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씨/정종배
1억불 수출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름방학 숙제로
학교에 잔디씨를
편지봉투 하나씩 제출했다
잔디씨가 익어갈 때
진주 정가 선산의 잔디씨는 남아나지 않았다
한여름밤 냇가에 멱감고
독배기 바위에 귓물을 빼고
잔디밭에 앉아
별을 헤고 있으면
서울구경 시켜준다
머리 굵은 형들이
저학년 애들을 꼬드겨
잔디씨 대를 뽑아
몇 개 모아
손에 쥐고
고개를 뒤로 젖혀
눈을 감고 이를 살짝 물게 하고
남대문 문턱이 보이냐
서울역 기차가 몇 대냐
창경원 원숭이 똥구멍 빨갛냐
입 안에 넣은 잔디씨 대를
손으로 잡아 죽 올리면
씨가 목구멍으로 떨어져
밭은기침 애를 먹었다
짖굿은 형들한테 번번이 당했지만
그 시절로 되돌아가
한 번 더 모른척 속고 싶은 더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