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시

인동초

정종배 2018. 6. 22. 04:56

 

인동초

 

      정종배

 

 

열다섯번 고3담임 맡으며

처음으로 자퇴생을 처리하고

늦은 오후 퇴근길

1호선 제기동역

할배 할매 전동차에 올라타자

판매원 가위를 손에 쥐고 썰을 푼다

 

냉동육도 짤리고

닭다리가 단번에 짤려나갑니다

자유자재

맘대로

맘 먹은대로

짜르고 싶은 것은 다 짜릅니다

사모님께 선물하세요

사모님

마음대로 안된다고

남편은 자르지 마시길

삼천리 금수강산 가로막는

휴전선도 싹뚝 잘라 버리는

하지인 오늘은 특별히 시중에 만원인데

이 곳에선 단돈 3000원

 

돈 몇 푼 들지 않고

소리 소문 없이 짤라 버릴 놈 삼삼하여 콧노래 흥얼대다

인동초 꽃보다 더 귀한 녀석들 가르친다

필설로 잘못을 얼마나 저질렸는가

노을이 가장 늦게 스러지는 오늘 하루

내 혀와 두 손과 온몸이 쩌릿쩌릿 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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