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독립유공자 강학린(姜鶴麟, 1885~1937.7.5.) 목사 88주기

정종배 2025. 7. 6. 10:16

함북 성진읍 욱정기독교회 목사로 3.1혁명 시위주도 독립운동가

강학린(姜鶴麟, 1885~1937.7.5.) 88주기

 

 

강학린 목사는 188561일 함북 성진군 성진읍 욱리 596번지에서 태어나 193775일 선종하여 망우리공원에 묻혔다.

 

191937일 당시 성진군 성진읍 욱정기독교회 목사로 재직하던 중 김상필·강희원 등 동지들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인근 각처에 연락을 취하는 등 준비를 갖췄다. 310일 캐나다 선교사 구예선이 운영하는 제동병원 광장에 모인 5천여 명의 군중들 앞에서 선언문을 낭독하고 궐기사를 하여 군중들의 기세를 높였다. 그가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군중들도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행진을 벌여 일본인 상가, 경찰서, 우체국 앞에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일경이 무력으로 이들을 해산시키려 하였으나 오히려 군중의 분노를 사서 투석전이 벌어졌다. 이날의 시위로 인하여 그는 안성윤 등과 함께 주동 인물로 붙잡혔다.

 

그는 소위 소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청진지방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불복 공소하여 같은 해 92일 경성복심법원과 1011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14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망우리공원 독립지사 묘역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후손들이 손자나 증손자로 이어진다. 묘지 관리 문제로 대부분 국립현충원으로 이장한다. 이장할 때 배우자도 함께 모셔갈 수 있다. 그런데 2003년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한 강학린 독립지사 묘지 터 아래에 배우자 묘지는 그대로 남아 있다.

 

 

강학린 묘비 앞면, ‘애국지사강학린목사추념비 배필 청송장씨 황주인 원붕지녀 학순한자로 새겨져 있다. 가수 강수지 증조할아버지로 알려졌다.

묘비 뒷면, 1885.6.1.~1937.7.5.졸 그의 일대기는 민족적 수난과 형극의 굴레 속에서 굴하지 않고 하늘나라를 선교하는 일이었다. 1917년 평양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18년 성진 욱정교회에 부임, 업덕 길주 명천 삼수갑산 혜산 풍기 차호 용대 단천 이원 등지에 교회를 세우고 1925년 함중노회를 창립. 작고하기까지 노회장을 여러 차례 역임하였다. 민족의 미래는 교육이 좌우하리라는 확신에서 캐나다 선교사 구례선 박사와 함께 교육사업을 일으켰다. 성진 보신남학교 보신여학교를 함께 설립하고 이사장직을 다년간 맡고 있었다. 1919.3.1. 독립만세운동 당시 동월 11. 성진, 학성 등지 일대에서 5~6천명을 동원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으며, 함흥 서울에서 재판을 받고 주모자로 동지들 14명과 함께 옥고를 치르시었다. 당시 상황은 사건 현장 목격자 구례선 선교사의 전도 수기와 운동 참가자 배만수 박사의 회고록과 한국독립운동사 제245城津郡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993.3.1절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고, 동년 6.1.국가유공증이 추서되었다. 평생 기도 속에서 절대자와의 대화를 통해 국권의 회복과 민족의 해방과 하늘나라의 실현을 열렬히 간구하는 선생의 길을 예비하고 계셨다. 그 신앙과 실천은 문중의 정신적 유산으로 응집되어 갔으며, 오늘도 그리고 대대로 후손에게도 영원히 이어져 내려갈 것이다.

 

강학린 목사 아들 강기철 선생님

추념비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비스듬히 누워 있다 쓰러졌다. 주변에는 억새가 추념비를 둘러싸고 있어 더욱 분위기를 스산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중랑구청 망우리공원과에서 추념비를 바로 세우며 옛 묘지터를 정비하였다.

독립운동가 강학린 목사 추념비는 솔샘약수터 등산로 50여 미터 지나 우측 숲으로 난 오솔길을 70m 정도 걸어 들어가면 추념비를 만날 수 있다. 묘지번호 204311는 외로이 서 있다. 나뭇잎이 떨어진 계절에는 그래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한여름 나무들이 우거져 있을 때는 쉽지 않다. 추념비에서 산 능선을 바라보면 시인 김동명 부부의 묘지 터를 가늠할 수 있다. 김동명 묘지터는 망우산 구리둘레길 조봉암 선생 묘역 기준에서 서해 최학송 묘지로 내려가는 지름길 아래였다. 다시 솔샘약수터 가는 길로 나와 문학평론가이며 독립유공자인 백대진 선생의 묘지터와 등산로 50여 미터 오르면 왼쪽으로 임숙재 초대 숙명여대 총장 초장지 묘지석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