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시

잔디씨

정종배 2018. 7. 4. 23:05

 

잔디씨/정종배

 

1억불 수출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름방학 숙제로

학교에 잔디씨를

편지봉투 하나씩 제출했다

잔디씨가 익어갈 때

진주 정가 선산의 잔디씨는 남아나지 않았다

 

한여름밤 냇가에 멱감고

독배기 바위에 귓물을 빼고

잔디밭에 앉아

별을 헤고 있으면

서울구경 시켜준다

머리 굵은 형들이

저학년 애들을 꼬드겨

잔디씨 대를 뽑아

몇 개 모아

손에 쥐고

고개를 뒤로 젖혀

눈을 감고 이를 살짝 물게 하고

 

남대문 문턱이 보이냐

서울역 기차가 몇 대냐

창경원 원숭이 똥구멍 빨갛냐

 

입 안에 넣은 잔디씨 대를

손으로 잡아 죽 올리면

씨가 목구멍으로 떨어져

밭은기침 애를 먹었다

 

짖굿은 형들한테 번번이 당했지만

그 시절로 되돌아가

한 번 더 모른척 속고 싶은 더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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