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 인물열전
낙이망우(樂而忘愚) 망우리공원(忘憂里公園)
삶을 멈춘 사람을 좇아가는 인문학
사색의 길을 걷다
대한민국 근현대사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망우리공원 낙이망우 사색의 길을 걷고 있는 인물들을 되새기는 이야기의 화수분
정종배 지음
지노출판
머리말, 걸어온 거리가 다른 삶을 비교 말고 존중하자
삶은 길이다. 무겁고 미끄러운 길이다. 춥거나 병들고 생계가 막막한 길은 노력하면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황폐하고 시달리며 우울한 마음의 길은 다 달라 각자가 평생을 벗 삼아 손잡아 주어야 한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부드러운 말과 미더운 행동은 길의 무게를 덜어내고 발걸음 소리가 가볍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길의 거리는 다르다. 재산을 재벌의 수준으로 놓거나, 건강을 100세 너머 무병장수를 찾는다면, 발길은 팍팍하고 미끄러져 넘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마음과 삶의 결핍은 꿈의 세계에 올려놓고 보면,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다. 걸음을 잠시 멈춰,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라. 연약하게 태어나 비천하게 살다가 처참하게 죽지 않으려면, 그 어떤 삶도 사랑도 비교하지 말라. 달항아리 내 사랑아.
1974년 5월. 필자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면목동에 살던 친구 강원도 횡성군 둔내 출신 형제들의 나이가 동갑인 류성진과 망우리공동묘지를 두 번 다녀왔다. 지금도 만해 한용운, 죽산 조봉암, 설산 장덕수의 유택이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있다.
2000년 4월 첫 토요일 오후.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의 유택에 오른 이후, 내 삶의 방향은 달라졌다. 그때부터 20여년 학생 및 지인과 낙이망우 망우리공원 ‘사색의 길’을 걸었다. 망우리공원 유택을 마련한 선인들이 걸었던 가족과 민족을 위한 삶과 정신을 이야기했고, 학생들과 함께 체험 및 봉사활동을 하며 소통해 왔다.
그동안 ‘낙이망우 사색의 길’에서 만난 모든 분의 격려와 사랑을 깊이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1970년 학다리중학교 입학 전, 전남 함평군 학교면 면장 아들인 내 친구 정병인의 큰형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고향집에 책을 내려보냈다. 그중에 내가 빌려 읽은 책은 신동엽의 시집 『금강』과 서해 최학송의 소설집 『탈출기』 두 권이었다.
40여 년이 지나 2010년 망우리공원에 잠든 소설가 서해 최학송의 묘지관리인이 됐다. 2012년 ‘서해 최학송기념사업회’를 결성하여 사무국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소중한 인연을 맺으며 제자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아사카와 노리타카 다쿠미 형제 추모회’ 이사와 망우리공원에 묻혀 한국의 흙이 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의 ‘인간의 가치 실현’으로 시작된 ‘청리은하숙 세계시민학교’ 숙장대행도 역임했다. 삶의 향기를 잡기 위해 동행하는 이들과 ‘사색의 길’을 한 바퀴 돌면서 선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삶의 지침을 풀어간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망우분과 위원장인 김영식 작가, 위원인 한철수 시인, 김수종 작가, 박종평 작가, 김금호 국장, 정유진 간사, 류민수, 이서경, 문지혜 위원들과 (재)수림문화재단 유진룡 이사장, 신경호 상임이사, 김정본 국장, 조정현, 윤정혜 팀장 등과 관계자 분들께서 ‘사색의 길’을 걷는데 힘을 실어주었다. 청리은하숙 세계시민학교를 주관한 (사)중랑문화연구소 남화창 이사장, 이수종 상임이사, 하정웅 숙장, 박전열 교장선생님, 박상인 오병학 류호성 고일 문광명 박훈정 최남일 최원일 서일호 정우영 조성호 김도훈 양맹모 권순효 김규진 임채훈 김영만 홍희문 임대균 김기현 선생님 든든한 배경으로 응원해 주시어 고맙습니다.
