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이야기

표산 장고형고분 왕구데미

정종배 2017. 10. 19. 22:15

 

 

 

함평 학교면 마산리 고분(표산 뒷산 왕구데미)

정종배|13.06.27|77

 

함평 마산리 고분은 왕릉급 지방수장층 무덤

내 어릴적 뛰놀던 고향(표산) 뒷산입니다. 그 고분 위에서 놀았던 놀이는

호박잎을 말려 대나무 파이프로 담배 피우기. 쌀을 훔쳐내 고분 황토를 파내 이리저리 구들장을 놓아 통조림 깡통으로 밥지어 나눠먹기, 모의간첩잡기, 술래잡기 및 땅따먹기 만경. 돼지오줌보 및 쌔끼로 돌돌 말은 공으로 축구시합. 단오날 그네 타기. 가뭄에 기우제 지내며 남자들 오줌싸기 그걸 받아 냇가에서 아녀자들의 오줌싸기. 백중날 머슴들의 씨름장 등 다목적 놀이터와 신성함이 공존하는 마을 공동체 난장이었습니다.

어릴적 이야기 어느 할머니께서 아들을 낳았는데 등에 왕자가 새겨져 있어 역적으로 몰릴까 우려해 아들을 몰래 죽여 여기에 묻었다는 전설 아닌 전설로 이야기 샘이었습니다.ㅡ일명 왕구데미, 팔장수 무덤, 후백제 토호세력의 무덤으로 불렸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측에서 머슴으로 위장한 전문 도굴꾼들이 싹쓸이 도굴로 인해 유물 출도가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릴 적 어른들의 이야기로는 석실 안에 들어가 소꼽놀이 및 일탈 장소였다합니다.

70년대 전후 새마을 운동 시작할 때 석실을 빼내 도로 석축으로 사용하는 무지함을 드러냈습니다.

요 근자에 일본인들이 관광버스로 관리 상태를 보러 와 안내를 부탁하여 집안 동생이 안내하며 보았는데, 지도에 낱낱이 기록 되어 복사본이라 하나 주라하였으나 주지 않고 갈 정도로 일본인들의 기록과 사후 관리에 대한 철저함과 관심에 놀랐습니다.

작년 소설가 한승원 장흥 해산토굴에 집사람과 인사차 방문하였을 때, 마침 <영산강은 이야기하며 흐른다>(김영사) 집필 중 내 고향 함평 사포나루에 어부가 현재 작업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여 주라 하여 학다리 중고등학교 단골 소풍과 행군지지인 사포나루를 찾아가 한승원 소설가와 어부를 연결하여 원고를 마무리 지었다. 그 책에 이 고분에 대한 이야기를 한 꼭지 넣었습니다.

현재 함평군에서 고분공원을 조성하려 사전 조사차 발굴한답니다.

내 고향은 원래 표주박형국이라 표주박 표산이라 하였는데, 일제 강점기 1914년 대대적인 행정구역 조정시 무안군에서 함평군으로 편입하면서 북두칠성 표로 고쳐 현재 표산으로 불립니다.

그 고분으로 인해 초등학교 등하교 시 건너다니는 다리가 꾸정다리라 하였으나 한자로는 군정교(무리군 정치할 정)로, 고분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건너 꾸정물(흙탕물)이 흘렀을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라 하였습니다.

고향 터(진주 정가 집성촌 번성하였을 때는 80여호였으나 현재는 35여호)를 잡을 때 선조들이 350년 지나면 너희들 땅이 아닐 것이라 하였답니다.

당산나무 고사와 앞 구렛들 들판으로 무안공항 고속도로. 뒷산 가까이 동함평 IC, 그리고 군에서 동함평산업단지 유치와 고분공원 조성으로 섬 아닌 섬으로 정든 고향을 떠나 실향민으로 살아야 할 형편입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후로 엄마가 몸이 아파 외가에서 요양을 할 때, 엄마 보고파 견딜 수 없을 때 달려가 고분 위에 앉아 노을이 물들 때까지 엄마 생각만 하다 내려오곤 하였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봄 방학 끝날 무렵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어 장례를 치르고 얼마 뒤, 그날도 엄마 생각나 고분 황토만 손으로 만지작거리다 노을이 사라져 터벅터벅 내려와 집에 오자, 베 짜는 소리가 들려 문을 벌컥 열였습니다. 그렇게 보고싶던 엄마였습니다. 그래서 춤까지 추며 좋아라 한지가 벌써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흘러 그 엄마는 지난 2월 영면하시어, 이제 영원히 불효자 가슴 안에 모시었습니다.

