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시

팥배나무

정종배 2023. 4. 24. 09:18

팥배나무

신록의 계절이다
이맘 때는
어느 숲에 들어가도
곧게 자란 팥배나무 꽃이 핀다
숲길이 환하여 발길이 가볍다

나목들 사이에 눈에 띄는
꽃을 피워
봄이 왔다 알리는 여리꾼인
생강나무 진달래도
꽃만으로 세상을 살 수 없다고
신록의 숲을 함께 일군다

고향 한 우물 먹고 자란 알친구
지난해 늦가을
폐암 4기 판정 받아
모든 이가 힘들었다
한겨울 나목도 봄이면 꽃이 피고
이파리가 자라는걸 생각하라
페친들 좋은 글을 퍼나르며
부산 목포 광주 나주 강진 평택 부천 김포 시흥 서울
뿔뿔이 흩어져 살지만
병이 깊은 친구를 위하여
왕구데미 당산나무 숲그늘 아래 놀던
코 흘릴 적 마음을 모았다

지난 겨울 맨발로 걸으며
표적치료 다섯달만에
5Cmm 종양이 사라져
순천에서 투병생활 끝내고
오늘 광주 집으로 들어와
저녁먹고 걸으려 나오며
통화하는 목소리가 신록의 이파리다

숲속에서 꽃이 피고 지는 지
티내지 않고 묻어 살아가기 싶지 않다

어느 숲 팥배나무 한 그루로
서 있고 싶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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