이 책이 나오는 길을 열고 끝까지 밀어준 지노출판 도진호 사장의 출판의 길이 풍성하게 이어가길 기원합니다. 망우리공원 사색의 길을 따뜻하게 함께 해준 학생들과 제자들 그리고 묵묵히 지켜주는 식구들의 건강과 앞길이 훤히 트이길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망우리공원 낙이망우 사색의 길 4.7Km 돌고 돌면 돌멩이는 구르지만 바위는 꿈쩍 않는다.
시냇물은 봇둑을 넘지만 바닷물은 넘치지 않는다.
소인은 다우(多愚)하고 대인은 망우(忘憂)한다.
2021년 7월
낙이망우(樂而忘憂) 망우리공원(忘憂里公園)
배움이 즐거워서 근심걱정 잊어버린 ‘사색의 길’
서울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맞을 수 있는 곳이 망우리공원이다. 아니 망우산이다. 예전에는 아차산이라 불렀다. 조선 왕조 수도인 한양의 외사산인 아차산(동)·덕양산(서)·관악산(남)·북한산(북) 중 아차산은 서울의 동쪽을 병풍처럼 둘러쳤다. 아차산은 주요한 요새였다. 아차산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한강이 서해로 흐른다. 한강 건너편 현 강동구와 송파구는 위례백제 한성 지역이었다. 고구려군은 이곳 아차산까지 내려와 진을 치고 백제와 전투를 벌였다. 그런 까닭에 아차산은 곳곳이 성터였다. 온달장군이 전사했다는 전설도 전해 오고 있는 곳이다. 지금도 아차산성 보루와 토성이 남아있는 유적지다. 현재 아차산은 용마산·망우산·봉화산 등으로 각각 나눠 부르고 있다.
서울시 중랑구 망우본동 산 57번지 망우리공원. 1933년 망우리공동묘지 지정하여 묘를 쓰기 시작하여 1973년 만장으로 폐장됐다. 1991년 서울시시설공단이 관리를 맡아 망우리묘지라 하였다. 1998년 공원화 작업 이후로는 망우공원으로 불리다 망우묘지공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2016년 서울시 중랑구에서 망우리공동묘지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 망우역사문화공원이라 명칭변경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현재 망우리공원으로 부르고 있다. 2020년 7월부터 공원관리권 중 도로 및 녹지 관리는 중랑구로 이관됐다. 내년에는 묘지관리권도 서울시설관리공단에서 중랑구로 이관할 예정이다.
망우리공원의 망우의 연원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째, 우리 태조대왕께서 신승 무학과 더불어 친히 수장을 잡으셨으니, 곧 건원릉이 이것이었습니다. 태조께서는 ‘자손들이 뒤따라 장사 지낼 곳이 20개소까지 많게 된다면 내가 이로부터 근심을 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의 가장 서쪽 한 가닥의 산봉우리를 이름하여 망우리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즉 그곳이 길지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ㅡ숙종실록 제14권 숙종 9년 3월 25일 정묘 ‘봉조하 송시열이 치자로 숙배하다’중에서
이에 관련되어 태조가 물맛이 좋아 몇 번이나 마셨다 하여 양원수(養源水, 良源水)라 하였다. 지금의 중앙선 양원역의 역명도 이에 유래한다. 원래 망우리고개는 북부간선도로와 포천고속도로 IC 교차지점 구리국군병원과 56사단 정문 부근이다. 56사단에서 1990년 6월 1일 ‘망우고개유래비’를 위병소 입구에 세웠다.
북부간선도로를 타고 구리시에서 신내나들목으로 들어오며 펼쳐지는 전망은 혼자서 보기가 아깝다. 도봉산과 북한산의 빼어난 능선과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녁노을 물들어가는 하늘이면 더욱 좋다. 구리시에서 ‘구리둘레길’을 조성하여 놓았다. 사계절 다 좋지만, 나뭇잎이 떨어진 늦가을부터 신록이 물들기 전 4월 말까지 ‘서울둘레길 제2구간’인 망우리공원 ‘사색의 길’과 이어지는 구리시 ‘구리둘레길’을 걸어서 ‘건원릉’ 탐방하는 코스를 권하고 싶다.
