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시
동자상
정종배
2021. 2. 5. 14:01
아침이 늦게 오고
냇물이 느긋하게 흘러가는 연서로 48길
눈을 뜨면 삼각산 기자봉 민대머리 누워버린 소나무가
그동안 이른 아침 출근하여 쌓아올린 구업을 위로한다
아점 먹고 눈 쌓인 마실길을 걷는다
다양한도시생태늪 나무데크 넘보는 갈대꽃에 내려앉은 눈송이가 된바람에 흔들리고
겨울볕에 녹아내려
북방산개구리 울음소리 얼어터져
오는 봄이 주춤댄다
은평뉴타운 조성하며 이말산 내시묘역
몇 점 건져 모셔놓은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뜰안의
문인석 무인석 혼유석 동자석 묘비 중에
글자 한 자 읽을 수 없는 묘비 옆
눈송이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서
한 군데 죽은 곳 없이
입술을 꼭 다문 동자석이
내 무덤 앞에 서 있다면
달과 별 햇님과 피붙이 옛 여인
어느 누구 한 사람 찾아오지 않아도
이승의 미련 한 점 없으리
잔설 녹은 갈대꽃 물방울 떨어지는 찰라에
두 눈과 두 귀로 들어오는 세상보다
나가면 죄가 되는 입말을 줄이는
마스크를 쓴 채로
세상을 즐기는 산보길 그나마 다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