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망우인문학

110주기 8.29 경술국치

정종배 2020. 8. 29. 00:40









110주기 8.29 경술국치/정종배

1910(경술)년 8월 22일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합병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었다. 일본 야스쿠니 신사 안쪽 일본 전쟁기념관 유슈칸에는 이날을 기준으로 조선을 통치했다고 전시하고 있다. 대륙과 조선을 지배하기 위한 끊임없는 침략전쟁 임진 정유 양란을 포함 화살표로 대한대협을 건너는 야욕을 드러낸 지도를 그려 걸어 놓았다. 이완용 총리대신 이름을 볼 수 있었다. 가미가제특공대 대원 중 한국 청년의 이름도 있었다.

8월 22 일 대한제국의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친 뒤 조약을 통과시켰다.
8월 29일 조약이 공포되어 대한제국은 국권을 상실했다. 이로써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실질적인 통치권을 잃었던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에 편입이 되었고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었다.

통상적으로 조약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위임, 조인, 비준의 3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을사조약은 이 세 절차 중 어느 것 하나도 거치지 않았다. 이에 당시 언론은 ‘勒約(늑약)’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고종도 을사조약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였다.

이에 일제는 한ㆍ일 병합조약만큼은 완전한 형식을 갖추도록 추진하였다. 그러나 비준 단계에 해당하는 한국 황제의 조칙 문서에 결함이 생겼다. 즉, 한국 황제의 비준서에는 대한국새가 아닌 행정 결재에만 사용되는 칙명지보(勅命之寶) 어새가 찍혔고 순종의 친필 서명도 빠져있다. 따라서 이약 역시 그 성립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2017년 2월 18일 릿쿄대학 성공회 성당에서 열린 제10회 윤동주시낭송회에 (재)수림문화재단 후원 청리은하숙 세계시민학교 활동으로 또랑시인 유시경 성공회 신부님과 학생 2명 총 4명이 참가했다. 유시경 신부님은 릿쿄대학 교목으로 10년 동안 시무하며 윤동주 시낭송회 개최와 윤동주 장학회를 설립했다.

1985년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명동촌 공동묘지의 윤동주 묘를 처음 확인했고, 일본어로 번역된 윤동주 시의 번역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던 윤동주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해온 와세다대학 오오무라 마스오 교수의 격려를 받았다.

행사장과 뒤풀이에서 관동대지진 다큐제작 오충공 감독과 재일한국인 여성문예지 《봉선화》 주간 오문자 선생 그리고 한국 음식을 일본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있는 박현자 요리연구가를 만나 지금까지 교류하고 있다.

또랑시인 동경 한국학교 특강으로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의 생애와 망우리공원 인물과 한일관계’를 강의와 대화 시간을 통해 망우리 인물을 소개하였다. 특히 아사카와 다쿠미 폴 러쉬 김희수 하정웅 선생의 디아스포라적 삶을 강조하였다.

김득영 교장선생님 박경란 무용선생님 두 분은 청리은하숙 참가하여 교류를 맺고 있다. 청량고에서 같이 근무한 파견교사 유호정 선생님과 재회하여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박경란 선생님은 2018 년 태경 김병기 화백 동경 방문 때 함께 하여 1930년대 중반 이후 동경에서 예술인들의 삶과 예술혼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를 얻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 화수분인 낙이망우 망우리공원 동학혁명을 거쳐 일제에 의해 강제로 나라의 주권을 잃어버린 이후 4.19혁명까지 망우리공원과 관련 된 인물은