둘째, 태조 이성계가 불망기(不忘記)를 써주었다는 유래이다. 태조는 원래 개국공신 남재가 장지로 잡아 놓은 터가 명당이라 생각했다. 남재에게 원래 예정지(현 별내신도시)와 자리를 바꿀 것을 제의했다. 하지만 남재는 왕릉 예정지였던 곳에 자신이 묻히게 되면 불경죄가 될 것을 염려했다. 그러자 태조는 불망기를 써주며 이것으로 증빙을 삼으라고 하였다. 그래서 불망기로써 근심을 잊으라는 뜻에서 ‘망우(忘憂)’가 되었다는 설이다. 현재 의령 남씨 선산이 태조 이성계가 왕릉예정지로 정하였던 별내신도시 뒤 불암산 산자락에 남아 있다.
현재 회자 되는 이 망우의 연원 외로, ‘망우’는 『논어』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논어』의 술이편 제18장에 이렇게 써 있다.
배움을 좋아하여 알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면 밥 먹는 것도 잊고, (깨달음을 얻어) 즐거이 근심을 잊으며 늙음이 닥쳐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발분망식 낙이망우 부지노지장지운이)”는 것이다. 아차산 일대는 낙이망우 지역이다.
조선조 사가정 서거정 선생이 사가정(四佳亭, 매화·대나무·연꽃·해당화) 별서를 짓고 말년을 보냈다. 현재 7호선 사가정역 역명도 이에 유래한다. 또한, 오성과 한음의 오성 백사 이항복 대감도 동강정사(東岡精舍)라는 별서를 짓고 ‘동강노인’이라며 유유자적한 곳이다. 사가정과 동강정사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망우리 지역의 어느 곳으로 추정한다. 지금도 ‘신선이 된 두 분이 저녁노을과 종종 용마산과 망우산 및 중랑천 강둑을 따라 걷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올 만큼 유서 깊고 경승이 빼어난 곳이다. 이렇듯 망우리는 지명 그 자체가 이미 역사와 철학과 설화적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 공동묘지가 처음 생겨난 것은 일제강점기다. 1910년대에는 경성부에 미아리·이문동·이태원·만리동·여의도·연희동 등 모두 19개소의 공동묘지가 있었으나 도시가 개발되면서 없어졌다. 망우리 공동묘지가 1933년부터 서울시의 공동묘지로 사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곳에는 1973년까지 40여 년 동안 이태원무연분묘합장묘 28,000여기를 포함 4만 8,000여기(실제는 5만여기 이상)가 모셔졌으나, 이후 이장과 납골을 장려하면서 2021년 7월 현재 7,000여 기로 줄었다. 지난해 윤달인 4월에도 200여 기가 이장하였다.
일제강점기 경성부가 이곳에 경성부 부립공동묘지 분묘 단지를 조성하려는 했던 이유는 늘어나는 주택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이면에는 조선 왕조 건원릉의 맥을 끊고 훼손하기 위함으로 아차산 망우리에 공동묘지를 정하였다. 경기도로부터 아차산 일대 75만 평(약 2,479,338㎡)을 매입하고, 1933년부터 이 중 63만 평에 묘지를 조성하였다. 서울을 경기도 경성부로 격하시키고, 조선조 건원릉이 있는 망우리면을 망우리로 낮추었다.
방정환, 이중섭도 홍제동 화장터를 거쳐 망우리공원으로 왔다. 한용운은 일제가 운영하는 홍제동이 마땅치 않게 여겨 미아리의 작은 화장터에서 장례를 치르고 망우리에 안장되었는데 그의 일제에 저항정신과 부합된다. 1970년 9월 1일 벽제로 옮길 때까지 40년간 홍제동은 화장터의 마을로 낙인찍혔고, 지금도 그 소리를 싫어한다. 그 자리에는 고은초등학교가 들어서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로 가득하다. 1937년부터 1973년까지 등재한 묘적부를 열람하여 보았다. 유명인사 중 망우리공동묘지 묘지 기록이 되지 않은 분이 많았다. 망우리공원이 변화를 맞이한다. 1990년대 중반 조성된 지 60년 만에 무연고 묘를 정리하면서부터다. 1990년대 후반에는 4.7Km의 순환로를 ‘사색의 길’로 명명하고 정비했다. 중랑구에서 민족을 위해 헌신한 15인의 연보비를 세우면서 망우리공원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2006년 4월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문화재 위원들과 함께 망우리공원을 답사했다. 독립운동, 역사, 정치, 의학, 교육, 문화, 사회사업, 문학, 미술, 체육, 음악, 연극, 영화, 일본인 등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이 잠들어 있는 망우리공원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거쳐 '문화재' 등록을 본격 추진하겠다."라는 것이 당시 문화재청의 입장이었다.
