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마산리 표산 고분군 황의돈 1938.6.30. 조선일보 / 정종배
2021. 3. 10. 15:55
내 고향 함평군 학교면 마산리 표산 고분군 일명 왕구데미 8장수 무덤을 1938.6.30. 조선일보 황의돈 기자가 향토문화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마산리고분군을 취재하였다.
고구려와 관련이 없고 이미 도굴을 당했지만 석실을 드나들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엄청난 규모로 봤을 때 백제시대 지방 호족의 무덤이라고 인정했다.
도굴한 유물이 일본 어느 공간에 있을까
어릴적 들었던 내용은 일제시대 도굴꾼을 머슴으로 위장시켜 3년 동안 부장품을 싹 쓸어 갔다.
새마을운동 마을 앞 길 넖힐 때 작은 고분 석실 돌을 빼내 석축을 쌓았다
학다리중앙국민학교 통학로 꾸정다리 한자로 군정교 群政橋 고분을 쓴 뒤 참배객들이 몰려들어 물이 꾸정물이 되었다고 이름을 지었다
놋두개 노자돈을 놓고 넘는 고개였다. 새마을운동 시작할 무렵 고개를 신작로로 낼 때 구경하였다. 불도저로 밀어내는데 정상 부근에서 성황당 돌무더기와 상당량의 엽전이 나왔다. 지금의 동함평 IC 톨케이트 통과비가 쌓이는 것도 지명과 연관이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옛날 옛적 아기를 낳았는데 배에 임금 왕자가 새겨져 있어 궁궐에 알려질까봐 바로 엎어버려 묘를 썼다고 어른들의 이야기를 귀동냥하였다.
어릴 때 아이들은 종영이 형네 할머니라 말하였다. 그 종영이네 할머니 딸이 함평읍 수호리 해동 출신 노동자 시인 조영관의 할머니이다. 또랑시인 대고모할머니이다.
영관은 학다리 중학교 동기로 군밤타령을 잘 불렀다. 서울 성동고 문예반 활동과 서울시립대 도시행정과 입학 후 영문과로 전과하여 졸업했다. 인천 부평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하였다.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용직 노동자들의 노동공동체 설립을 추진하는 등 더불어 일하고 나누는 평화로운 세울 꿈꾸었다. 영관이는 솔아 솔아 푸른 솔아` 작시를 남긴 박영근 시인과 막역한 사이로 박시인의 마지막을 지켰다. 2002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영관이는 간암으로 2008년 2월 20일 문학의 길을 시작하다 너무 일찍 생을 마감했다.
1주기를 맞아 유고 시집 '먼지가 부르는 차돌맹이의 노래'를 펴냈으며, 10주기를 맞아 동료 작가들과 추모사업회와 유족들의 합심으로 '조영관 문학전집'이 세상에 나왔다.
제11회 조영관문학창작기금 작품 공모 안내문을 소개한다.
일생을 시대의 아픔 곁에서 삶의 변두리에 투신하여 시와 함께 빛나는 먼지가 된 사람. 한 권의 유고 시집 속에 잠든 한 시인이 있습니다. 소탈했으나 비범하였고, 단단했으나 따뜻했던 그의 마음과 태도를 기려 '조영관문학장작기금' 수혜 작품을 다음과 같이 공모하오니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또랑시인 인천에서 1990년에서 2000년 10년 살 때 두 번 만났다. 백마장 길 위에서와 인천지역문화패의 장구를 배우면서 그 곳에 들른 영관이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어릴 때 할머니와 내 고향 진외갓집에 자주 들렸다며 근황을 이야기하였다.
지난 3월 6일 토요일 모란공원 영관이 묘역에서 치른 창작기금 수여식과 추모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전날 춘천 김유정 문학관을 일군 전상국 선생님을 뵙고 난 뒤라 몸 상태가 허락하지 않았다. 요즘은 외출하고 난 뒤면 이틀은 쉬어야 한다.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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