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 – 아사카와 다쿠미(淺川 巧) 80. 95주기

사진 제공 = 서울시
2026년 4월 2일 오늘이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 95주이다. 2000년 4월 2일 토요일 오후 망우리 공동묘지 유택을 오른 이후,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은 또랑 시인 삶의 방향을 틀게 한 뒤로, 지남차로 자리 잡고 있다.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을 알고 난 뒤 뵙는 분마다 도움을 받았다. 현창회 회장을 맡으신 조재명, 조만제 선생과 하정웅, 김종규 이사장님 등 이어령, 정양모, 심우성, 오무라 마스오, 지명관, 최서면 선생 등이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 그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고 말한다. 2000년 이후 학생들에게서도 빛나는 보석들을 뵙고 배운다.
오늘 95주기 추모식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조만제 회장님 별세 이후엔 참석하지 않고 있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색의 길 답사하면 다쿠미 선생의 유택에 올라 참배한다.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3월 20일 박인환 70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차를 운전하며 옛 홍릉수목원인 국립산림과학원 앞을 지났다. 정문 앞 횡단보도 신호에 걸려 차가 멈췄다. 다쿠미 선생이 오갔던 길과 손길 닿은 나무들을 바라봤다. 흥그러운 생각에 젖었다. 아래와 같은 시간을 보냈다.

2015년 10월 청리은하숙세계시민학교 개교식 국립산림과학원 뒤뜰 반송 앞에서 / 사진 정종배
지남차
가다가 멈추고 싶은 곳
차를 몰다 신호등에 걸려 밖을 내다보고
심호흡과 고맙습니다
인사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삶이고 행운아인지
춘분날 아침부터 하루 내 흐믓하다
살아가며 삶의 방향을 가리키고
가르쳐준 지남차를 만난다
횡단보도 신호등에 걸린다
약속 시각 지나가도
기분이 좋은 신호 대기 장소
그곳을 까발려 자랑한다
일부러 교통 여건 관계하지 않으며 달리지 않거나
어리버리 신호에 걸려서 대기하고
교통경찰한테 걸려들어 붙잡혀
차를 대고 머물고 싶은 곳
국립산림과학원 옛 홍릉수목원
정문 앞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바뀐다
정지하여 자동차를 멈추고
유리문을 내린다
담장을 없애버린 국립산림과학원
봄맞이 물관을 열고서 봄을 맞는
나무들을 사진에 담는다
마음 깊이 새긴다
아사카와 다쿠미
내 삶의 지남차 선생님
고맙습니다
매년 선생의 연보를 덧붙이는 일이 이어지길 바라며 내 안은 물론 누구한테도 다가가 반짝이는 선생의 지난 일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012년 개봉한 영화 포스터 및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 / 사진 정종배
아사카와 다쿠미 연보(1891.1.15.~1931.4.2.)
-칸트 ‘인간의 가치는 진정 그 인간에게 있으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증명하였다. 나는 진심으로 인간 아사카와 다쿠미 앞에 머리를 숙인다.’ 아베 요시시게(安倍 能成)의 ‘인간의 가치’(1934~1947) - 고등학교 시절 이 문장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아사카와 다쿠미의 인간미를 동경하게 되었고 이후 나의 삶의 방식은 재일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인생관을 배우고 청량한 생활을 하는 기초가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정웅(메세나 정신) - 광주시립 하정웅미술명예관장. 영암군립하정웅미술명예관장. 전 한인문화교류협회장. 전 수림문화재단이사장
일제강점기 식민지 시대 조선인들에게 항상 자신과 같은 눈높이로 대한 태도가 훌륭하다. - 다카사키 소지(高岐宗司)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아사카와 다쿠미의 삶’
2000년 4월 2일 이후 또랑시인 삶의 방향을 바꿔놓은 지남차인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의 연보를 매년 덧붙이는 즐거운 나날이 이어지길 빌어본다.
