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박꽃 추담 허연 선생 73주기

정종배 2022. 8. 11. 18:44









추담 허연 선생 묘소 참배 행사
2022.8.12. 금요일 11:00
망우역사문화공원 허연 묘역

박꽃 추담 허연 선생 73주기에
정종배

박꽃은 소박한 꽃 흰 꽃 / 조선의 옷 빛 / 물들지 않은 조선의 옷 빛 / 순박한 그 맛은 / 조선 사람만이 아는 귀한 꽃 // 황혼에 새 이슬에 / 고개 드는 흰 꽃 / 수집은 조선처녀 / 빛없이 타는 백열, / 해진 뒤에 박나뷔만을 기다리는 / 깨끗한 꽃 // 박꽃은 소박한 흰 꽃 / 조선의 옷 빛 / 물들지 않는 조선의 / 순박함으로 / 조선 사람만의 / 가슴에 피는 / 귀한 꽃 // 황혼黃昏에, 새 이슬에 / 고개드는 / 수줍은 조선 처녀 / 순결로 타는 백열白熱 / 해진 뒤 오는 박나비만을 기다리는 깨끗한 꽃 – 허연 「박꽃」

1908년 순안병원에 침식제공을 받는 급사로 들어가며 한국재림교회 신자이고
1919년 3·1혁명 순안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순안의명학교와 상해삼육초급대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 잠깐 거쳐 미국 로어노크대학교를 졸업하고 펜실베니아대학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고서
1932년 미국에서 가입한 흥사단 단우였던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1년 2개월 투옥되어 고문받은 독립운동가이고
1946년 중앙상업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이사장의 교육자로

아명은 허용성, 호는 추담, 이름은 허연, 선생은

1906년부터 한국재림교회, 순안의명학교(삼육대학교), 순안의명병원(서울위생병원)의 못자리이며 북한의 평양 순안비행장이 자리 잡은 평안남도 순안에서
자라며 삶의 뿌리를 일군
사람이 곧 하늘이다 동학농민전쟁이 휩쓸고 간 뒤에 1896년 8월 11일 3대 독자로 평남 안주군 용성리에서 태어났다.

초년고생은 일부러 사서도 한다지만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일곱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할머니 손을 잡고 오가는 외가에서 한문 공부를 하였다.

외롭고 서러운 나날을 침착하고 어른스레 다스려 1908년 러셀 박사가 의료봉사하던 순안병원에 침식제공 급사로 들어가면서 재림교회와도 인연을 맺었다.

러셀 박사 조수로 일하며 하는 일마다 똑 부러져 어깨 너머 영어와 병원 업무를 배웠다. 한 생에서 누구를 만나느냐 인생의 앞길이 환하게 달라진다

러셀 박사도 허용성을 알아보고
“너도 그처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근면 노력하여 위대한 인물로 되라는 뜻으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 이름을 너에게 준다”라고 말하며 ‘벤자민 허’라고 불렀다.

1913년 러셀 박사 주선으로 배움에 목마른 늦깎이 학생이 되어서 순안의명학교를 입학하여 교육을 받았다

1919년 3.1혁명 순안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독사 같은 일제 경찰의 체포를 피해서
흥사단을 설립한 민족의 어른 도산 안창호 선생의 손아래 동서이며
용성의 순안의명학교 선배이고 스승인 한국인 최초 공중 보건학 박사인 김창세의 추천서를 손에 쥐고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백미인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보다 더 끈기와 집념으로 굽이굽이 난관을 이겨내고
대장정 6개월을 걸어서 상해에 도착하여 상해삼육초급대학에 입학하였다.

1921년 상해유학생회 모꼬지에서 허연은 주요섭 박헌영 등과 연설을 하였다.
당연히 상해임시정부와 뜨겁게 손을 잡고 일을 했다.
이즈음 일경을 피하려 ‘허용성’ 대신 ‘허연’으로 김규식 박사가 개명하여 주었다.

1922년 상해삼육초급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연희전문을 거쳐
1922년 미국으로 건너가 과수원, 호텔 식당 등에서 일하며 학비를 모아
조선 황족 중에 유일하게 항일 투쟁에 관심을 가진 의친왕 이강과 함께 공부하여 모교인 독립운동가 우사 김규식 박사를 보증인으로
미국 버지니아주의 로어노크대학(Roanoke College)에 편입했다.

이 무렵부터 추담은 가슴에 담아둔 열기를 터트리는 습작 시를 20여 년 동안 쓰기 시작하여 70여 편을 원고지에 정서하였다.
1942년 9월 17일 머리글과 원고지에 차례를 매기어 시집을 내려 하였다.
한 갑자 지난 뒤 자식들이 힘을 모아 2010년 시집 『박꽃』(다솜출판사)을 펴냈다. 대표작인 시 「박꽃」은 군국주의 일본의 패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1929년에는 펜실베이니아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 경제학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1932년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뉴욕에서 흥사단에 입단했다.

