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 조봉암/정종배
죽산 유택 사초작업 마무리 지었다
망주석 장명등 둘레석은 그대로 두고서
봄이면 오랑캐꽃이 뒤덮은
봉분 떼만 입혔다
토장 뒤 나무를 제거하고
바위와 돌멩이를 정리하지 않았다
연보비 옆 붉은소나무 가지를 쳐냈다
죽산의 사위인 시인 출신 영화감독 이봉래 아들들인
외할아버지 죽산의 미남 피를 이어받아
영화배우로 활동하여
시원스레 소나무를 닮았다
이승만 독재정권 사법살인으로
1958년 7월 31일 11시 11분
죽산의 사형집행 시각
매년 7월 31일 11시 11분에 맞춰
추모식을 거행한다
상하이에 호와 보석의 정으로 이름지은 조호정
이화여고 재학 중 이기붕의 처 박마리아에게
이화고녀 동문으로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무릎 꿇고 눈물로 호소하였으나 허사였다
2년 후 4.19의거 양아들 이강석 권총의 가족 집단 자살
능선 너머 가족묘지 지금은 흔적 없이 수풀만 무성하다
아들 조규호는 어릴적부터 주먹 하나로 울분을 달랬다
연좌제로 꿈을 펼쳐보지 못하여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
일제가 독립지사 장례식 절차 법을 만들어
일제 강점기 도산의 장례식과
망우리 묘역 통제와 동일하게 적용하여
비표 40명 묘지 장소 묘지 참배
갖은 시비와 제재로
가족 외엔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대법원 재심으로 묘역 단장하며 백비를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사형 집행 당시 마지막 소원인 술 한 잔과 담배 한 대 들어주지 않았다
지금도 한여름 달밤 아래 참배객들이
막걸리 마시며 담배 한 대 피워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