1792 증조부 오비 효노신 출생
1827 조부 오비 덴에몬 출생
1830 외조부 치노 마미치 출생
1859 부친 오비 사뇨쿠(후에 아사카와 가문을 잇다) 출생
1865 모친 치노 게이 출생
1884. 8 형 노리타카 출생
1887. 12 누나 고미야마 사카에 출생
1889. 3 야나기 무네요시 출생
1890. 7 부친 사망

영화 백사의 사람 포스터 / 사진 정종배
1991. 1 야마나시현 기타고마군 가부토촌(현 호쿠토시 다카네정)에서 다쿠미 출생 – 옛 이름 가이쿠니(甲裴國) 전국시대 맹장 ‘타케타 신겐’의 영지. 오래 전 영화 ‘ 카케무샤’ 한국엔 ‘신겐’으로 소개. 최인호 소설 원작 ‘해신’에도 ‘타케타 신겐’ 선조 얽힌 역사 소개. 중국 유학 일본 스님 풍랑 만남 신라 명신이 명한다 ‘ 풍랑을 가라앉혀 줄 테니 일본에 돌아가면 나의 초상을 그리고 절에 보관하라’ 최인호 ‘해신’에서 신라 명신을 장보고 현현으로 봄. 일본 절을 세운 가문은 신라 명신 초상을 모시고 이름을 ‘신라사부로’라 바꿈. 일본 사무라이 시조라 일컬음. 그가 바로 ‘타케타 신겐’의 선조임
고향 ‘코마’ 옛 고구려 유민들이 하사받은 영지 고구려의 옛 이름. 후지산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3대 조망지.
1894. 8 청일전쟁 개전
1895, 4 시모노세키 청일 강화 조약 조인, 일본에 타이완 할양
1897. 4 무라야마니시 심상소학교(村山西尋常小學校) 입학
1901. 1 조부 사망
1901. 4 아키타 심상고등소학교 입학- 산수 작문 60리길 걸어 기차 통학
1903. 4 노리타카 야마나시 현립 사범학교 입학
1904. 2 러일전쟁 개전
1905. 7 가쓰라 테프트 밀약(미국 필리핀, 일본 대한제국 지배권 상호 승인)
9 포츠머 러일강화조약 체결
11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 조인, 대한제국 외교권 상실)
12 조선통감부 설치
1907. 4 야마나시 현립 농림학교 입학 – 아사카와 마사토시를 알게 됨. 산림 임학
6 고후감리교교회에서 세례를 받음 - 기도와 명상 마음 다스리기. 무교회주의 우찌무라간조 김교신 함석헌 유달영 이경숙
8 야마나시현 벌채로 하천 범람 232명 사망. 치수의 근원인 조림의 중요성 통감
제3차 한일협약 조인, 대한민구 군대 해산.
1909. 4 아카타현 오다테 영림서(秋田縣大館營林署)에 취직
1910. 8 일본이 한국 국권 침탈(병탄) 이 무렵 아사카와 노리타카 조선 도자기를 만남
1911 호소이 하지메가 《조선문화사론》을 출간
1912 가을 버나드 리치, 우에노 척식박람회에서 조선의 미에 경탄

아사카와 다쿠미 86주기 추모식 / 사진 정종배
1913. 5 노리타카 한국에 옴(남대문소학교 미술교사 조각, 부인은 이화여자전문학교 영어강사, 숙명여학교 영어교사)- 새 사업을 시작해 보려고 온 일본인(일본 서부)과 달리 오직 조선 미술 공예에 이끌려 조선 땅을 밟았다. 이왕직 박물관 고려청차 보려 다님. ‘당시 나는 우울했다. 좋은 물건은 많았지만 너무 비싸서 살 수 없었기에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경성의 고물상 앞을 지나가는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고물 사이 전등불 아래 하얀 항아리가 있었다. 그 둥근 자태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멈춰 서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5엔으로 비싸지 않아서 매우 기뻐하며 항아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고려청자는 차가운 과거의 아름다움이지만 이 백자항아리는 지금 피가 통하는, 살아 있는 친구다. 이것은 틀림없다.” 드디어 나의 눈이 열렸다. 진정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 조선 백자 항아리 만남. 조선 초기 분청사기. 중기 견고한 백자. 후기는 청화백자.
