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 58 시인 박인환
2026년 3월 20일 오후 2시 <망우역사문화공원> 박인환 시인의 유택에서 “시인 박인환 서거 70주기 탄생 100주년 추모식”이 열렸다.

전 경향신문 기자 조운찬 문필가 사진 / 정종배
이 자리에서 전 경향신문 기자였던 조운찬 문필가는 경향신문사 근무 기자 선배이기도 한 시인 박인환과 소설가 김광주의 일화를 소개하였다.
소설가 김광주의 필화사건을 겪을 때, 앞장서 그 문제점을 밝히고 기사화하면서 권력에 맞서 행동을 보여준 이가 시인 박인환 기자였다고 밝혔다.
한국전쟁 전후 댄디즘에 젖은 댄디보이로 버버리 깃 세우고 명동의 골목을 휩쓸고 다니며 모더니즘의 시를 쓴 시인으로만 알려진 시인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설가 김광주는 1952년 1월호 《자유세계》(홍문사) 창간호(발행인 조병옥, 편집인 임긍재)에 「나는 너를 싫어한다」는 소설을 발표했다. 이는 한 고위공직자의 아내가 테너 가수인 주인공을 댄스파티로 데려가 술을 먹이고 유혹하지만, 주인공은 이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고 부인을 뿌리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에 대하여 제2대 및 제4대 공보처장을 역임한, 당시 제4대 이철원 공보처장의 아내가 이를 자신을 모델로 하여 쓴 작품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소설가 김광주를 납치 감금하여 폭행하고 소설이 실린 월간종합잡지 《자유세계》의 창간호를 수거하는 등 이승만 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자유세계 창간호 사진/인터넷
1952년 2월 17일 사건 사흘 뒤, 1952년 2월 20일 《경향신문》 2면 기사 "「백주에 고관 규중(閨中)에서」 - 소설가 김광주 씨를 인치구타, 작품 「나는 너를 싫어한다」를 의심끝에"가 그 직후 상황을 알려준다.
경향신문 문화부 경력의 시인 박인환은 선배를 위해 발 벗고 나서 대구에 피란한 ‘재구(在邱) 문화인’을 설득했다. 김팔봉·박두진·박목월·전숙희·정비석·조지훈·최정희·홍성유 등 문인과 배우 김동원·김승호·이해랑·최은희 등 45명은 사건이 일어난 나흘 뒤에 2월21일 폭력범을 처벌하고 처장 부인 이씨가 공개 사죄하라는 성명서를 냈다.
이 성명서는 폭력 당사자 처벌뿐 아니라 전국 문화인에 대한 처장 부인의 서면 사과를 촉구했다.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에 속한 문화예술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현대필화사』 제1권은 "절대다수가 강경대응책을 주장"했다고 말한다.
조운찬 문필가는 박인환 시인은 문화부 기자가 아니라 사회부 기자로 경향신문 기자 프로필에 기록되어 있다고 증언했다.
이승만 지지파인 김광섭과 모윤숙의 활약으로 인해 김광주의 반성을 촉구하는 엉뚱한 성명서가 나오기는 했지만, 문인들의 일반적 분위기는 달랐다. 이승만 정권은 문인들의 분노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김광주가 곤욕을 치른 다음 날, 공보처는 소설가 김광주의 단편소설 「나는 너를 싫어한다」가 실린 《자유세계》창간호를 압수했다. 2월18일 작품 게재 잡지가 압수되자 한국기자협회도 나섰다.
『한국근대문학연구』2019년 제20권 제2호에 실린 진선영 이화여대 교수의 논문 「폭로소설과 백주의 테러 – 1952년 <자유세계> 필화사건을 중심으로」는 "<공보처>가 부산에서 293권, 대구에서 307권의 《자유세계》잡지를 압수하였다"라고 한 뒤 "「나는 너를 싫어한다」전문을 파기한 채 홍문사로 돌려내보냈다"라고 말한다.
전쟁 와중에 공보처 직원들이 《자유세계》를 수거하느라 부산과 대구의 서점을 찾아다니며 수색하였다.
탄압은 그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사건 6일 뒤에 보도된 2월 23일자 《동아일보》 2면에 따르면, 공보처장은 직원들을 각 신문사와 통신사에 파견해 '사건을 보도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 또 자기 명의의 공문을 각 언론사에 별도로 보내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경향신문 1952년 2월 20일 기사
소설가 김광주는 1948년 아들 김훈을 얻었다. 소설가 김훈의 수상록 『라면을 끓이며』 중 「광야를 달리는 말」에서는
광복과 한국전쟁이라는 혼란의 시대에 한계를 마주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심경이 잘 담겨 있다.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볼 수 있겠느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또 말했다.
"내 말이 어려우냐?"
아버지에게 말을 달릴 선구자의 광야가 이미 없다는 것을 나는 좀 더 자라서 알았다. 아버지는 광야를 달린 것이 아니고, 달릴 곳 없는 시대의 황무지에서 좌충우돌하면서 몸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 「광야를 달리는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