2012년 독립유공자 만해 한용운에 이어 2017년 오세창, 문일평, 방정환, 오기만, 서광조, 서동일, 오재영, 유상규 등 8인의 독립유공자 묘역도 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이렇게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여 독립유공자들의 나라사랑 정신과 삶과 저서를 널리 알리고, 홍보와 교육프로그램을 확충하는데 도움을 줄뿐 아니라,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답사하는 이들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 이면에는 유명인사의 고향 및 연고 지자체에서 관광과 홍보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이장을 추진하던 상황이 벌어졌다. 그것을 멈추거나 늦추기 위하여 등록문화재 등록을 추진했다. 독립유공자 외에 사회, 문화, 예술 등 각 분야 인물들의 묘역도 등록하여 관리하면 인문학 보고의 공원으로 거듭날 것이다. 전 박원순 서울시장도 다섯 번이나 방문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문제를 관계 전문가들과 연구하며 이곳에 묻힌 필부필부 및 우리나라 근현대사 인물들의 활동을 탐구했고, 시민들이 망우리공원을 찾아 삶의 의미를 깨닫는 장소가 될 방안을 찾았다.
해외 묘지공원 중 발자크, 이브몽땅, 카사노바 등이 잠들어 있는 프랑스 파리의 페르라세즈(Pere Lachaise). 묘지가 수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관광지가 되었다. 그리고 스웨덴 스톡홀름시에 있는 스코그스키르코가르덴(Skogskyrko Garden)은 숲을 해치지 않고 묘지를 조성하였다. 이곳의 영어 명칭은 ‘Woodland Cemetery’인데, 우리말로 ‘숲속의 공원 묘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곳은 1994년 유네스코에서 “공동묘지 목적에 이상적으로 부합하는 풍경을 창출하는 문화적 공간의 성공적인 예로 전 세계 묘지 디자인에 깊은 영향을 전달했다."는 이유로 세계문화유산에 당당히 등재됐다.
2016년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서 망우리공원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인문학길 조성에 10억 5천만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공사를 마쳤다. 2021년 4월 27일 ‘중랑망우공간’ 건립 착공식을 치렀다. 올 연말 개관하여 청소년 및 시민 교육 장소로 사용을 기대한다. ‘중랑구 방정환교육지원센터’를 상봉역과 망우역 사이 상봉지하차도 삼거리에 교육도시 중랑구 교육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2021년 5월 4일 개관했다. 올 7월 1일자로 중랑구청 망우리공원과가 설립되고, 망우리고개 도로 정상 양쪽에 버스정류장이 설치되어 방문하는데 한결 수월해졌다. 2022년 4월 1일 망우역사문화공원 중랑망우공간을 개관하였다. 개관기념 특별기획전으로 ‘뜻을 세우다 나라를 세우다’를 4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열린다.
