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복쟁이 열명
부산- 송정 신현문 광주- 송산 김항병 담양- 신기 김종구 광산- 송정 지정숙 목포- 정자동 정진화 송정 장순금 지용호 송산 장윤식 덕산 정순자 순천- 표산 정광자
동무들이
이른 새복밥 얼른 먹고
KTX 집어 타고 용산역 용사의 집 앞에서 대기허던 서울 경기 수도권에 사는 스물 네명
표산- 정희례 정애순 정석규 정삼기 나영남 정종배 청수원- 노영택 옥마동- 박석두 박연석 덕산- 김경옥 호암- 전경엽 노정금 이평범 정자동- 정희영 이준호 정봉진 송정- 박명숙 김우년 신현천 강종석 송산- 문홍대 신흥동-변광배 화산- 노진갑 임형조와
죽은 성제간 살아와 다시 만난 듯 겁나게 반갑게 인사하고
관광버스 한 대로
단풍이 한창인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잘 익은 노을빛 홍어 무침 새코롬한 입맛으로 단풍잎처럼 물들며
버스 노래방을 한참 누비다
동홍천 IC로 빠져 나와
403억 로또 당첨 기를 받은 가리산 자락
가리산 막국수 청국장 점심 먹고
첫눈 내려 쌓인 설악산 능선에 안복을 누리고
낙산사 의상대 홍련암 해수관음상
바람 한 점 없는 바다에
파도 파도 그 놈의 파도가 거침 없이 달려들어
살아 온 60여년 옛일을 끌어당겨
새로운 출발을 힘차게 내밀어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길 다짐하다
대포항 일출봉 횟집에서 회갑기념 시루떡을 가르며 저녁을 오지고 배터지게 즐기고
외옹치항 뒷 배경을 왕창 다 쓸어버리고 지은
롯데호텔 지하 노래방에
몇몇 동무들의 노래를 국민학교 음악시간 이후 반백만에 다시 들으며
두 시간 동안
입과 귀 호사하며
딱 한 쌍만 춤으로 오메 기 죽어 부러움을 사고 팔고
속초해수욕장 소나무 숲 뒤 팬션 숙소에 들어 와
목포항 수하물을 꽉 쥐고 있는 힘 좋은 윤식이가 싸들고 온 세발낙지 네 접을 탕탕이로
운전기사 양반 뭔 맛으로 그렇게 자시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가 분다고 다음 날 점심으로 거진항 물회를 먹음시러 이것은 입에 딱 맛는디 어젯밤 살아 꿈틀대는 산낙지는 도저히 입맛을 모르겠다고 그러는디
택도 없는 소리제 산낙지 먹는 맛으로 목포 뒷깨나 째보선창에 가 몇 접씩 먹는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어
나도 첫 근무지가 목포여서 83년 그 때 봉급날이면 둘이서 60마리까지 먹은 적도 있었제
순천서 올라온 광자가 초등학교 2학년 다니다
함평읍내로 전학 갔다며 단감을 두 박스 들고 와 후식으로
친정을 간만에 온 누님의 정을 달게 아삭 아삭 씹으며 밤을 흘러보냈다
강총무가 방 배정을 험서 여자들 11분은 50평 한 팀 모시메들은 술팀 아닌팀 구분하였것만 말은 지지리도 않드러갔고 아침에 일어나봉께 아홉명까지 자부러갔고 덮고 잘 것은 고사허고 낯바닥 딲을 수건조차 천신 못했다고
이것도 언제 또 허것서 서로 웃고 말제
몇 몇은 밤이 알콜 아직 성에 안차고 부족하다며 속초 시내 노래방을 뒤흔들다
새복에 들어왔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그 중에 아직 딱지 떼지 않은 숫총각이 있다는디 참말인가
그러고 두 세 분께서 엄청 자제 했다는 소문 아닌 소문이 떠도는디 한 번 딱거시 해봐야겠네
부엣가심 노릇 않허고 아무튼 고마운 일이제