조선 도자기(백자)의 신, 광복 후 미군정 부탁으로 도자기 정리 후 1년 늦게 귀국. 조선 백자(도자기) 아름다움 가치 탐구와 도자기 및 민예의 미학을 체계적 학술적 추구. 고려청자 연구하며 하이쿠 80여 수 번역 출판 준비.
1914. 5 다쿠미 한국에 옴. 나는 처음 조선에 왔을 무렵 조선에 사는 것에 주눅이 들고 조선인에 미안한 생각이 들어 몇 번이나 일본에 돌아가는 것을 계획했다. 조선에 가면 조선어를 알아야 하고, 조선인들과 사귀어야 한다. 조선에 산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고 조선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언젠가는 조선을 위해 무엇인가에 도움을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고 노력함.
7 1차 세계대전 발발
8 일본 참전
9 조선총독부 농공상부 산림과(임업 시험소, 1922년 임험시험장, 1987년 임업연구원, 2004년 국립산림과학원) 고원(雇員)으로 취직. (노리타카 결혼. 야나기 무네요시 방문. 야나기 청화백자 추초무늬모따기항아리(노리타카 선물. 조선미술사 집필과 한국 방문 계기. 일본 민예관 전시)와 청화백자 연꽃무늬항아리(조선민족미술관설립 계기)에 감동함. 도미모토 겐키치와 교류 시작) 노리타카는 전국 도요지 탐구 답사는 통해 무속신앙 영향 항상 낙천적임 신명난 농악 풍자 해학 가면극. 야나기 선생은 조선인의 흰색 백의민족 비애의 역사 비애의 미. 신윤복 그림 – ‘조선인의 자연스러운 자태를 주시하여 탄생한 그림으로 중국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감각을 완벽하게 그려냈다.’ 조선의 전후무후한 독자적 풍속화가로 평가함. 전국 도요지 답사의 길잡이가 도암 지순탁과 해강 유근형 등의 청소년이었다.
1915. 12 노리타카와 함께 아비코(我孫子)의 야나기를 방문 1915년에서 1931년 사이 양묘 시험 조림한 광릉시험림 현존 주요 수종 13종(잣나무 낙엽송 전나무 리기다소나무 상수리나무 잎갈나무 밤나무 방쿠스소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가래나무 신나무 꽃개오동나무) 579,021본 면적 193,08ha
1916. 2 아사카와 미쓰에와 결혼
임업시험소 북아현리 일본식 집으로 이사
9 야나기가 한국에 와 다쿠미 집에 머뭄 – 일본 중학교 교과서 ‘조선의 미’ 수필 수록 - 한국의 미 비애의 미, 다쿠미 형제 멋 흥취 가락으로 봄. 누님 인천 총영사 누이 내무국장
1917. 3 장녀 소노에 출생(경성부립제일여학교 졸업 일본민예관 근무)
6 「조선 잎갈나무의 양묘 성공을 보고함」 발표. 조선에 있어서 꽃개오동나무(청량고)
10 <조선에서 미국산 교목의 양묘 및 조림 성적을 보고함> 발표
11 러시아 혁명 발발
1918. 5 무샤노코지 사네아쓰, ‘새로운 마을’ 운동 제창, 7월부터 운동을 시작.
1919. 3 3.1독립운동
4 『조선거수노수명목지(朝鮮巨樹老樹名木誌)』 출판 – 5천 3여점. 천연기념물 지정 기준 노리타카 조각 여행을 위해 도쿄에 감.
6 베르사이유 조약 조인
8 《수묘 양성 지침(樹苗養成指針) 제1호》 출판
1920. 5 야나기 무네요시 가네코와 조선에 와 음악회 개최. 최초 소프라노 음악회
야나기가 한국으로 와서 청화백자진사연꽃무늬항아리와 만남
6 인도인 싱(1896~1995, 델리 블루 인도 도자기 부흥 유명 도예가)이 방문 일기일회(一期一會)
10 노리타카 조각 제국미술전람회 입선 - 조선인상 ‘나막신의 사람’ 입선 신문 인터뷰 ‘조선인과 일본인의 친선은 정치와 정략으로는 안 된다. 예술에 의해 통해야만 한다.’