망우리공원의 근현대사 당대 최초 최고 인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유택이 있는 분은 독립운동가 오세창 문일평 유상규 박희도 서동일 서광조 오재영 유관순 이병홍 이영학 김기만 김분옥 허연 나우 김중석, 종두법 지석영, 시인 한용운 김상용 박인환, 소설가 최학송 계용묵 김말봉 김이석, 아동문학 방정환 강소천 최신복, 희곡 함세덕 이광래, 영화 노필, 미술 김규진 김영기 이인성 이중섭 권진규, 선각자 설태희, 언론인 설의식 임병철, 한글학자이며 한영중학교 설립자인 오봉 박현식, 정치인 조봉암 장덕수 이영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오기만, 가수 차중락, 조선조 영의정 신경진, 공주 명온공주와 부마 김현근, 변호사 한글학자 박승빈, 기상학자 국채표, 콩박사 김호직, 식물분류학자 장형두, 교육자 사회사업 오긍선, 여성운동가 이경숙, 교육자 박은혜, 학병운동 삼학병, 대한중석초대 사장 안봉익, 기업인 이영찬, 목사 장석인, 방송인 1호 노창성 아나운서 1호 이옥경 부부, 숙부인 허씨, 한성 판윤 6회 문신 변원규, 서울여자학원 창립이사 최경국, 이갑성 부인 차숙경, 군수 홍재설, 일본군 소좌 윤상필,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 사이토 오토사쿠 등이다.
이장하신 분은 독립운동가 안창호 박찬익 나용환 박동완 이종일 홍병기 송진우 서병호 강학린 김병진 김봉성 김사국 김진성 문명훤 박승룡 박원희 백대진 서병호 이탁 이태건 조종완 신명균, 시인 안석영 김영랑 김동명, 작곡가 채동선 함이영, 영화인 나운규, 민속학자 송석하, 건축가 박길룡, 국악인 임방울, 체육인 이영민, 조각가 차근호, 화가 함대정, 목사 오기선, 정치인 이기붕 손봉환, 교육자 김활란 박마리아, 간호사 이정애, 국민방위군 사건 김윤근 사령관, 통일운동가 최백근, 민족일보 조용수, 4.19혁명 박동훈 진영숙 이종량 전한승 열사, 6.3항쟁 이윤식, 대령 이양, 정치경찰 곽영주, 정치깡패 이정재 임화수, 석가장 전투 통역병 장해윤 등이다.
현재 남아있는 시설물은 중랑구에 세운 연보비 15분 박인환 서동일 오재영 서광조 장덕수 조봉암 한용운 서병호 오세창 문일평 방정환 오긍선 문명훤 유상규 지석영, 면목동 양지마을 산치성터, 남촌(응달말)마을 산신제단, 이태원묘지무연분묘합장묘 및 묘비 유관순열사합장표지비, 최학송 문학비, 아사카와 다쿠미 표지비, 경서노고산천골취장비, 국민강녕탑, 한국일보사 순직사원 합동묘 등이다.
오늘 낙이망우 망우리공원의 인물들을 통해 현대 우리 시대를 성찰하고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면 한다. 개화기, 동학혁명, 의병, 경술국치, 3.1혁명, 관동대지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및 친일문제, 한글 운동, 8.15해방, 해방정국 이념대립, 남북분단, 6.25한국전쟁, 4.19혁명, 5.16군사쿠데타, 6.3항쟁, 국가보안법, 산업화와 독재정권 민주화 등 대한민국 기틀과 아픔을 망우리공원 관련 인물들과 장삼이사의 생애와 작품 및 일화를 중심으로 시대정신을 밝혀 후손들 삶의 지표이길 빌어본다.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탐구하고 기록 정리하여 후대의 지남차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분 한 분 깊고 높이 우러르며 글을 쓰고, 독자들과 탐구 및 답사도 함께하며 오래오래 기렸으면 한다.
