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시

마실길의 밤

정종배 2021. 3. 5. 21:23

마실길의 밤/정종배

낮에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경우가 많아서
저녁 먹고 마스크 쓰고서 마실길을 걷는다
응봉 능선 의상능선 원효능성 상장능선
바위들과 나무들이 변함없이 반겨준다
도시의 다양한 생태 늪과 잿골 골짜기에
북방산개구리 짝짓기 노래가 어지럽다
늪 가운데 가로지른 나무데크 위에서
절정의 파티 음을 듣고 싶어 걸음을 멈추자
개구리도 울음 소릴 그친다
네들도 날 받아주지 않는구나

진관사 극락교 밑 원앙새 한 쌍이
웅덩일 차지하고 노닌다
평소대로 계곡을 향하여
두 손 모아 천지인 합장하고 절을 한다
두 마리가 날개를 펴 계곡 아래로 날아간다
네들도 날 받아 주지 않는구나

진관사 홍제루 앞 주차장에 부부가 체조를 하고 있어
절 뒤문을 향해 걷다 고수레 떨어지는 계곡 바위를 내려다본다
집 체만한 멧돼지가 건너 산으로 냅다 뛴다
네들도 날 받아 주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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