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이야기

놓고 오자

정종배 2020. 12. 22. 22:30






놓고 오자/정종배



오늘은 집사람 내일 오픈 인사동 그림 운반과 파주시 운정동 액자집
은평뉴타운 중심으로 남과 북 각각 20Km 떨어진 두 곳을
오랜만에 오전 오후 운전기사 노릇을 하였다

저녁 먹고 마실길 무장애데크탐방로 얼음 위 돌멩이 안부를 묻고자
산보가려 옷을 입고 장갑을 찾았다
한 짝 뿐이었다
이곳 저곳 곳곳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 저녁 400년만에 800년만에 목성 토성 대근접 우주쇼 동참하려
아이들이 먼저 자리 잡아준 기자촌공원 끝자락
집사람과 그곳까지 가면서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기자촌 11단지 도롯가 인도에서 장갑을 벗고서
핸드폰 사진을 찍은 기억이 되살아 나
무장애데크탐방로 쪽이 아닌
어제 집사람과 함께 걷던 길을 되집어 걸었다

기어이 찾고야 말겠다 호기롭게 걷기 시작하여
마스크에 작은 눈을 부라리며 인도 좌우 추위에 떨고 있는 꽃밭을 이 잡듯 샅샅이 뒤져 가며
은평뉴타운 기자촌 11단지 안 계단 아닌 인도를 오르내렸다

대한민국 전동차 분실문 실험에서 외국인들이 놀라는 것은
전동차 안의 물건 대부분 없어져 그러면 그렇지 하다가
전동차분실문 센터에 85%가 되돌와 있어 더욱 놀랐다는 기사 내용까지 꺼내어

기어이 찾아야겠다는 비장함으로 걸음에 힘이 들어 갔다
수도원과 교회 사이 어제 장갑을 벗은 지점에서는
지뢰탐지기마냥 인도 석축 꽃과 나무 데크 도롯가 등 의심 가는 곳을
온힘을 동원해 찾았다

옛 기자촌 지금은 기자촌공원으로 한국근대문학관 예정지 도롯가 인도에서는
모래밭에 바늘 찾듯 지나가는 사람이 고개를 가우뚱거릴만큼
정신을 집중하여 찾았지만 장갑 한 짝은 없었다

두 군데 경비실에 한 짝의 장갑을 들어 보이며 혹 들어온 게 있느냐 물었다
경비원 아저씨 석식 후 졸음만 쫓을뿐 미안했다
교회와 수도원 경사가 심한 인도를 세 번 오르내렸다
잃어버린 한 짝을 찾는 걸 포기하고

그러면 친구를 잃은 한 짝을 놓고 가자
집에서 단짝을 잃어버린 장갑을 보면서 신경 쓰는 것보다는
혹 한 짝의 장갑을 주운 분이 내일 아침 산보길에 짝을 찾아
두 손 모두 끼고서 따뜻한 겨울나기 도움이 되었으면
나이드신 폐지를 줍은 분이 주인공이었으면
더 없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렇게 마음 먹고 어제 장갑을 벗은 지점 아파트 정문 입구에
장갑을 놓고서 고별식을 가졌다

마음이 날듯 무지 편해졌다
찾으러 가는 길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되돌아오는 길
숲속의 향기 도서관 앞 온도가 올가가는 그늘에서
마지막 숨을 쉬고 있는 눈사람도 눈에 들어 왔다

낙이망우 망우리공원 사색의 길 아래 대향 이중섭 유택에서
한겨울 저녁노을 반겨맞아 장갑을 벗고서
핸드폰에 노을빛을 담고서 나온 뒤
버스정류장에 와서야 가죽장갑
한 짝이 없는 것을 알고서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 잃어버린 한 짝을
추위에 온몸을 움추리고 찾은 뒤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르른 소나무야
대향이 평소 즐겨 불렀다는 독일민요를 부르며
되돌아나오던 길이 어찌 그리 무서웠던 추억을 되새겼다

잃어버린 놈이 더 죄를 짓는다는 말의 무게를 실감하며
부족한 물건을 끌어안고 끙끙대기보다는
놓고 오자 실제 실행하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지난 가을 아들 놈 문수봉 만년필 바위 옆 좁은 틈에 빠트려
천지가 무너지지 않는 한 그 자리 지킬 핸드폰
만년설 크레바스에 꽁꽁 언 몸으로 수 백년만에
기후온난화 여파로 드러나는 현실이지만
살아생전 두고두고 잊지않을 놓고 오자
그 마음 쾌하게 실천하여
가벼운 걸음으로 살아가길 빌어본다

이제는 찾지말고 놓고 오자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이어

'정종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가정 축일 가정 성화 주간  (0) 2020.12.27
제보자X 죄수와 검사  (0) 2020.12.25
쫄보  (0) 2020.12.14
12.12사태  (0) 2020.12.12
언론개혁  (0) 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