차례
사색의 길을 걷다
망우리공원 낙이망우 사색의 길 위에 인문학
머리말 걸어온 거리가 다른 삶을 비교 말고 존중하자
낙이망우 망우리공원 배움이 즐거워서 근심걱정 잊어버린 ‘사색의 길’
1부 나라사랑 독립운동 숭고한 나날들
들어가는 말 3.1혁명 102주기 및 유관순 순국 101주기
허위 13도창의군탑 2018년 광복절 왕산 허위 외손녀 귀국 헌화
박찬익 대한독립선언 39인 대종교인 임정 법무부장 독립운동가 외교와 협상의 선각자
나용환 영영 못 돌아올지 모른다 새옷 입고 집을 나선 천도교인 3.1혁명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기독교인 민족대표 33인 만주와 하와이 민족의 의식 북돋운 목사 및 교육자
이종일 천도교 월보과장 보성인쇄주식회사사장 기미독립선언서를 인쇄 배포함
홍병기 3.1혁명 이후에는 고려혁명당 이끈 천도교 중진 민족대표 33인
김분옥 3.1혁명 유점선·노예달·신특실·유관순·서명학·김분옥 6인 결사대 초대 여자경찰국장
김중석 영신학교 교사로 함흥 장날인 3월 3일 혁명을 주도하는 계획에 참가한 독립지사
유관순 열사의 고혼(孤魂) 이태원묘지무연분묘합장묘 및 합장비
문일평 조선심 조선혼 사학자 언론인 독립지사
서광조 비밀결사 조선국민회 전라도 지역 책임자 독립운동가
서동일 부인 묘에 이장하여 본인 묘비가 없는 국민당 재정부장 다물단 애국지사
송진우 동아일보사 사장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오재영 안중근 의사와(삭제) 의열단 최초 무장 독립투쟁 부산은행 박재혁 의거 숨은 조력자
이태건 신민회 평북 지회 활동 105인 사건 3.1혁명 독립운동가
김병진 떼 한 장 덮지 못하다 이장한 안동읍내 시장 3.1혁명 주도한 독립운동가
김승민 독립운동 지휘자 비밀정원
김진성 국외 항일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국군창설 주역
김춘배 전북 완주 출신 기독교와 독립운동 명가 신출귀몰 독립운동가
박승룡 함남 이원군의 3.1혁명 지도자 천도교 종법사
나가는 말 대한독립 선언과 기미독립선언 102주년 기념
2부 제노사이드 관동대지진
들어가는 말 제노사이드 98주기
나운규 한국 영화의 선구자 영화 <아리랑> 민족을 일깨운 풍운아
김영랑 남도 정서와 가락의 시문학파 시인 독립운동가
송석하 대한민국 민속학 인류학 박물관 분야 선구자
오기선 동경 한인교회 목사 관동대지진 재해동포위문단을 조직 위문과 구호사업 전개
유상규 경성의전 교수 도산 안창호 비서 국민 보건위생 계몽에 헌신한 독립운동가
장형두 좌익분자로 몰려 경찰의 고문에 억울하게 죽은 조선의 천재 식물분류학자
조봉암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장관 진보당 사건 사법 살인 사형 당함
최신복 한국 최초 월간 수필 잡지 《박문》 편집 겸 발행인 동요 <오빠 생각>의 ‘오빠’
아사카와 다쿠미 한국의 흙이 된 일본인
나가는 말 관동대지진 다큐 제작 오충공 감독
3부 친일문제와 극복의 길
들어가는 말 항왜 항미 독립운동가 집안은 3대가 거지노릇
김상용 시인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김활란 탁월한 여성 지도자
박마리아 교육인 사회운동가 4.19혁명을 부른 과욕
박희도 3.1혁명 민족대표 33명 중 1인 목사 교육자
안석영 《백조》 동인 문화예술계 전방위 달란트 <우리의 소원> 작사가
윤상필 일본군 소좌 만주국 참사관
이광래 극작가 연극학자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학과 초대과장
이영찬 일제강점기 기업인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임숙재 숙명여자대학교 초대 총장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지도위원
장덕수 동아일보 초대 주필
장해윤 일본 군속으로 중국 태항산 석가장 전투 통역관
함세덕 연극연출가 극작가 월북 인민군 선무반 신분
홍재설 양구군수 노해면장