13도창의군탑 왕산 허위와 이인영 의병 등
대한독립선언 39인 중(2분) 안창호 박찬익
기미독립선언 33인 중(7분) 오세창 한용운 박희도 이종일 나용환 박동완 홍병기
망우리공원에 묻혀 있는 독립운동가(19분)
한용운 유관순 서동일 오재영 김병진 오기만 문일평 오세창 유상규 방정환 서광조 이강덕 (박희도 이병홍 장덕수 조봉암 이영학 김분옥 김기만) ( ) 안에 계신 분은 서훈을 받지 못한 분
망우리공원에 묻혔다가 이장한 독립운동가(23분)
안창호 김영랑 김정규 나운규 강학린 문명훤 김승민 박찬익 김진성 서병호 김사국 박원희 이종일 나용환 박동완 홍병기 송진우 백대진 조종완 김봉익 이탁 (김동명 최백근) ( ) 안에 계신 분은 서훈을 받지 못한 분

김춘배(정춘산)의 묘지는 본인인지 아직 확인이 안 되고 있다
4.19혁명 박동훈 열사 수유리현충원으로 이장

한용운 오세창 문일평 방정환 오기만 유상규 오재영 서동일 서광조 등의 묘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
본인 묘비가 없는 분은 김병진, 서동일은 부인묘비만 서 있다.
이장할 때 묘비를 세워 둔 분은 박찬익 박원희 문명훤 강학린 김승민 김진성 서병호 김봉익 김정규 이탁 등이고
묘비를 묻고 가신 분은 김영랑 나운규 김사국 조종완 김동명 등이다.

망우리공원 관련 인물 중 반민특위 피의자와 소환된 자 명단에 들어가거나 조사를 받은 박희도와 오긍선 두 분이다.
박희도 3.1혁명 민족대표, 시중회 회원 국민총력 조선연맹 참사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 등으로 활동한 박희도는 1949년 2월 21일 서울 신설동 자택에서 반민특위 김제선 조사관의 출두명령을 받고 이튿날 출두하였다. 이후 그는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으나 최종결과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해관 오긍선 교육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 경성부회 의원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경성기독교연합회 평의원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 등으로 활동 하였다. 1949년 친일 반민족 행위에 대한 조사가 착수되자 8월 반민특위에 자수해 취조를 받고 풀려났다.

임시정부 국무위원 김승학이 김구 지시로 작성한 친일파 263명 ‘반민특위’ 살생부 초안에 들어간 망우리공원 관련 인물은
3.1혁명 민족대표 33인이지만 시류 따라 기웃거린 기회주의자의 변절 행로 박희도(정치)
근대화 지상주의에 매몰된 재사 황국신민화운동의 기수 장덕수(언론)
친일의 길 걸은 여성 지도자의 대명사 김활란(교육)
근대 예술을 빛낸 팔방미인 일제강압으로 내선일체 합리화 영화감독과 작사한 석영 안석주(문학 영화)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지도위원으로 일제말 전쟁 지원 강연 숙명여대 초대 총장 임숙재(교육)
의학 교육 발전 및 최초 고아원 양로원 설립 등 활동하며 친일한 해관 오긍선

민족문제연구소 간행 친일인명사전 708에 수록된 인물은
박희도 오긍선 김활란 임숙재(교육자) 함세덕 이광래(연극) 장덕수(정치인) 최신복 김상용(문학) 안석영(문학 영화) 윤상필(군인) 홍재설(군수) 등이다.

망우리공원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화수분으로 전수조사를 통해 나라 사랑과 문화 사회 교육 정치 경제 등의 기틀을 다진 분들의 삶을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행복한 나라 국민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망우리공원 서동일 독립운동가는 이장하여 부인묘에 합장 부인명의 묘비로 본인 이름 묘비명도 없이 묻혀있다 연보비에서 400미터 떨어져 찾아가기 어렵다.
문명훤 연보비와 이장 묘지 터도 이에 못지않다 동락천 약수터에서 솔밭약수터 위로 망우산 제3보루 넘어 있다.
김병진 묘역은 떼 한 장 살지 못할 정도로 큰 나무로 둘러싸여 답사할 때마다 부끄럽다. 친일한 분들의 묘역과 비교하면 초라하여 학생들에게 설명하기도 민망하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예우를 국립현충원에만 국한하지 않고 폭넓게 적용하는데 망우리공원도 포함하겠다고 보훈처에서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