앞으로도 주욱 그렇게 가세
정말 고맙네
보지란한 몇 몇은 속초해수욕장 곰솔밭 해돋이 용케 수평선에 바로 솟아오른 장관을 넋놓고 보다 찍다 곰솔밭을 눈밭에 개모냥 갈고 다니다 도깨비 바늘이 바지에 딱 달라 붙어 떨어지지 않아
꼴마리 까고 이잡듯 한참을 떼어내는디
그것도 일이라고 허리 다리가 아파 엄청 되드라고
환갑은 확실한가비여
파도는 잔잔헌디
달라들기는 똑 같드라구
동태해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조금 일찍 통일 전망대를 향해 가는디
명물인지 귀물인지
한 여자가 나오는디
생김새는 야물딱지고 살림도 남보다 더 실허게 잘 허는디
그놈의 서방복은 조금 머시기 해갔고
서방님은 다 좋은 디 밤에 사랑은 먼바우 나주 간다고 손만 잡고 자면 애기가 생긴 줄 알았디야
나이백이로 학교 다닐 때 아부지를 겁나게 원망험서
뭐든지 읽어 대는디
애기 안생기는 불임에 대해서 궁리하다
은행 일보러 갔다
주간지 월간지 가릴 것 없이 그런 내용만 나오면 쭉 찟어 갔고 골백번 읽어내니
달인이 따로 없어 꼬부랑 말도 척척 그 분야에 도가 터갔고
남편을 붙들고 사정사정하여 맹근 것이 지금의 이쁜 딸과 아들이어
명은 타고 나는디 어째 남편을 허망하게 보내불고
살림은 튼실하여 먹고 사는디는 걱정없는디
무언가 옆구리가 허전하여
이리저리 심 닿는 데까지 싸돌아 다니며
노래면 노래 동사무소 평생 학습이면 학습
판소리면 판소리 개인교습까지
그럼서 학다리 함평 아그들을 만남서 보내는디
아 글씨 한 놈도 덤비는 놈이 없고
아 맨맛헌 홍어 뭣같이 쬐간허다고 소문난 그 누구냐 강회장 그 놈이 코치를 허는디
귀가 솔깃 허드라고
그래도 세월아 네월아 험서 지내는디 들어볼랑가
다른 년들은 어디서 무엇 허는지
요새는 여자 동창이라고는 나 혼자 나오제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술이면 술 일당백으로
서교 가시내들이 야코가 팩 죽어갔고
2년만에 합동동창회를 작파해부렀당게
근디 어떤 한 놈을 만나 젝팍을 터트렸다는디
어디 한 번 들어볼랑가
어째 강총무 이 작자는 이제사 권했는디
만나면 빰부터 쌔래불고 싶더라구
아 그 전에 북한산 도봉산에 좀 같이 다니며
키 크고 싱거운 그 선생 험서
시를 쓰든디
재경 학교면 면민대회를 가 봤제 근디 거기서 읽은 시 구절 중에
아 그 "나락 익어가는 소리" 그 한 구절에 내가 오짐을 쌀 번 했당께
강총무허고 키 큰 그 놈허고 허는 소리를 들어봉께
즈그들은 이렇게 했대야
결혼 전에는 말 헐 것도 없고
그 건은 절대로 지 지집한테는 입 딱 다물어불고
신혼 초부터
출근 허다 뒤돌어 서서 또 나가다 뒤돌아 서서
퇴근 허고 손도 않 씻고 홀라당 벗어 재끼고
밥 먹다가 눈 마주쳐 입안에 밥태기 풀풀 허쳐감서 뽀시락 장난을 쳐불고
밥상 내다가 또 꼴려갔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앞 뒤 옆 시간 장소 가릴 것도 없이 기술이 출중 허다고
둘이서 염병을 허는디
고지가 않대드라구 거찌갈로 그렇줄 알았제
아 그래 어쩐 때는 밤에 한숨도 않자고 그 짓을 했다는디
동네 가시내들한테
느그들도 진짜로 그랬야고 물어보기도 그렇고
그런 자존심은 있어갔고
혼자 끙끙 앓다가
그래 한 번 강총무 하도 입이 닳도록 해싸는 것이 고마워서
일 한 번 저질러보자 해갔고
요근자에 만난 놈이
물건인지
나이 육십 넘어 이제사 앞이 전깃불처럼 환해지고
뭔 소리가 입에 술술 나와 불드라고
오메 나 죽이네
