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시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
정종배
2021. 11. 28. 01:08
1921년 11월 27일에 태어난
시인 김수영
어제 오후 인사동 인사아트플라자 갤러리 5층 르프랑
시인 김수영 탄생 100주년 기념전
아 김수영
경건하고 찬찬히 보았다
도봉산 산행 시인의 유택과 시비 곁은 오가며
다짐한 시쓰기는
시냇물은 커녕 또랑도 건너지 못하고 맴돌다
이제는 몸마저 무너져
사패능선 포대능선 Y계곡 우이능선 오봉능선 오르기도 어려워
멀리서 30년 전 발걸음 소리를 되새긴다
글과 수묵, 사진으로 만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윤상원 전이 열리는 KOTE Gallery 1층과 3층을 뜨겁게 오르내리다
종로통을 오랜만에 걸었다
교보문고 영풍문고 시집 제목 훑어보고
전봉준 장군과 눈을 맞춰 한참을 머물다
1985년 8월 15일 보신각 새종을 모시는 표지석
구상 시인의 글을 읽고
간만에 맘먹고 들린 아름다운가게 종각책방은 철문을 닫아걸고
새 주인을 기다리는 글씨만 찬바람을 맞고 있다
알라딘서점에서 1년 전 세상을 버린 친구의 시집을 읽으며
함께한 시간을 되밟았다
파고다공원 건너편 김수영 생가 터 표지석에서 파고다공원 버즘나무 마지막 단풍잎을 바라봤다
몇 걸음 걸어서 신간회 본부 터 표지석에서
시인이 어의동공립보통학교(현 효재초등학교) 오가며 마주쳤을
이상재 한용운 조헌영 안재홍 권동진 신석우 조병옥 송진우 주요한 눈빛과 기침소리 발걸음 소리와
어둠을 밀어내는 마스크 쓴 불야성에 붙들려
종로3가역 전동차 몇 대를 보냈다
달나라의 장난
팽이가 돈다
어린 아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롭다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앞에서
아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 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別世界)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이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 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1953년 자유세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