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이야기

문동만 시집 <구르는 잠>을 읽고

정종배 2018. 7. 24. 18:16

어제 오전 노회찬 최인훈 두 분의 부음에 머리가 텅 비어 집 안에서 뒹굴었다.

저녁 산책길에서 두 젊은 청춘의 호연지기와 순정한 마음과 행동을 보고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문동만 시인의 [구르는 잠] 시집을

오늘 하루 천천히 곱씹으며 읽었다.


문동만 시인은 학다리중학교 동기인 노동자 시인 조영관 문학상 행사장에서 처음 만났다. 


영관이와는 부평에서 두 번 마주쳐 근황을 묻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늘 빚진 마음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뒷전에서 응원하고 기도했다.


오늘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문제가 타결됐다.


<먼저 죽은 X명처럼>에서 2010년 3월 21일 스물 셋에

직업병으로 쏙 빠진 대머리에 몸무게 30kg 백혈병으로 운명한

박지연 씨의 억울한 명부록을 써 내려갔다.

 

-중략-

인간은 운명을 모르고 태어나는 존재들이라 그게 속을 썩이지. 왜 일찌감치 와서 아프지 않은 얼굴로 우는거에요. 이제서 바싹 마른 뼈 위에 막 살도 오르네. 봄이라, 당신에겐 억울하겠지만 봄이라, 당신 머리칼도 산달래처럼 몇 가닥 오르네. 아무튼 아프지도 않고 숨소리도 없는 박지연씨. 당신처럼 쌉싸름하고 아랑아랑 현기증이 날 땐 못 가본 라스베이거스만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악수도 못 했네. 잠시 억울한 명부록은 접고, 자! 손아리도 한번.


전쟁이 곧 터질듯한 남과 북의 대치 상황에서

숨통이라도 트인 대화와 소통 국면의 기틀인 촛불혁명의 못자리인 세월호 거룩한 희생을 이렇게 노래했다.


<소금 속에 눕히며>


억울한 원혼은 소금 속에 묻는다 하였습니다.

소금이 그들의 신이라 하였습니다.

-중략-

아이 둘은 서로에게 매듭이 되어 승천했습니다.

정부가 삭은 새끼줄이나 꼬고 있을 때

새끼줄 업자에게 죽음을 청부하고 있을 때

죽음은 숫자가 되어 증식했습니다

그대들은 눈물의 시조가 되었고

우리는 눈물의 자손이 되어버렸습니다

-중략-

소금 속에 눕히며

눕혀도 눕혀도 일어나는 그대들

내 새끼 아닌 내 새끼들

피눈물로 만든 내 새끼들

눕히며 품으며 입 맞추며


또랑시인은 촛불혁명 기간 빠지지 않고 광화문 광장에서 구호를 외치고 자리를 끝까지 지켰지만

행사장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


피로 묶인 가족들로부터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도 못하고 근근히 제 살을 뜯어 먹고 사는 노동자.

유모차로 골판지와 빈 병을 모으는 가난한 노인,

밤낮을 바꿔 사는 눈썹이 하얗게 센 소방관,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묵묵히 치우는 청소부 등 가장 소외되고 어두운 곳에서 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인정어린 시선으로 다가간다.


시집 구르는 잠. 시인의 말을 낭독한다.


나는 시가 되기 힘들었다. 나는 나에게 감동한 것이 희소했으므로 핏줄이나 사회적 혈연들에게서 그리움이나 한탄이나 웃음을 구했다. 가만히 두는 아름다움을 동경하며 부대끼는 자연과 사람들의 이마를 어루만지고 싶었다. 살아온 대로, 쓴 대로 살다가 가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나는 품는다. 비약보다는 이어가는 나날을. 줄 때는 정말 좋은 것을 줘야 하는데, 아끼는 마른 것들을 주어야 하는데 시들이 이끼처럼 젖어 있다. 나는 장난기 많은 사람이었는데 진지하고 엄숙한 세계로 편입되고 말았다. 시는 본래 이런 영역이러니 우기고도 싶다. 그러나 언제나 가벼운 날들을 열망하리라. 9년 만에 시집을 엮는다. 좋아하고 연민했던 사람 몇몇이 먼저 스며든 서쪽에서 시를 고쳐 쓰곤 했다. 거긴 날마다 석양이 꽃처럼 피는 곳, 피는 것 속에서 지는 것을 먼저 보는 병을 그냥 삶이라, 시라 받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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