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시

김진숙의 봄에 만나요

정종배 2021. 2. 7. 14:01















김진숙의 봄에 만나요/정종배


함평천지 고향을 다녀오며
서울역에서 희망뚜벅이 행진과 만나려
도착 시각 맞추어 내렸다
일행은 조금 앞서 지나갔다
우리 동네 엄마들이 농번기 틈새로
장맛비에 한 동안 폭포인
철성산 바위에 떨어지는 물을 맞아
무너진 삭신을 추스리려
이른 새벽 고개를 넘어가듯
청와대 분수대를 향하여 걸었다
제주 추사 유배지 담장 아래
수선화 꽃망울 터트리듯
김진숙 복직 구호를 입고 걷는
노동자 등에도 꽃샘추위 꽃이 핀다

5공 해직 노동자 김진숙 가슴에는
암이란 피눈물 꽃다발이 걸렸다
36년 멈춘 봄을 맞으려
아픈 몸을 다독이며 부산에서 출발하여
미얀마 군사쿠데타 부당성을 알리는
젊은 청년 이주노동자 격려와
사회적거리두기 지키며
중무장한 경찰 대열 사열하듯
광화문과 경복궁 궁궐 담장 옆을 지나
경찰청 기동대에 둘러싸인 청와대 앞
34일만에 분수대 광장에 들어섰다
꼿꼿하게 지켜온 노동자의 강철같은 온정과
천리를 걸어오며 다져진 다짐을
읽어가는 강인한 목소리에
백악산 꼭대기 바위도
봄볕에 꽃이라 알아듣고
제 몸을 단단히 핥으며
주변의 진달래 꽃눈을
야 봄이다 흔들어 깨운다
36년 검은 봄빛을 닦으려
송경동 시인은 단식으로 목숨 걸고
국회의장 면담 후 비서실장실에서 농성하다
사지가 들려서 끌려나오다 졸도하여
녹색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단식하며 힘을 보탠
여섯 분을 병원으로 보내고
속울음 삼키는 꽃빛으로
크나큰 생명을 살해 당한
앞서 간 동지들의 이름을 부르며
현재도 해고 당해 찬 바닥에 나앉은
노동자들 서러운 세상이 사라지고
봄이 오길 빌고빈다

꽃이란 꽃이 피지 않아도 꽃이다
어느 누가 예쁘다 쓰다듬지 않아도
제 꽃향기를 날리며 하늘을 지킨다
김진숙의 봄은 노동자의 봄이다
우리는 모두가 노동자다
우리의 봄이 김진숙의 봄이다
봄볕이 골고루 안기는 봄을 맞자
김진숙의 36년만에 맞이하는
봄다운 봄에 만나요

마실 나온 주민인듯 화장실을 이용하고
유신을 끝내는 죽음의 파티장
무궁화동산 통과하여
분수대 앞 광장 단식 농성장
물품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주운 뒤
48일 싸우며 정이든
청와대에서 내보낸 봉지커피 답례로
쓰다 남은 온열팩을 경비대에 전달하는
그 오가는 사랑을 축하하듯
비둘기 한 마리가 한가롭게
잔디밭에 먹이를 쪼고 있다
김진숙의 봄에 만나요


김진숙 노동자의 청와대 분수대광장에서 발표한 발언문 전문이다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전태일이 풀빵을 사 주었던 여공들은 어디서 굳은살 배긴 손으로 침침한 눈을 비비며 아직도 미싱을 돌리고 있는가? 아니면 LG 트윈타워 똥물 튄 변기를 빛나게 닦다가 짤렸는가? 아니면 인천공항의 대걸레만도 못한 하청에 하청노동자로 살다가 짤린 김계월이 됐는가? 그도 아니면 20년째 최저임금 코레일 네트웍스의 해고자가 되어 서울역 찬 바닥에 앉아 김밥을 먹는가?

노동존중 사회에서 차헌호는 김수억은 변주현은 왜 아직도 비정규직인가? 왜 청년들은 비정규직으로 차별과 멸시부터 배워야 하며 페미니스트 정권에서 왜 여성들은 가장 먼저 짤리며 가장 많이 죽어가는가?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지키겠다는 정권에서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이스타 노동자들은 왜 무더기로 짤렸으며 쌍차와 한진 노동자들은 왜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가?

박창수, 김주익을 변론했던 노동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굶고 해고되고 싸워야 하는가? 최강서의 빈소를 찾아와 미안하다고 말한 분이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죽어가는가? 김용균, 김태규, 정순규, 이한빛, 김동준, 홍수연은 왜 오늘도 죽어가는가?

세월호, 스텔라스테이지호는 왜 아직도 가라앉아 있으며 유가족들이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가? 이주노동자들은 왜 비닐하우스에서 살다 얼어 죽어야 하는가? 왜 문정현 신부님은 백기완 선생님은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한 싸움을 아직도 멈추지 못하는가?

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 왜 36년째 해고자인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약속들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묻고 싶어 한발 한발 천리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함께 싸워왔던 당신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전히 해고자인 내가 보이십니까? 보자기 덮어쓴 채 끌려가 온몸이 떡이 되도록 맞고, 그 상처를 몸에 사슬처럼 지닌 채 36년을 살아온 내가 보이십니까? 최저임금에 멸시의 대명사인 청소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울며 싸우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 “아빠 왜 안 와?”라고 묻는 세 살짜리 아이에게 “아빠는 농성장이야”라는 말을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

동지 여러분, 민주주의는 싸우는 사람들이 만들어 왔습니다. 과거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입술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아니라 저 혼자 강을 건너고 뗏목을 버리는 자들이 아니라 싸우는 우리가 피 흘리며 여기까지 온 게 이 나라 민주주의입니다.

먼 길 함께 걸어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살을 깎고 뼈를 태우며 단식 하신 동지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할지 모를 우리들..... 포기하지 맙시다. 쓰러지지도 맙시다. 저도 그러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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