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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의 날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정종배 2021. 11. 1. 16:47

한국 시의 날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세계 시의 날: 시의 활성화와 언어의 다양성 증진을 위해 제정된 날. 매년 321일로, 1999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제정했다. 시의 사회화 기능을 활성화하고 청소년들로 하여금 시의 근원적 가치를 발견하도록 하며 이를 통해 문화교류를 강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한국 시의 날: 한국에서는 이와는 별도로 매년 111일을 시의 날로 제정해 기념하고 있다.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시인으로는 김상용 김동명 김영랑 박인환 등이다.

김영랑 시인은 1990년 용인 천주교묘지로 이장하였다. 2018년 독립운동유공자로 건국포장 서훈을 받았다. 보훈처에서 대전현충원으로 모시겠다고 유족들 서명까지 마쳤으나 망우리공원에 재이장이 가능하다면 기다리겠다며 포기하고 기다리고 있다.

김동명 시인도 2012년 강원도 사천 고향 납골당으로 이장하였으나 망우리공원에 재이장이 가능하다면 모시겠다고 후손들이 승낙하였다.

 

 

수선화(水仙花) / 김동명

 

그대는 차디찬 의지(意志)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의 위로 나는

애달픈 마음

 

도한, 그리고 그리다가 죽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또다시 죽는

가여운 넋은 아닐까

 

부칠 곳 없는 정열을

가슴 깊이 감 추이고

찬바람에 빙그레 웃는 적막한 얼굴이여!

 

그대는 신의 창작집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불멸(不滅)의 소곡(小曲),

 

또한, 나의 작은 애인이니

아아, 내 사랑 수선화야!

나도 그대를 따라 저 눈길을 걸으리

 

김동명 시인이 영생고보 동료이자 후배 교사인 백석 시인을 그린 시로 김동명 시인의 제자인 김동진 작곡자가 단숨에 악보를 그렸다고 알려졌다. 김동명 시인의 내 마음 파초보다 수선화가 덜 알려진 것은 남과 북 그리고 직장에서 까칠한 김동명 시인이 김동진 작곡가의 친일 전력을 알고서 자신의 뜻을 전한 뒤부터라 알려졌다.

 

 

독을 차고

김영랑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훑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고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 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듸!' 독은 차서 무얼 하느냐고?

 

!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인천항 / 박인환

 

 

사진잡지에서 본 향항 야경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중일전쟁때

상해부두를 슬퍼했다

 

서울에서 삼천 킬로를 떨어진 곳에

모든 해안선과 공통되어 있는

인천항이 있다.

 

가난한 조선의 프로필을

여실히 표현한 인천항구에는

상관도 없고

영사관도 없다

 

따뜻한 황해의 바람이

생활의 도움이 되고저

냅킨 같은 만내로 뒤어들었다.

 

해외에서 동포들이 고국을 찾아들 때

그들이 처음 상륙한 곳이

인천항구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은주와 아편과 호콩이 밀선에 실려오고

태평양을 건너 무역풍을 탄 칠면조가

인천항으로 나침을 돌렸다.

 

서울에서 모여든 모리배는

중국서 온 헐벗은 동포의 보따리같이

화폐의 큰 뭉치를 등지고

황혼의 부두를 방황했다

 

밤이 가까울수록

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와

주둔소의 네온싸인은 붉고

짠그의 불빛은 푸르며

마치 유니온 작크가 날리든

식민지 향항의 야경을 닮아간다

조선의 해항 인천의 부두가

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

상해의 밤을 소리없이 닮아간다.

<신조선, 1947. 4.1>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 박인환

 

 

동양의 오케스트라

가메란의 반주악이 들려온다

오 약소민족

우리와 같은 식민지의 인도네시아

 

삼백년 동안 너의 자원은

구미 자본주의 국가에 빼앗기고

반면 비참한 희생을 받지 않으면

구라파의 반이나 되는 넓은 땅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가메란은 미칠 듯이 울었다

 

오란다의 58배나 되는 면적에

오란다인은 조금도 갖지 않은 슬픔에

밀시(密柹)처럼 지니고

육천칠십삼만인(六千七十三萬人) 중 한 사람도 빛나는 남십자성은

쳐다보지 못하며 살아왔다

 

수도 바다비아 상업항 스라바야 고원분지의 중심지

반돈의 시민이여

너희들의 습성이 용서하지 않는

 

남을 때리지 못하는 것은 회교서 온 것만이 아니라

동인도회사가 붕괴한 다음

오란다의 식민정책 밑에 모든 힘까지도 빼앗긴 것이다

 

사나이는 일할 곳이 없었다

그러므로 약한 여자들은 백인 아래 눈물 흘렸다

수많은 혼혈아는 살길을 잃어 애비를 찾았으나

스라바야를 떠나는 상선은

벌써 기적을 울렸다

 

오란다인은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처럼

사원(寺院)을 만들지는 않았다

영국인처럼 은행도 세우지 않았다

토인(土人)은 저축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저축할 여유란 도무지 없었다

오란다인은 옛날처럼 도로를 닦고

아시아의 창고에서 임자 없는 사이

보물을 본국으로 끌고만 갔다

 

주거와 의식은 최저도(最抵度)

노예적 지위는 더욱 심하고

옛과 같은 창조적 혈액은 완전히 부패하였으나

인도네시아 인민이여

생의 광영은 그놈들의 소유만이 아니다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인민의 해방

세워야 할 너희들의 나라

인도네시아 공화국은 성립하였다 그런데

연립 임시 정부란 또 다시 박해다

지배권을 회복하려는 모략을 부숴라

이제는 식민지의 고아가 되면 못쓴다

전인민은 일치단결하여 스콜처럼 부서져라

국가방위와 인민전선을 위해 피를 뿌려라

삼백 년 동안 받아온 눈물겨운 박해의 반응으로

너의 조상이 남겨놓은 저 야자나무의 노래를 부르며

오란다군의 기관총 진지에 뛰어들어라

 

제국주의의 야만적 체제는

너희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욕

힘 있는 대로 영웅 되어 싸워라

자유와 자기보존을 위해서만이 아니고

야욕과 폭압과 비민주적인 식민정책을 지구에서

부숴내기 위해

반항하는 인도네시아 인민이여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워라

 

참혹한 옛날이 지나면

피 흘린 자바섬에는

붉은 칸나 꽃이 피리니

죽음의 보람은 남해의 태양처럼

조선에 사는 우리에게도 빛이려니

해류가 부딪치는 모든 육지에선

거룩한 인도네시아 인민의 내일을 축복하리라

 

사랑하는 인도네시아 인민이여

고대 문화의 대유적 보로 로도울의 밤

평화를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가메란에 맞추어 스림피로

새로운 나라를 맞이하여라

(1948)

 

시인 박인환은 일제 치하를 거친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인 인도네시아를 향한 강한 동질감으로 제국주의를 비판한 시로 박인환의 시적 대상이 폭넓었다는 것을 드러내

그의 대표시로 평론가들은 말한다.

 

망우리공원에서 보성 채동선음악당 뒤 부용산으로 이장한 채동선 작곡가는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내 마음은> (김동명), <새벽별을 잊고>(김상용), <모란>(김영랑) 등을 작곡하였.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은 이진섭에 의해 작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