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도 짧은 혀는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때 쓰길 아침기도 드리며 다짐한다 압력솥 쌀 익는 소리 갈수록 보드랍다 밥 뜸드리는 냄새로 고슬한 하루이길 봄 꽃이 핀다 꽃잎은 혓바닥이다 메마른 봄하늘 앓은 소리 드높다 봄볕 꽃눈 잎눈 핥는 아름다운 불륜의 향기가 차올라 천지가 꽃이.. 정종배 시 2018.03.28
진관사 골은 그냥 흐르지 않는다 물을 채워 흐른다 물소리 잦아든다 골짜기 깊이는 그대로다 함월당 지붕 위로 달빛이 어제보다 배부르다 달의 크기는 변함없다 진관사 소나무밭 청자빛 스며든다 달빛이 눈부시게 검푸르다 멧돼지 임신기간 춘궁기다 아미타불 마애불 곁으로 냅다 뛴다 .. 정종배 시 2018.03.27
봄 봄 외치지도 목소리 높이지도 거리에 들리지도 않는다 오래된 가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꽃눈에 향기를 틔운다 지치지도 않으며 기 꺾이는 일도 없다 세상에 화려하게 꽃잔치 펼치니 섬들도 그의 방문을 기뻐한다 네 손을 붙잡아 너를 빚어 만들고 꿈이 되고 빛이 된다 앞을 보.. 정종배 시 2018.03.26
꽃샘추위 꽃샘추위 봄눈이 내렸다 퇴근길 1호선 전동차 좌석에 스팀이 들어왔다 고향집 아랫목에 둘러 앉아 한겨울밤 고구마 깎아 먹던 추억을 되새긴다 봄눈 녹아 계곡물 불어나면 숲길이 환하게 살아나고 얼었던 나무 물관 터지는 소리에 생강나무 꽃눈 틔운 향기가 차오르면 까치집 둥.. 정종배 시 2018.03.23
봄눈 봄눈 춘분날 봄눈이 내린다 애들아 봄눈이다 창문을 열어라 마지못해 창문을 열고 난 뒤 끝이다 교실 안 이야기가 흩날려 켜켜이 쌓인다 새 학년 새 친구 얼굴이 이미 봄 봄눈이다 정종배 시 2018.03.22
이른 봄 이른 봄 결혼 35주년 개인전 뒤풀이로 늦은 밤 대리운전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불만을 터트린 마눌님 각방 쓰고 깨지 않게 조심히 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남편을 털모자 눌러쓰고 파자마 바람으로 손 흔들어 배웅하는 새색시 버스 뒤쪽 빈 좌석 가리키며 .. 정종배 시 2018.03.06
봄비 봄비가 환하게 그려 놓은 숲길은 봄이 오는 소리로 분주하다 얼음 녹여 동그랗게 지난 겨울 추위를 앙금으로 노래하다 멧돼지의 효자손인 소나무 벌거벗은 밑동에도 봄은 왔다 저렇듯 봄맞이로 밑동을 허옇게 내준 적이 있는가 정종배 시 2018.03.04
방음벽 최강 추위 이어지는 입춘 절기 오후 4시 30분 겨울 볕이 방음벽에 내려 앉는다 능소화 마른 줄기 움추린 새움에 안부를 묻는 듯 참새 떼가 잔 가지를 오르내리며 얼지말고 깨어있으라 부지런히 추위를 쪼아대고 봄볕에 내걸을 나뭇잎으로 한참을 머물고 머물다 조금만 더 견디시라.. 정종배 시 2018.02.13
겨울 숲 겨울 숲 숲길을 낮달과 걸었다 이른봄부터 나무와 풀꽃들 누구보다 치열했다 아무도 다투지 않았다 그 누구도 견줄만한 가치가 없었다 달항아리 내 사랑아 정종배 시 2018.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