12 조선민족미술관 설립 운동 시작
1921. 1 야나기, ‘조선민족미술관 설립에 관하여’ 발표
4 아카바네 오로가 한국으로 이주
6 야나기 부부 한국 방문
7 아루가 가지에몬(有賀喜左衛門)이 방문
《수묘 양성 지침(樹苗養成指針) 제1책》 출판
8 야나기 일행과 후쿠나가 마사지로 방문
9 아내 미쓰에 사망(30세). 장녀 소노에를 고향의 처남 아사카와 마사토시에게 맡김
11 야나기와 서양회화 전람회 개최. 임엄시험장 청량리로 이전. 다쿠미가 기념 식수(반송 130년) - 이 소나무는 현재 국립산림과학원 뒤뜰에 자라고 있음 기념 촬영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시설물이 있고 그 뒤에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의 묘지 및 기리는 일에 앞장선 조재명 국립산림과학원장 추모하는 기림비가 세워져 있음.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이 심은 국립수목원 뒤뜰 반송 / 사진 정종배
1922. 1 일기를 쓰기 시작. 사방식재를 둘러싼 장장(場長)과 대립(일기) 점쇠 일가, 윤씨
야나기와 관악산 옛 가마터 조사. 「브레이크 전람회」 개최. 야나기와 남궁벽 성묘 - 페허 동인과 교류 청량사 정릉천 피서 차 한 잔. 염상섭 김일엽(청춘을 불 사르고. 오다 세이조-일당 김태신 나혜석 송춘희 수덕사의 여승) 김유방(김득영 김찬영-김병기 화백) 오상순 철학자 김만수 나혜석 등
당시 천장산 청량사 차 마시기 최고 피서 교류 풍정. 청량산방의 송헌 정조의 부마 홍현주의 별서 초의선사 1831년 정월 동다송 . 정릉천 달밤 걷기. 천렵 등. 청량사 밥 두부 두포사. 만해 한용운 회갑연 – 벽초 홍명희 주선 박광 권동진 오세창(壽者相) 안종원 이경희 김관호. 만해스님수연첩 2억 예상 2012년. 1939년 7월 21일 불교학자 박한영 기거 청량사 현판 글씨 씀. 청량사는 현 국립산림과학원 안 홍릉(명성황후 릉 조성)으로 현 위치로 옮김. 다쿠미 장례식 때 비구니승 3명 독경.
2 청량리로 이사 - 90년대 초까지 관사가 도로 확장으로 없어짐
4 노리타카 한국으로 돌아옴
6 하마구치 요시미쓰 한국으로 이주. 조선신궁(중앙청) 건설. 광화문 철거 비판(일기) - 동아일보 김성수 정원수 장덕수 주필
1922년 6월 4일 자 일기에는 '조금 내려가면, 조선신사(후일 조선신궁) 공사를 하고 있다. 아름다운 성벽을 파괴하고, 장려한 문을 떼어내 가면서 까지 굳이 숭경을 강제하는 신사 따위를 거액의 돈을 들여 지으려는 관리들의 속내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산 정상에서 경복궁 안의 신축청사(조선총독부 건물) 등을 내려다보면 어이가 없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백악, 근정전, 경회루, 광화문 사이에 무리하게 비집고 들어앉아 있는 모습은 너무나도 뻔뻔하다. 게다가 기존 건축의 조화를 완전히 깨뜨려 정말이지 볼썽사나와 보인다. 백악산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일본인의 수치로 남게 될 것이다.'