그래 지금도 노을이 들면 어머님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그렇기에 좋아하는 노을 보러 그렇게 마냥 서해바다로 내달리나 봅니다.

이제는 노을 앞에 서면 어머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평생 아프신 몸으로 자식들을 위해 함박웃음 웃으시던 마음으로 저희 앞길을 열어주시길.....

싱거운 불초자 샛째 엄마. 다시 한번 불러봅니다.

오늘밤 꿈 속에 오시어 생전인듯 싱거운 놈이라 다시 한번 씽긋 웃어주시길......

【뉴시스와이어】- 백제에서 온 동전무늬 새김 전문도기 출토

 

동신대학교 유적조사단(단장 이정호 교수)과 함평군(군수 안병호)이 지원하는 함평 마산리고분군(전라남도 기념물 제122호) 제1호분에 대한 학술발굴조사 성과를 최근 중간 마무리하고 그 결과를 27일 오후 2시 현장에서 공개한다.

 

마산리고분군은 전남 함평군 학교면 마산리 산16-2번지 일대에 소재하는 삼국시대 고분 떼이며, 현재까지 13기가 존재한다고 보고됐다. 이들 고분에 대해서는 제1호 이래 13호까지 편의상 번호를 붙여 구별한다.

 

 

↑ 함평 마산리 고분은 왕릉급 지방수장층 무덤

이 중에서 이번 학술발굴조사를 벌인 곳은 제1호분. 이 고분은 무덤 주인공을 묻은 봉분이 평면 원형인 데 비해 그 전면에는 방형 단을 마련했다 해서 이른바 전방후원형(前方後圓形), 혹은 장고형 무덤으로 분류된다.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13기가 보고된 이런 전방후원형 고분은 고대 일본의 무덤 양식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고분의 성격과 관련해 한일고대사의 논쟁이 되고 있다.

 

이번 발굴조사 결과, 무덤 주인공을 안치한 석실은 장방형으로 길이 523cm, 너비 250cm, 높이 290cm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석실 규모는 현재까지 확인된 전남지역 삼국시대 고분 중 최대 규모이며, 백제지역에서도 최상위 그룹에 속하는 초대형급에 속한다. 견주자면, 지방에서 발견된 무령왕릉인 셈이다.

 

이 고분의 석실구조는 입구에 문이 있고, 그 안쪽에 석실을 마련한 횡혈식석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 무덤은 이미 극심한 도굴로 인해 출토 유물이 거의 없는 편이다.

하지만 석실 내부에서 백제 토기 조각 약간과 함께 시유도기(施釉陶器), 즉, 겉면에 유약을 칠한 도기의 일종인 전문도기(錢文陶器. 동전무늬장식 도기)가 출토돼 비상한 관심을 끈다.

 

이런 시유도기는 서울 풍납토성 등지의 백제 중심지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는 중국계 항아리로서, 간혹 백제 영역 내에서 활동한 지방세력 무덤에서 출토되기도 한다. 이는 중국에서 수입한 도기 일종으로 알려진 데다, 일부 계층에서만 사용한 기종(器種)인 까닭에 당시 백제 중앙세력과 지방세력의 정치적 관계를 표상하는 유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전문도기가 해남 용두리고분(2008년 발굴)에서도 출토된 적이 있으나 작은 파편이어서 고분의 성격을 판단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함평 마산리고분에서 확실한 개체가 출토됨에 따라 이 지역 전방후원형 고분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 고분의 시기는 석실구조와 토기 등 출토유물로 보아 6세기 초반 무렵으로 추정된다.

 

한편, 마산리고분군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전방후원형 고분과 원형분 13기가 집단으로 조성된 고분군이다. 따라서 향후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각 고분의 상호관계를 파악한다면 한일고대사 연구의 논쟁이 되고 있는 전방후원형 고분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사진설명 : 마산리고분군에서 발굴된 동전무늬장식 전문도기

 

 

출처 : 함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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