이기붕의 부인이 된 박마리아와 미국 유학 시절 선을 봤다.
귀국하여 도산 선생의 뜻을 좇아 협성실업학교(광신중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근무하였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동메달을 차지한 남승룡 선수를 키워냈다.

1934년 우리 나이 39세 노총각이 10년 연하인 방년 29세(1906년생) 개성의 명문 호수돈여고를 졸업하고 음악을 전공하려는 김귀애라는 이름의 꽃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노처녀를 만나서 김윤경 홍난파 우인으로 세우고 결혼하였다. 슬하에 1녀 3남의 가정을 이뤘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지식인 181명이 일경에 구속되었다.
추담도 누하동 자택에서 긴급 체포되어 1년 2개월을 미결수로 갖가지 고문을 당하며 옥고를 치른 뒤 1938년 풀려났다.

허연 선생은 해방 후에도 민족계몽을 위해 노력했다. 미군정 입각 제안에도 거부하고 협력하지 않았다. 미군과 만남에서 통역을 중간에 넣을 정도 외교력이 뛰어났다.

1937년 초급 경상학부 대학인 중앙상업학원(4년제 대학)을 창립 1941년 설립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이종수 피천득 한승인과 운영했다.

한국당 발기인, 임시정부 개선대회, 흥사단 국내위원회 의원 12인, 한국독립당 집행위원, 조선대화방직(주)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1949년 일제 옥고의 후유증인 폐렴으로 병석에 누웠으며, 친지인 백인제 박사가 돌보아 주었으나 2층에서 식구들을 부를 때 치는 북 그 북채를 놓은 8월 12일 향년 5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김귀애 여사 나이 44세 이어 6.25 한국전쟁 등 갖가지 어려움을 당차게 이겨내고 4남매를 길러냈다. 서촌의 종교(宗橋)교회 권사로 1972년 67세에 시작한 세브란스병원 봉사활동 수기가 마친 날은 1983년이었다.
1978년부터는 매스컴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여기저기 기록이 남아있다. 1992년 88세로 소천하시어 망우리 추담과 합장하였다.

1945년 광복 후 도산 안창호 선생 망우리 묘지 참배 후 친구 한승인에게 만약 내 죽으면 “도산의 발치에 묻어달라”는 바람으로
망우역사문화공원 도산의 묘지 남동쪽
용맥이 살아있고 좌청룡 우백호가 감싸 안고 바람을 끌어안은 혈 자리가 분명하여 한다리 마을 저수지와 아리수 강물이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흐르며 몇 겹의 명당수가 합수하고 안산인 시루봉과 조산이 남한산성으로 해와 달 별빛이 놀다가 편안하게 쉬어갈 만큼 후손들이 만복을 누리리라

허연 선생은 뚜렷한 독립운동에도 불구하고 국가보훈처에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않았다.
8월 15일 광복절이 내일 모레이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는 독립운동을 하였으나 국가보훈처 서훈을 받지 못한 분들이 잠들어 계신다. 추담 허연을 포함하여 김기만, 나우, 박현식, 변성옥, 이병홍, 이영학, 조봉암 등이다.
보훈처와 중랑구청 및 흥사단 재림교회 삼육대학교 등 관련 단체에서 자료를 찾아 서훈을 추서하여 일제와 독재정권 아래의 맵고 신 삶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드려야 마땅하다.

허연 선생의 호는 추담이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으로 훈훈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가을 강물로 차갑게 반짝였다.
후손들은 영민한 추담과 어머니의 뛰어난 예능 감각 유전자를 이어받아
고명딸 경숙은 집안의 고명으로, 큰아들 진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둘째 아들 일은 해양대학 우뚝한 선장 교수로 오대양을 누볐고, 셋째 달은 월반을 두 번이나 한 어학 실력으로 SK부사장과 경영 코칭으로 활약하고 있다

할아버지를 단로 40리로 회상하는 손자인 용은 허일의 아들로 할아버지가 공부한 대학 가까운 곳인 버지니아에서 생활하며 반도체 생산설비 업체 GSMT사를 운영하며 고국을 분주하게 오고 간다. 할아버지 독립운동 관련 방대한 자료를 찾아 묶어 오는 9월 보훈처에 서훈 재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추담의 증손자이며 허달의 손자인 Benjamin(벤자민 허재영)은 2001년 10월 미국에서 태어나, UCLA Biochemistry 전공을 하고 있다.

추담 허연 선생이시여 대한민국 독립운동가로 한국재림교회 신자로 의명학교 삼육학교를 빛낸 선생이시여
대한민국 박꽃으로 청절한 나날을 낙이망우 망우역사문화공원 유택에 편안히 지내시길 빕니다

2022년 8월 12일 또랑시인 정종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