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년 위령의 종루 보수 및 추모문화제를 돕는 사람들
시인 소월 김정식
당시 일제 감시와 탄압 때문에
‘간토대진재’ 문학으로 꼽을 만한 작품 수효가 많지 않다
그래도 다수를 점한 것이 시 갈래이다
이상화 「독백」(동아일보 1923. 10. 26)
‘흰달’이라는 필명의 김소월 「나무리벌노래」·「차와 선」·「이요」(동아일보 1924. 11. 24)
‘월파’라는 필명의 김상용 「일어나거라」(동아일보 1926. 10. 5) 등은
대화체 발화법을 채택함으로써
그 파멸적 제노사이드를 문학적 형상화로 거듭났다
1923년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상과대학 전문부에 입학했던 소월 김정식은
관동대지진 한국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참상의 현장에 있었다
고향 집에 한 달간 연락이 없어서
숙모 계희영은 대지진 소식이 보도된 신문의 사망자 명단에
김정식 이름 석 자가 실려 있는 것을 본 식구들은 죽었다고 포기했다
일본에서 편지 한 통이 날아오자
그 주소로 귀국을 독촉하는 전보를 보내 10월경에 돌아왔다
동경으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할 뜻이 있었으나
조부를 비롯한 집안의 반대로 학업을 중단했다 - 계희영 『약산의 진달래는 우련 붉어라』 (문학세계사, 1982, 231~237면)
스승인 안서 김억(친일, 문학)은 대진재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을 않은 채
도쿄에서 1년가량 체류하고 돌아온 김소월이
”건질 수 없는 크나큰 니힐에 빠지게 되었다“고 했다 - 김안서 「소월의 생애」(《여성》 30호, 1939. 6,98면)
귀국한 후 시 「초혼」(1925)은 세속적인 남녀 관계와
우리 민족의 전통 장례 절차인 고복 의식을 설정하여
일제의 검열을 피하며 용의주도하게
민족의식을 표출한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간토대진재 제노사이드 당하는 경험을 한 항일의식을 바탕으로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초혼(招魂)●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자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가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채로 이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같은 진혼곡을 다시 부를 전쟁이나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데
작금의 국내외 정세를 보면 뭔가 일어날 것만 같아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