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아사카와 다쿠미 92주기

정종배 2023. 4. 5. 10:13

아사카와 다쿠미 92주기

오늘이 78회 식목일이다. 봄비가 내린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유택의 조선총독부 사이토 오토사쿠 영림창장은 식목일을 정하고 아까시와 미루나무를 도입했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 92주기 추모식이
어제 4월 4일 아사카와 노리타카 다쿠미 형제회 현창회 주최로
다쿠미 유택에서 열였다.
장사익 소리꾼이 <아리랑>과 <봄비>를 불렀다.

1984년 홍릉수목원 임업시험장 직원들이 표지비를 세웠다.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다쿠미 선생의 형님인 노리타카는 조각을 전공한 소학교 교사로 '한국 고도자기의 신'으로 부를 정도로 조예가 깊었다.
해방후 미군정이 중앙청 수장고에 굴러다니는 도자기 정리를 부탁하여 일년 늦게 일본에 귀국하였다.
두 분을 한국 도자기 업계에서는 중흥조로 여길 정도로 전국 도요지 700여 곳을 답사하고 정리하였다.

그 때 길잡이가 지순탁 도자기 명인이었다. 다쿠미 선생은 이때 본 연희 굿 풍물 등을 보고 한국의 정서는 멋 가락 흥취라고 하였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내린 비애와 이별의 미 곧 한의 미라 말한 것과는 달리하였다.

조선민족미술관(중앙국립박물관 전신) 건립하였다.
대한민국 인공림의 37%를 차지하는 잣나무 씨앗 발아법인 노천매장법을 발명하여 산림녹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조선의 밥상> 저술을 통해 조선의 밥상은 생산자의 의해서가 아니라  쓰는 사람 한국인의 온돌방과 딱 어울리는 동양 3국의 민예(공예)품 중 쓰는 사람에 의해 쓰면 쓸수록 빛나는 진수로 예술성 조형미 실용성이 뛰어났다고 평가하였다.

유고로 <조선도자명고>는 도자기의 명칭 만드는 법 등을 그림을 그려서 자세히 설명한 명저이다.

올해가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100년이다. 다쿠미 선생은 1923년 9월 10,11일 이틀에 걸쳐 관동대지진 관련 일기를 썼다.
윤치호는 9월 8일에 관동대지진 관련 일기를 남겼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 중
관동 한국인 대학살 제노사이드 참상을 직접 경험한 분은

대한민국 최초 수필 전문 잡지 《박문》의 발행인으로 동요 <오빠 생각>의 오빠인 아동문학가 영주 최신복,
민속학과 박물관 분야의 선구자 석남 송석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와 정치인이며 진보당 사건으로 사법살인 당한 죽산 조봉암,
남도 정서의 시문학파 항일 저항시를 쓴 독립운동가 김영랑,
오사카에서 관동대지진을 겪으며 일본 노동환경을 체험한 뒤 노동자 수용소에서 강퇴당한 경성의전 강사로 대중 의료보건에 힘쓴 독립운동가 태허 유상규,
조선 유일무이한 식물분류학자인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교수로 밀수 관련 검거된 이종 조카로 인해 좌익사범으로 몰려 고문사 당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교수였던 장형두,
당시 동경 한인 교회 목사인 오기선(吳基善, 1877~1946) 목사는 목숨 건 구조와 후원 활동을 하였다.
또한 릿쿄대학 유학생이던 월파 김상용 시인은 시조 형식과 죽음과 허무 의식 등을 노래했다.
도산 안창호 조카사위이며 독립운동가 안맥결 총경의 남편인 김봉성 독립운동가도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참상을 당한 동포를 구호할 목적으로 동경에 재류하는 유지들이 <동경이재조선동포위문반>을 조직하고 <사교부원>으로 각지에 있는 이재동포의 수효와 그 부상한 정도를 조사하여 힘자라는대로 구호하였다.

이분들 중 본인이 관동 한국인 대학살이 자신의 진로에 영향을 주었다고 고백한 경우는 석남 송석하 선생으로 경제학을 공부하러 도쿄상과대학을 입학하였다 참상을 목격하고 2년에 걸쳐 정신적 충격으로 방황하다 민족의 뿌리가 무엇인지 공부로 민속학을 접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소파 방정환은 천도교 대표로 도쿄 참상에 대한 조사요원과 YMCA 동경지부에 천도교 후원금을 전달하였다.

