은 두물머리 여유당 다산 정약용이다.

오뉴월이면 망우산에 흐드러진 큰금계국
에서 김말봉 묘역 가는 길에도 번져 있다
망우리역사문화공원에 큰금계국을 최초로 심은 이는
9.28 수복 후 미군에 의해 평남도지사 대리로 임명되었을 때
이승만의 지휘를 따르지 않아 눈 밖에 나고
1952년 8월 대통령선거 조봉암 후보 선거운동본부
윤길중 사무장 아래 사무차장으로도 활동했고
1954년 1월 “정부 시책에 불만을 품고 사회민주당추진위원회를 결성하는 한편 이승만 대통령 살해 음모를 꾸민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됐다는 신문지상에 이름이 올려졌다.
연행된 후 10개월 동안 11차례의 군사재판 끝에 징역 7년의 구형을 받고 사흘 뒤 다가온 선고공판을 기다리던
1954년 4월 16일 밤 헌병총사령관 원용덕 중장 신당동 집에서
1공화국식 전형적인 권력 암투에 깔려 몰래 처형돼 방공호 속에 묻혔다.
1년 후 투서 사건으로 밝혀진
불운한 정치하수인 서북청년단 부위원장이었던 김성주
외양 선원이던 형제가 씨를 뿌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망우산 동쪽 능선 구리둘레길 제1코스
지석영 가족묘지 뒤 길섶 옆 김성주 묘지였다.

각종 자료에 끝뫼 선종 1962년도로 되어 오류 신고를 하였는데 바로 잡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