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마음을 속일 수 없을 때
'예'도 아니고 '아니요'도 아닌
서로 얼굴 붉히지 않는 선에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싫습니다' 고백하지 못했다
시대의 죄인으로 진실한 것 말고는
길 없는 아수라였다
머리와 입말만 앞세우며
긴가민가 뭉그적거리는 몸짓을 버리고
누구라도 먼저 이웃 되어
손과 발과 가슴으로 안아주길
가을은 열매가 떨어져
그 나무 그늘 아래 허리 굽혀
겸손을 줍는 계절
이도 저도 아닌 양비
이제 그만 사다리를 펴고 접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를 빌지만
오늘밤도 도토리가 떨어진다
부끄러운 일등으로 내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