8 고원(雇員)에서 기수(技手)로 승진. 오우지(王子) 제지를 비판(일기)
9 「가마터 순례의 어느 하루」 발표. 야나기와 분원 가마터 조사 - 전국 도요지 700여 곳 답사 정리, 도자기업계서는 중시조로 여김(지순탁). 노리타카 <조선 도기의 가치 및 변천에 관하여> 발표
10 「조선시대 도자기 전람회」 개최
1923. 9 관동대지진. 도쿄 등 계엄령. 조선인 학살을 비판(일기) 재일한국인 오충공감독 제노사이드 불하된 조선인 숨겨진 손톱자국 석남 송석하 태허 유상규 죽산 조봉암 영랑 김윤식 소파 방정환. 김소월 초혼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육사 저항시 김영랑 저항시 등
'나는 믿는다. 이 불시의 천변을 이용하여 계획을 조선인 혼자 세우지는 않았을 거라고, 오히려 일본인 사회주의자 패거리가 주모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막벌이 일꾼들을 앞잡이로 이용해서 저지른 일이 아닐까? 일본인은 조선인을 인간대우하지 않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조선인에 대해 이해가 지나치게 빈약한 탓이다. (중략)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도쿄에 사는 조선인들이 지진으로 고생하는 일본인과 그들의 집이 불타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조선인들이 그렇게 했을것이라고 굳게 믿어버린 일본인도 문제가 있다. 조선인을 변호하기 위해서 도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 - (관동대지진후 조선인의 살인방화에 자경단이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도미모토 겐키치 다쿠미 집에 머뭄. ‘조선 소녀’ 집필.
10 「부업품공진회」 비판
11 야나기 한국 방문. 간토 대지진 조선인 구제 음악회 개최
12 창작소설 「숭」 집필 노리타카 조선 도자사 연구 본격화. <저녁놀> 조선미술전 입상
1924. 1 야나기와 고후 여행. 모쿠지키불상(木喰仏)과 만남
2 창작소설 「뇌산소과(雷山小過」 집필
3 「묘포 담당의 벗에게 보내다」 발표

80주기 추모식 / 사진 정종배
노천매장법(露天埋贓法 - 종자를 24시간 동안 맑은 물에 담갔다가 종자용적의 1~3배의 습한 모래와 혼합하여 지하 50cm 내외에 매장) 발견 잣나무 37%(1962-1977년 조림 낙엽송 30%, 잣나무 12%) 산림녹화 - 한국인 노동자들의 대화(조선말 사용 능력)를 듣고 실시함. 세계적 임업 잡지 게재. 미국에서는 지금도 이 방식을 사용함.
4 조선민족미술관 설립(경복궁 집경당) 민족 고집, 야나기 부인(가네코 – 그분은 정말 조선 사람이었어요) 최초 소프라노 음악회 개최. 다쿠미 월급 및 결혼식 예복 살 돈까지 기부. 평복 입고 식사한 걸로 결혼식을 끝냄.
1925. 1 계룡산 · 강진 가마터 조사
3 「싸리나무의 종류」 발표- 싸리 참싸리 광대싸리 조록싸리 댑싸리 괭이싸리 왕좀싸리 – 사방식재 1907년 백운동(청운동) 처음
4 모쿠지키불상사진전 개최
5 「가마터 순례여행을 마치고」 발표
7 단바의 모쿠지키 불상 조사.
10 오키타 사키와 재혼(일본민예관 다도 및 도기와 도자기 보자기 만들기 꽃꽂이)
1926. 6 「주요 임목 종자의 발아 촉진에 관한 시험 제2회 보고」 발표
10 「조선산 주요 수목 분포 및 적지(適地)」 「묘포 비료로서의 퇴비에 관해서」 발표
11 차녀 태어났으나 곧 사망. 이 해에 아베 요시시게 만남.
1927. 4 분원가마터 조사
7 「독산(禿山)-민둥산(赤茶色-무주공산)의 이용 문제에 관해서」 발표
12 「분원 가마터 고찰」 발표. 이 해 노리타카 지순탁(1912~1993. 9~16세 이웃임)을 만남. 1만여 곳 통역 겸 지리 안내. 자네 손으로 청자의 기법을 부활시켜 보지 않겠는가? 1994년 고려청자 재현. 청자 향로 20엔 사줌.