나가는 말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4부 대한민국 근현대를 그려낸 그리운 풍정과 문학 산실
들어가는 말 교과서 수록 낙이망우 작가들의 빛나는 삶과 작품
강소천 <스승의 은혜>와 <유관순 노래> 동요와 동화의 아동문학가
계용묵 사실적이고 낭만적인 작가 소설 「백치 아다다」
김동명 어머니 사랑 일제와 북한과 남한 독재에 까칠한 시인 정치인
김말봉 부산 최초 신춘문예 당선자 최초 여성 장로 여성 작가 예술원 회원 여장부
김이석 남과 북 문화 정책을 경험한 소설가 김이석과 소설가 박순녀 부부
박인환 1950년대 전후 모더니즘 시인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 모던보이
방정환 어린이의 영원한 벗 어린이와 어린이날
백대진 매일신보 기자 《신천지》 주간 문학가
최학송 남한 북한 중국 러시아 등 교과서에 수록된 빈궁문학의 최고봉
한용운 일제강점기 국내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한 거의 유일한 대한민국장 근현대사 거인
나가는 말 교과서에 수록된 작가와 작품들
5부 한 걸음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맵찬 걸음
들어가는 말 주의자와 독재와 저항정신
김사국 박원희 사회주의자 김사국과 여성운동가 박원희 부부 독립운동가
김석영 사회평론가 『폭정 12년 제1집 이제야 모든 진상을 알게 되었다』
박동훈 4.19혁명 열사 서울법대 신입생
4.19혁명 경기고 2학년 이종량과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
삼학병 일제강점기 학병 출신 삼학병 김명근 박진동 김성익
오기만 독립운동 명가 사회주의운동 독립운동가
이병홍 독립운동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조사1부장 2,3대 민의원
이기붕 4.19혁명의 기폭제 3.15부정선거 부통령 당선
전한승 4.19혁명 당시 수송국민학교 6학년
조용수 《민족일보》사장 5.16 군사쿠데타 군부세력에 의해 간첩혐의로 사형당함
최백근 독립운동가 통일운동가 5.16군사쿠데타 사형 집행 미복권
이윤식 6.3항쟁 얌전한 성품 부모에게 보낼 편지 “데모엔 취미가 없어 안심하라더니”
나가는 말 독재와 4.19혁명 5.16군사쿠데타
6부 아픔과 고독을 이기고 자신을 불태운 예술혼
들어가는 말 문화예술계 체육계 영원한 거장들
권진규 한국의 사실주의 조각을 한 단계 끌어올린 비운의 조각가 권진규 한국미술 3대거장
이인성 천재화가 식민지의 비애를 향토적 색채미로 구현한 서양화가
이중섭 대중적인 인기와 드라마틱한 삶과 가족과 친구의 관계 국민화가 한국미술 3대거장
차근호 한국 최초 조각연구소 설립 비운의 조각가
함대정 일본 주오대학 경제학부 서양화 화가
노필 음악영화 일인자 영화는 흥행했으나 제작자와 갈등 자살
채동선 정지용 시 <고향> 김영랑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작곡가 현악4중주단 민요채록
함이영 1948년 8월 최초 초등노래책 동요 <우리나라 꽃> 작곡가 4대 음악인 집안
이영민 1930년대 조선 최고의 만능 스포츠 스타 및 스포츠 행정가 이영민 타격상
임방울 한반도를 목소리로 울린 국악인
차중락 가수 배호와 오빠부대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27세 요절
김규진 최초 사진관 근대적 화랑 설립한 해강 김규진 청강 김영기 부자
나가는 말 민중들의 애환이 서린 발자취
7부 나라와 민족의 삶의 질을 높인 사연마다 고개 숙이는 굽이길
들어가는 말 교육자 학자 및 언론 사회사업 사회운동과 의료인
국채표 한국 최초 기상학 이학박사 한국기상학회 창립 초대회장 제2대 기상청장
김호직 콩 박사 한국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첫 침례신자 선종할 때 26개 직종 명함
민병덕 명신중 여중 설립자 사업가 중추원 참의
박길룡 일제강점기 한국 근대건축의 기틀을 다진 조선 건축가