오메 나 죽이네
나도 이런 세상이 있구나
정말 임자를 진짜 기술자를 만났부렀서
이런 소리 저런 소리 3탄까지 험서
통일 전망대를 오르내리는디
영랑호 왕곡마을 설악산 마등령 미시령 진부령 화진포 이승만 김일성 별장이 뭔 소용이 있어
여성 부회장님 구성애보다 더 구성지고 펄펄 살아 숨 쉬는
펄쩍 펄쩍 날 것으로 튀어오르는 뜨거운 성교육에
60년 먹은 체증이 싹 가셔부렀제
이명박인지 쥐박인지 지 주인장 밥그릇을 종놈인지 머슴인지가 발로 차 분지가
벌써 10년 되아부렀네
형식적으로 안보 교육을 받고
남쪽 최북단 명파리 끝 DMZ 안으로 들어서
학다리중앙 43회 환갑기념 플랑카드 펼치고 걸어올라
전망대 위에 서서 북쪽을 바라보니
바람 한 점 없이 금강산
여름 봉래산을 거쳐
가을 단풍 다 져버린 풍악산은 이미 겨울 흰눈이 쌓인 개골산이 되었드라구
해금강 말무리반도 바위산은 파도에도 꼼짝 않고 면면히 푸른 동해 난바다와 눈싸움을 허고 있드라구
바람 한 점 없는 가을볕 아래
고요와 정적 언제 터지질 모르게 무섭다는 걸 절절하게 느끼며
트럼픈가 장사꾼인가 누군가 코 큰 미국 대통령이 이 번에 와 무기만 팔고 가면 되는디
부동산업자 본색으로 검은 소리 흰소리 해갔고
전면전이나 국지전이 일어나면
민족의 비극 생각만 해도 진저리
아무튼 생각조차 허기 싫은 일이제
이 곳 동경사 22사단 노크귀순 다시 일어나
몇 몇 군인 모가지가 떨어지면 큰일이제
근디 노크 귀순 그 것은 언제 어디든 일어나도 좋은 일 아닌가
그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저절로 통일되고 말 것 아닌가
서울 떠나기 전 일기예보로는 이틀 동안 비가 온다고 걱정이 태산이었는디
너무나 좋아부러 조상과 신이 우리를 도와 주지 않았는지
여기 온 친구들이 그 동안 세상을 잘 살았다는 증거가 아닌지
진짜 보기 드문 날씨가 되어 마음이 30년이 더 오래 살 수 있는 심 붙어갔고
내년에 해외여행 추친하는디
심이 생겼다고
강총무 장기집권 종신총무로 임명하였는디
어쩔랑가
아무튼 참가 한 동무나
사정이 있어 못 온 동무나
이제 한 번 시작 했은께 내년에는 훨씬 수월 허것제
모다들 있는 심 없는 심을 보태세
정말 고마운 동무들아
항꾼에 즐겁고 만나면 신빨나게 놀아보세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만나면서 세월을 이겨내세
그 동안 잘도 참고 잘 살아 오지 않았는가
강원도 여행의 아쉬운 점은
일요일 귀경이 넘 어렵다는 점
점심을 거진항 물회를 스트리 있게 후루룩 퍼먹고
일찍 출발하였으나 막히다 움직이다 애간장 다 녹아 부렸제
그래도 기사분의 안전 운전과
빈 도로를 잘 비집고 한 시간 여유를 두고 서울에 들어와
이제는 없어져버린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대구탕골목 원대구탕 버스 안에서 예약한 덕으로 우리만 들어가는 방에서 급허게 속을 달래고
참가는 못 했으나
광주 사는 사거리 명암 김영숙의 정이 담긴 기념 수건 한 장씩 받아
8시 전후 목포행 여수행 열차와
9시에 부산행 열차로
다음 얼굴 볼 약속을 분명 굳걷히 지키기로 하고 헤어졌다.
가을이다 분명 해찰하고 싶지만
이제는 참고
철부지로 짜잔하게 놀지 말고
착실허게 잘 보내세
동무들아 참말로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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