1928. 3 야나기 무네요시를 찾아 감.
5 조부 비석 건립. 이 무렵 《조선 시대 도자기》 출판 계획 좌절.
7 「조선의 그릇 및 그 용도」에 관한 강연. 계명회가 노리타카 원조. 도이 하마이치 만남. 다쿠미 집에서 『새로운 마을』 회원 모집. 이 무렵 ‘ 조선 취미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모임’ 성립
8 계룡산 가마터 조사
1929. 2 노리타카 가마터 조사 본격화
3 『조선의 선膳(소반)』 출판 – 기차에서 본 찢어질 듯 가난한 농부 일가가 정든 가정도 팔고 농사에서 유일한 힘이자 희망인 소도 타인에게 보내고, 친척 지인도 헤어져 아무도 모르는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면서도 손때 묻은 소반을 버릴 수 없다고 손수 짐 안에 넣는 것에 주목한다. 순수서정의 모습을 가지면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아주 친숙하고, 시간과 함께 맛을 더하는 것이며 물건으로써 소반은 그 주인에 따른 바른 쓰임, 사용자의 인격을 증명한다. 실용성과 미학적 가치를 두루 지녔고 널리 쓰이는 물건이면서 동시 조형예술 작품으로 평가함. ‘사랑과 지혜의 서’라 평가. 사방탁자, 책상, 문고, 장롱, 경대, 작은 목함, 벽에 거는 편지통
‘피곤한 조선이여, 다른 사람을 흉내 내기보다 체득하고 있는 것을 잘 간직한다면 언젠가는 자신감 넘칠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은 단지 공예의 길만이 아니다.’ 친구인 아베 요시시게 교수가 총독부가 아사카와 다쿠미를 반일 사상범으로 문제 삼을까 봐 전전긍긍 함.
4 야나기와 마지막으로 만남
11 아사카와 사키에게 편지를 씀.
1930. 2 「조선의 선반과 장롱류에 대하여」 발표
7 노리타카 《부산요와 대주요》 출판
이 무렵 「조선 고가마터 유적 조사 경과보고」 집필
12 조선공예회 개최
1931. 1 도노무라 기치노스케 방문

2016년 6월 청리은하숙세계시민학교 아사카와 노라다카 다쿠미형제관 / 사진 정종배
4. 2 다쿠미 사망/장례식/
연초부터 전국 각지 돌려 묘목 기르는 법 보급 격무 과로 3월 15일 경성으로 돌아 올 때 독감 걸림. 3월 26일 임엄시험장에서 각지의 산림을 찍은 활동사진(영화) 시사회 열림. 3월 27일 급성폐렴 자리 누움. 40도 고열. 29일 야나기 무네요시 부탁 ‘조선의 다완’ 탈고. 4월 1일 친척 친구들에게 전보 침(병세가 위독하다). 2일 밤 야나기 무네요시가 경성행 열차가 대구를 지날 무렵 다쿠미 2일 오후 여섯 시(5시 57분) 사망 전보를 받음. 다쿠미 ‘책임이 있다........’ 함축적 의미의 중얼거림. 4월 4일 경성감리교회 다나카 목사 주재 기독교식 장례
“신들에게 사랑 받는 사람은 요절한다.”
아베 요시시게 「아사카와 다쿠미를 애도하다」 발표 - 문부상, 전후 일본 중학교 교과서 15년 동안 '인간의 가치'로 수록.