계용묵은 소설 「인두지두」에 동경의 참상을 배경으로 구성했다.
우리나라 영화의 선구자인 춘사 나운규는 영화 <아리랑>을 제작하며 함흥 예림회 회원들과 함께하며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다. 그 예림회 회원들은 주로 관동대지진을 피해 국내로 귀국한 유학생들이었다.

친한 인사 원류인 아사카와 다쿠미는 1923년 9월 10일 일기에 조선 민족은 유언비어와 같은 행동을 할 민족성이 아니고 만약 자기가 일본에 있다면 변호사를 대 구조하겠다고 하면서, 다음날 임업시험장 상사에게 불려가 후테이센징(불령선인)과 같이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를 당했다고 썼다.

2023년 올해가 ‘관동 한국인 대학살’이 일어난 지 100년이다. 한일 관련 단체들이 활발하게 다양한 행사를 치르고 영상 작업을 통해 진상 규명과 사과를 요구할 예정이나 일본 정부는 요지부동일 것이다.

1923년 9월 1일 일어난 ‘관동대지진’ 혼란 속에서 한국인이 무고하게 제노사이드 당한 참상을 경험한 뒤 한국인들은 대부분 귀국했다.

일본의 경찰과 군인 및 자경단의 제노사이드로 인해, 한국인들의 분노를 수습하기 위해 관동 제노사이드 이후 2년 동안 유학생은 물론이고 한국인에 대한 일본 입국을 통제하였다. 당시 동경 유학생 1500여 명은 대부분 희생당하지 않았다.
하층민인 노동자들은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2013년 8월 23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1923년 9월 1일 동경을 중심으로 한 관동대지진을 빌미로 일본 군인·경찰·자경단에 의해 자행된 조선인 대학살 사건에 관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는 사건이 발생했던 1923년 9월 10일, 상하이에 있던 임시정부가 외무대신 조소앙 이름으로 일본 정부 야마모토 곤노효에(山本權兵衛)에게 외무부 발행 131호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 항의 공문’을 보내고 난 후 90여년이 지난 뒤 최초로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공식적으로 보인 관심이기에 자못 그 의의가 크다.

* 그런 울림의 소리가 관동 조선인학살 100주년을 맞는 오는 9월 10일에 울릴 수 있도록 합시다. 대한민국 본국에서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관동대학살 희생자 기림시설 하나도 세워놓지 않았었는데, 1985년 극작가 김의경 선생의 주창으로 민속극 학자 심우성 선생 등 국내 문화예술인들이 시민들의 성금으로 일본 지바현 나기노히라 학살 현장 근처 관음사에 위령의 종루 <보화종루>를 건립했었습니다. 현재까지 대한민국 본국 시민들이 세운 유일한 관동대학살 희생자 기림시설입니다.
* 그런 <보화종루>가 오랜 세월과 잦은 지진으로 훼손과 파손이 심해져 붕괴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100년 동안 관동대학살 희생자들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 없는 우리가 이 종루마저 사라지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 종루를 개보수해서 그 해원과 상생의 뜻이 한일 양국 시민들에게 계속 전해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동참과 홍보를 바랍니다. 저희는 그 위령의 종루 개보수를 끝낸 뒤 9월 10일 12시 보화종을 울리면서 추모문화제도 가질 계획입니다. 이 종을 울릴 때 국내의 사찰, 성당, 교회 등 종소리가 울릴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종소리가 울릴 수 있도록 합시다.
이 모금 운동은 한일 양국에서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
● (한국 측) 모금계좌 : 신한은행 100-035-910772 (예금주 : 사단법인유라시아문화연대)
   ※ 연말정산 시 기부금 영수증 발급 * 연락처 : 010-3380-6090 (기획위원장 최유진)
모바일을 통한 후원 방법도 있습니다
● 카카오 같이가치 모금함 링크 :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102012
   * 이 모바일 모금은 4월 9일까지만 유효합니다
● (일본 측) 모금계좌 : 千葉銀行 店番號 048 口座番號 3403751
   (예금주 : 宗敎法人 觀音寺代表役員 關琢磨)
   * 연락처 : 觀音寺 047-450-2753, 問合せ先 吳 充功 090-6940-4723 chkong55@gmail.com

장사익 봄비

https://m.blog.naver.com/homail/220178774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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