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3.1혁명 102주기 낙이망우 망우리공원 유관순과 김분옥 및 도산 안창호와 박남신 집사

정종배 2021. 2. 25. 00:25








3.1혁명 102주기 낙이망우 망우리공원 유관순과 김분옥 및 도산 안창호와 박남신 집사


2021년 3월 1일은 3.1혁명 102주이다. 낙이망우 망우리공원에는 3.1혁명 독립운동을 하신 30여분이 안장되었다. ( ) 안 분들은 대부분 국립현충원으로 이장하여 안장됐다.

최초의 독립선언서 대한(무오)독립선언 39인 중 (안창호 박찬익) 두 분과

3.1혁명 33인 중 오세창 한용운 박희도 (나용환 박동완 이종일 홍병기) 일곱 분 외

방정환 조봉암 문일평 장덕수 유상규 이병홍 유관순 김분옥 이강덕 이영학 (송진우 나운규 조종완 김정규 김봉성 강학린 김병진 김영랑 채동선 최백근 이탁) 등이 참가했다. 박희도 장덕수 두 분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2017년 봄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의 유택과 도산 안창호 선생의 옛 묘지 터의 묘비를 참배하고 잰걸음으로 능선을 넘었다. 산돌배꽃 향기에 숲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신 차리고 주위를 살폈다. 묘지가 수풀로 뒤덮인 가운데 묘비가 서 있어 나무를 헤치고 들어가 읽었다. 유관순 열사와 독립운동을 함께 한 김분옥 여사 묘지였다.

유관순 열사와 3.1혁명 전날 밤 이화여고 1학년 같은 반 유관순 서명학 김희자 김복순 국현숙 김분옥 6인 결사대 그 중에 김분옥 여사 묘지가 낙이망우 망우리공원 유관순 열사의 유해가 이태원공동묘지 무연고 28,000여명 함께 있을 것이다 추정하는 이태원분묘이장합장비 위로 500미터 떨어져 자리 잡고 있다. 김분옥 여사는 1919년 3월 5일 남대문역전 시위에 참여했다. 독립운동사 2권 1부(편) 1장 2절에 기록되어 있다.
둘째 딸인 김분옥 여사의 어머니 박남신 여사 묘지가 김분옥 여사 묘역 50여 미터 위에 자리하고 있다. 김분옥 여사 어머니 묘지는 묘지 관리하신 분에 의해 알게 됐다.
작년 가을 추석 전 망우리공원을 저녁노을 벗 삼아 성묘 겸 참배하다 돋보기를 잃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일찍 전날 역순으로 오르다 김분옥 여사 묘역 근처에서 묘지를 관리한 분을 만나 일 년 묘지관리비 중 가장 적게 받은 금액이 25,000원까지 받는다는 걸 알았다. 보통 한 기당 20만원~40만원인데 형편에 따라 받는다고 고백하였다.
그 분이 김분옥 여사 묘지 정리를 중랑구청에서 정말 잘 하였다면서 그 묘에 성묘 온 이들이 저 위에 있는 묘도 가족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안내했다. 자기는 한자를 모르기 때문에 관계를 몰랐다는 것이다. 성묘를 하지 않은 지가 20여년 가까이 되는데 자신이 매년 사초를 하였다며 김분옥 여사가 따님이라는 걸 알고는 함께 해드리지 못한 점이 죄송스럽다고 쑥스러워 했다.
또랑시인 서해 최학송 유족 대신 묘적부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을 안 관리인은 일 년에 10만원을 받는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도산 안창호 옛 묘지 터에서 능선 너머 100미터 떨어져 있다. 중간에 향산 이영학 독립운동가 묘역이 자리 잡고 있다. 도산을 중심으로 흥사단 단우들의 묘지가 있고 있었다. 유상규 이영학 김기만 (조종완 김봉성 문명훤) 등으로 모두 독립운동가로 일제강점기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다.
특히 도산이 상규군 옆에 묻히고 싶다하여 조카사위 김봉성이 아버지 자리로 정해놓은 곳에 도산의 유택을 마련했다. 1973년 강남개발 미명하에 도산공원 조성하여 모셔갔다.
2016년 3.1절날 묘지터에 옛 묘비를 다시 세웠다

박남신 여사의 묘비의 내용을 소개한다.

박남신 여사: 묘비앞면 ㅡ +박남신여사지묘, 묘비뒷면 ㅡ 1876년 음 11월 22일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박연회 2녀로 탄생 18세시 김해 김극서 씨와 결혼 2남 2녀 기독교 독신 탄포리교회에서 여집사 10년 인술에 능숙하여 다수 창생의 생명 구원 조국 해방 후 월남 1957년 6월 25일 음 5월 27일 서울에서 별세 연82세

박남신 여사의 첫째 김만식 씨는 도산 안창호의 조카딸 안맥결의 고향 친구로 1965년 안창호 묘역을 참배하는 사진을 남겼다. 이로 미루어 도산 안창호 선생과 박남신 집사의 집안은 세교가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김분옥과 안맥결은 1946년 여자경찰1기로 16명과 간부급 여자경찰관으로 임용되어 총경을 달고 김분옥은 치안국 제2대 여자경찰과장 안맥결은 3대 서울여자경찰서장을 역임했다.
김분옥은 이대출신 김활란 모윤숙 박인덕 등과 함께 한 친일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지만 경찰청 '경찰의 인물'에 선정되지 못했다.
안맥결은 '경찰의 인물'로 선정되고 독립유공자 선정 기준을 낮춰 2018년에 건국포장을 서훈받았다
안맥결은 5.16군사정부에 협력을 단호히 거부하고 경찰의 옷을 벗었다.
도산의 형님 안치호의 딸이고 독립운동가 김봉성의 아내인 안맥결 독립지사는 숙부인 도산의 가르침대로 애국자를 길러낸 삶을 살았다.

1899년 평안남도 강서군 출신인 도산 안창호는 강서군 최초의 근대적인 사립학교인 점진학교와 탄포리교회를 설립하였고 인근 황무지를 농지로 개간하는 간척사업을 추진하였다.

1938년 순국한 안창호의 장례식에도 못가고, 해방 후에는 이승만이 집권하여 귀국을 못하다가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의 초청으로 처음 환국한 이혜련과 유복자 필영(Ralph)이 망우리의 묘를 참배하고 안창호에게 주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받았다.

김분옥 여사와 경무대 제2대 비서실장인 김양천 씨가 부부인지 아직까지 확인을 하지 못하였다. 김양천 씨가 장흥군 출신으로 몇 분을 통해 거의 접근은 하였는데 정확하게 증언을 아직 듣지 못하고 있다.
도와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