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 오재영/정종배
관리번호 | 43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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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오재영 | 한자 | 吳哉泳 | |
이명 | 吳晙泳,吳載泳 | 성별 | 남 | |
생년월일 | 1897-05-24 | 사망년월일 | 1948-08-30 | |
본적 | 경상남도 부산 佐川 573 | |||
주소 | 慶南 釜山 佐川 573 |
공적정보
운동계열 | 의열투쟁 | 수록정보 |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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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년도 | 1990 | 훈격 | 애족장 |
공훈록 | |||
부산(釜山) 사람이다. 1920년 9월 의열단원인 박재혁(朴載赫)이 상해에서 장기(長崎)를 거쳐 부산에 입항하여 자기 집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중국서적상으로 가장하고 부산경찰서장을 방문하여 폭탄을 투척, 서장이 중상을 당한 거사가 일어났다. 이때 그는 박재혁이 국외에서 숨겨가지고 온 폭탄 한 개를 맡아 두었다가 1920년 9월 14일 거사를 결행하는 박재혁에게 내주는 등 박재혁의 의거를 돕다가 공동혐의자로 지목되어 피체된 것이다. 1921년 8월 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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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영 오재영 선생
(1887. 5. 24 ㅡ 1948. 8. 30 독립운동가)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제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여 사회로써 사회를 박삭(剝削) 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의열단 선언 중에서
1897 경남 부산에서 출생
1920 9월 의열단원인 박재혁 선
생의 부산경찰서 폭탄투척
거사시 의거를 돕다가 피체.
징역 1년형을 선고 받고 옥
고를 치름
1990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묘비 海州吳公晙泳之墓
묘비번호 103570
오재영 의열단 단원 유택
망우천약수터 체육시설 아래 있다
북동쪽 13시 방향 이중섭 묘가 있다
의열단원 박재혁朴載爀이 상해에서 장기長崎를 거쳐 부산에 입향하여 자기 집에 묵고 다음날 중국고서적상으로 가장하고 서장실롤 들어간 박재혁은 고서 속에숨겨두었던 폭탄을 던졌다 서장실이 박살나면서 하시모토橋本 서장이 중상당하고 박재혁 의사도 다리에 부상 입은 거사 때 오재영은 박재혁이 숨겨들여온 폭탄 한 개를 맡아 두었다 1920년 9월 14일 거사 당일 박재혁에게 내주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박재혁 의사는 낟아기를 끊기 아흐레 만에 숨을 거두었으니
"왜놈 관리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나의 본의가 아니다"는 생각에서 였다
박재혁 의거를 돕다가 공동혐의자로 지목 피체되어
1921년 8월 3일 대구복심법원 소위 제령制令7호 위반 징역 1년 언도 대구형무소 옥고를 치렀다
안중근 의사 이등박문 저격 거사 직전 훈춘시 진탕골 인근 취안허圈河촌에 머물며 이 마을을 개척한 유지이며 송신학교 세워 독립운동 한 오재영 집에서 한달간 기거하며 권총 지원 받았다
독립운동가 혁명열사라 할지라도
8.15 앞서
8.15 뒤에 돌아가셨느냐
앞서신 분은 독립운동 유공자로
뒷자손이 연금 받고
뒤서신 분은 대한민국 반역자로
뒷자손이 연좌제 트라우마 불도장 찍혔다
백범 김구 5만엔 약산 김원봉 8만엔 현상금
끈덕지게 뒤밟아 오는 왜경에게 한 번도 붙잡히지 않았던
보난대로 죽이리라 의열단 의백 김원봉 장군
미군정정청이 군정포고령을 위반하였다며 묶어두었다가 풀어준
1947년 4월 9일 인민공화당 사무실
해방된 조국에서 빨갱이 두목으로
그것도 악질 친일파 경찰 손에 수갑을 차다니
독립운동가 잡아들여 모지락스런 고문하던 악질 경찰
항일결사 의열단 암살할 사람으로 못박은 것이 칠가살七可殺
조선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대만총독
매국적
친일파 거두
적의 밀정
반민족적 토호열신
다음은 부숴버릴 곳들이다
조선총독부
동야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기타 왜적 주요기관
발기에 올랐던 노덕술에게
인간적인 업신여김 심한 족대기질 당했다
철장 안에 갖혀 본 둘째 아들 이름을 철근鐵根이라 짓고
사흘 낮 사흘 밤을 꼬박 큰소리로 울었다
김원봉을 반드시 잡아오라 특명을
경북관찰사였던 아버지 장승원이 군자금 모집하던 대한광복회원에게 군자금을 내겠다고 다짐을 어기고 왜경에게 찔러박는 바람에 군자금 받으려 갔떤 동지만 제삿고기 만들어 살해된
금오산 미륵바위 밑에 선영을 써 국무총리서리에 올랐다는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이
이 원한으로 진보적인 해외 지도자 약산을 수도청에 잡아넣었다는 설도 있다
노덕술이 약산을 묶어 두둑한 포상금과 일계급 특진을 꿈꾸며 장청장에 앞에 하이 입에 밴 왜말을 뱉으며 차렷 자세를 취하자
장청장은 꽥 소리 질렀다
이 바보 같은 자야 정중히 모셔 오랬디 이렇게 불경스럽게 하라고 했나
6월 항쟁 때 국본에서 두 김씨를 불러 존경하는 인물을 물었다
창랑 장택상 비서로 정치를 시작한 한 김은 창랑 선생
또 한 김은 녹두장군 이라 하였다
세 소년에게 어떤 경우에도 조국 산천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산과 물과 별을 속뜻으로 지어준 - 김두건은 약수若水 이명건은 여성如星
약산若山 김원봉의 스승이자
고모부였던 황상규가 세운 대한광복회
3.1혁명 뒤 총사령관은 고헌高軒 박상진 그의 스승은
13도 창의군 군사장으로 망우리고개 전투로
서대문감옥 사형수 1호인 왕산 허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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