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아우내만세운동의 주역 김구응 열사
김구응열사기념사업회 기획
전해주 지음
『김구응 열사 평전』 틈새의 시간
출판 기념 북토크가
4.1아우내만세운동 104주년 기념일에 열립니다
시간 : 4월 1일 토요일 2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장소 :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성공회성당 시몬관
강사 : 전해주 신부님
정종배 시인
사회 : 이윤옥 시인
저자는 성공회 신부로서
병천면 성공회성당에서 시무하며
한국의 잔 다르크로 국민학교 교과서에 유관순 열사를 실은 박창해 편수관과 몇 번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전해주 성공회 신부님의
저자의 말을 소개합니다.
저자의 말
2019년, 기미년(19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유관순 열사를 1등급 훈장에 추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의 표상으로 국민에게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1등급 훈장을 추서 받을 자격이 있다.”
맞다. 물론 나도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니, 동의할 수밖에 없다.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을 이끈 주역이라는 프레임은 앞으로도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나와 같이 생각할 것이다. 3‧1절만 되면 도금봉이 주연한 유관순 열사의 영화를 보고, “기미년 3월1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자란 우리 세대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3‧1운동 100주년에 즈음하여 유관순 열사를 1등급 훈장에 추서하고, 3‧1운동 100주년 기념 우표에 유관순 열사의 초상을 넣어도 어느 한 사람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을 표명하거나 반발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한편으로 무언가 목에 걸린 듯 불편함을 느꼈다.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의 표상으로 우리에게 각인되는 바람에 제대로 된 평가와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숨은 주역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욱 그렇다.
나는 오래전 4‧1아우내만세운동의 현장이었던 병천에 수년 동안 머무르면서 유관순 열사의 기념관과 생가, 열사를 기념하는 공원을 나의 산책 코스로 정하고 거의 매일 그곳을 거닐었다. 그러면서 나는 유관순 열사의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다니던 교회의 옛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4‧1아우내만세운동에 대한 강애단 신부의 회고록을 보았고, 거기서 ‘김구응’이란 이름을 발견했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4‧1아우내만세운동을 실제로 계획하고 주동한 사람은 유관순 열사가 아니라 당시 진명학교 교사였던 김구응 선생이었다.
그동안 나는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의 주역이라는 사실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배웠고 역사적 사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접한 새로운 사실은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김구응 선생에 대해 집착하는 수준으로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그에 관한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한 이유였다.
진입로마저 없어 논두렁 밭두렁을 넘어 찾아가야 했던 김구응 선생의 묘역, 그리고 자손들이나 찾아와 읽었을 법한 묘 앞의 쓸쓸한 그의 공적비는 유관순의 것과 비교하면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 옛 4‧1만세운동에 대한 신문기사와 그의 공적을 알리는 역사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그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 모든 자료는 단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고, 유관순 열사에 철저히 가려졌을 뿐이다.
논문과 성공회교회의 100년 역사를 기록하며 지면의 한 부분을 할애하여 쓴 김구응 선생의 이야기도 새로운 것을 밝혀냈다기보다는 가려져 있던 사실들을 한데 모아 활자화했을 뿐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이 책 또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김구응 선생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조금 더 그러모아 그의 입장과 당시의 정황을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고쳐 쓴 것뿐이다.
내가 김구응 열사를 ‘선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진명학교 교사로서, 그리고 이 지역의 선구자로 살았던 그의 생애를 톺아볼 때 가장 알맞은 호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말미에서는 4‧1아우내만세운동의 주역으로 김구응 선생이 기꺼이 목숨을 바쳤기에 마침내 ‘열사’라는 호칭으로 부를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정리하는 내내 4‧1만세운동을 준비하며 독립을 염원했던 김구응 선생의 절박한 소망과 그 과정상의 긴박한 분위기, 그리고 거사 당일 만세운동의 함성이 나의 침침한 서재 안 가득했다. 큰 영광이었다.
글을 쓰며 내가 귀찮게 해드렸던 김구응 선생의 손자인 김운식 선생님, 충남역사문화연구회 이용길 회장님, 김구응 기념사업회 김종수 목사님, 그리고 틈새의시간 이푸른 님의 도움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2023. 03. 01.
계룡에서
전해주 신부
제가 북토크에 함께 하는 이유는 『망우리공원 인물열전』 책을 발간하며
해방 이후 미군정하에 교과서 편찬하며
유관순 열사가 한국의 잔 다르크가 되는 과정과
이태원공동묘지에서 28,000여 기의 무연고 묘지를
1936년 망우리공동묘지 이태원묘지무연분묘합장묘에 이장한
2018년에야 유관순 유해가 있을 것이라 추정하며
추모의 열기가 뜨거운 곳이 되어버리기까지
제가 쓴 이야기를
신부님이 책에 인용하여
그 내용을 증언해달라는 요청으로
내일 오전 천안 병천으로 갈 예정입니다.
자료를 찾기 위해 가수 이효리 고모네 가게 순대국을 먹으며 아우내 현지에서 유관순 열사 역할을 들은 지도 10년이 넘었다
내일 북토크 현장에서 무사히 빠져 나오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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