박승빈 일제강점기 조선어학연구회를 조직한 국어연구가 교육자 법조인
박은혜 경기여중고 교장 15년 은석초 설립자 장덕수 부인
박현식 한영중 설립자이며 ‘조선어 표준말 사정 위원회’ 사정위원 한글학자
설의식 설태희 개화기의 유학자 선각자 영민한 유전인자 후손들 동아일보 편집국장 언론인
손창환 제3대 보건사회부장관 대한적십자사총재를 역임한 의사이자 행정가
신명균 교육자 국어학자 창씨개명에 분개 나철 사진을 품에 안고 순국한 대종교 독립지사
안봉익 대한중석 초대사장
오긍선 고아원 양로원 최초 설립자 연세대학 의과대학 기틀 다진 피부의학 분야 선구자
오세창 8대역관 집안 『근역서화징』의 저자 간송 전형필의 멘토 서화가 민족의 어르신
이경숙 이 겨레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사회운동가
이영준 제3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 및 병원장 국회부의장
이옥경 한국 최초의 방송인 노창성과 최초 여자 아나운서 이옥경 부부
이정애 대한민국 최초의 간호사 해외 유학생으로 간호사 1호
이탁 청산리대첩에 참가한 독립운동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
임병철 1936년 손기성 선수 일장기 지우기 결정적 역할 동아일보 기자
지석영 한국에 처음 종두법 도입 실시 근대 의술과 한글 연구와 활용 선구자
사이토 오토사쿠 조선총독부 기사 산림과장 영림창장 포플러 아까시나무 도입 식목일 제정
나가는 말 대한민국 과학과 산업의 기틀을 다진 선구자
8부 기독교 및 흥사단 정신 부활
들어가는 말 망우리공원 도산 안창호를 둘러싼 흥사단 단우들
강학린 함북 성진읍 욱정기독교회 목사로 3.1혁명 시위주도 독립운동가
김기만 상해임시정부 독립단 단원 및 흥사단 단우 142번
김명신 주포기에서 주룰루 전도부인 선교사 아들로 교육자 독립운동가
김봉성 3.1혁명 선천군 선천읍 만세 시위 주도한 김봉성
김정규 중국 간도 훈춘현 3.1혁명을 주도한 애국지사
나우 상해임시정부 보안책임자이며 아들 나성돈과 2대 독립운동가 집안
문명훤 3.1혁명 맹산 시위 주도하고 임시정부 내무부 서기 독립운동가
변성옥 감리교 목사로 만주에서 조선기독교회 새 교단을 창립한 독립운동가
서병호 한국인 최초 유야세례 받은 기독교 목사이며 독립운동가
안창호 독립지사 흥사단 결성 대한민국장 서훈한 민족의 지도자
이영학 아버지와 2대 독립운동 집안 동아일보 선천지국 기자와 지국장
이탁 1919년 광무황제 국장일 망우리고개 27결사대 매국노 7적 주살 시도
장석인 숭실학교 교목 연희동 교회 담임목사 장준하의 아버지
조종완 흥사단 단우 수양동우회 사건 군자금 모금 독립운동가
허연 의명학교(삼육중고) 출신 교육가 수양동우회 사건 옥고 ‘도산의 발자취에 묻어 달라’
나가는 말 망우리공원 도산 안창호를 둘러싼 흥사단우
9부 망우리와 맺은 인연 뿌리 찾기
들어가는 말 낙이망우 망우리공원 영혼의 안식처
신경진 망우리공원 안 한 집안 가족묘지 가장 많은 25기 묘지 선영
박승직 망우리고개에서 기업가 삶을 터득한 두산그룹 설립자
경서노고산천골취장비 서강대 진산인 노고산 공동묘지 유골을 합장한 묘비
국민강녕탑 대한민국이 건강하고 평안한 나라이길 바라며 쌓은 돌탑
명온공주 순조와 순원왕후의 장녀 남편은 장동김씨 선원 김상용 8대손 추증 영의정 김현근
한성부 판윤 6회 조선 후기 문신 변원규, 양천 허씨 숙부인 양천 허씨 월탄 박종화 비문 지음, 육군 준장(대령) 이양, 서울여자학원 창립이사 최경국
차숙경 3.1혁명 민족대표 33인 중 유일한 순수 민간인 출신 이갑성의 부인 차숙경
곽영주 경무대경찰서장 4.19혁명 경무대 앞 발포책임자 별명 부부통령 곽박사 정치경찰
이정재 한국의 조직폭력배로 이승만 정부 시기 정치깡패
임화수 대한민국의 정치 깡패로 영화 제작에 관여한 연예계의 황제
서민들의 비문 갈 길이 바빠서 온 것은 아니련만 와노코 보니 한도 많다
나가는 말 낙이망우 사색의 길을 걷는다
망우리공원 현황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