인간의 가치 - ‘다쿠미처럼 올바르고 의무를 존중하는 사람,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느님만을 두려워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사람. 게다가 머리도 좋은데다가 감상력까지 풍부한 이는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인간을 경외하지 않는 다쿠미씨는 곧 자유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었다. 지위에도 학력에도 권세에도 부귀에도 의지하지 않고, 사람됨만으로 끝까지 당당하게 살았다. 이러한 사람은 좋은 사람일 뿐 아니라,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의 존재는 인간의 생활을 믿음직하게 한다. 이런 사람을 잃은 것은 조선의 큰 손실임은 말할 것도 없비만, 더 나아가서 주저 없이 인류의 손실이다. 인간의 길을 올바르고 용감하게 걸어가는 사람을 잃은 것만큼 인류에게 큰 손실은 없기 때문이다’
수필 ‘어느 날의 만찬’ - 세리 창부 기생과도 친구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사진작가 후지모토 다쿠미(藤本 巧 1949년~). - 화구상인 아버지가 다쿠미 선생만큼 활동하라고 아들 이름을 다쿠미라 지음. 부자가 망우리 다쿠미 선생 묘지 답사한 1970년 이후 한국 농촌 도시 사라져간 풍경 작업
동강 하정웅(1939~ ) – 재일한국인, 실업인, 그림 컬렉터, 광주시립미술관 명예 관장, 영암군립미술관 명예 관장, 2006년 기요사토 긴자쥬크(청리은하숙 및 세계시민학교 기틀) 식구들이 손수 운영, 2011년 이후 호쿠토시 시에서 인적 물적 지원 20여 회 실시, 코로라 이후 중단함.
아사카와 다쿠미의 추모의 글은 신문에 실렸다. 지금까지 어떤 인물도 매년 또는 연재물로 한 인물을 추모하는 글이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한다. 그만큼 다쿠미 선생의 진심과 성심의 삶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맨 처음 접한 조선 도자기 / 사지 정종배
야나기 무네요시 – 한국을 내면으로부터 알고 있는 사람. 아사카와는 죽었다.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다. 그렇게 조선의 일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던 사람을 나는 그 사람 외에는 모른다. 정말로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인을 사랑했다. 그렇게 해서 정말로 조선인으로부터 사랑받았던 것이다. 그의 죽음이 전해졌을 때, 조선인으로부터 봉헌된 열정은 비길 데가 없을 정도로 많았다. 관(조선옷 입고 염)을 서로 메겠다고 나온 상여꾼들에 의해 메어져 조선의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강요되지 않은 내선 융화의 미담
그레고리 핸더슨 – 그는 끊임없이, 한국에서 죽고 그 땅에 묻히고 싶어 했다.
추모의 글 300여 편.
‘료마가 간다’ 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15대 심수관에게 준 편지 ‘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사소한 것입니다. 문화 공유 개체에 지나지 않는 종족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의 일본인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 중국인의 마음을 이해난 것입니다. 낯간지럽습니다만 나는 스스로를 하나의 인류로 완성하도록 유의해 왔습니다.
조선옷(한복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 입고, 조선말을 배움. 고무신 신고, 한식과 장죽 담배를 즐김. 온돌 사용. 조선 사람으로 오해. 과자 아이들에게 나눠 줌. 동료 자녀 장학금. 걸인(여자 – 주머니 돈 다 털어 줌. 남자 – 취직) 영세상인 온정과 취직에 정성. 동네 사람들 서로 상여를 메려하여 나눠 이동. 비가 억수로 내림.
유고「조선 고가마터 유적 조사 경과보고」
5 유고 「조선다완」 발표
야나기가 「편자후기」 「편집여록」에서 아사카와 다쿠미를 추도(『공예』)
7 유고 「조선 요업 진흥에 관한 의견」 발표
9 유저 『조선도자명고』 출판 – 중판 명저. 머리말에서 ‘태어날 때 붙여진 이름으로 그릇들을 부른다면 더욱 친근함을 느끼고 나아가서는 그 그릇들을 사용하던 조선 민족의 생활상이나 마음에 대해서도 저절로 알게 된다면 분명하게 자신이 조선도자명고를 쓴 목적을 밝힘.
민예운동을 골동품수집 같은 취미 차원이 아니라 ‘좋은 시대를 만드는 운동’으로 여겨 ‘민중이 각성하여 스스로 생각해내고 스스로 키워나가는’ 전인적 운동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함.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어 민중을 인도하는 목표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좋은 의미에서유행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대중성 치밀성 실용성 실무자 등 탁월한 식견. 도자기 연구 한국전통 예술 문화에 대한 관심은 목공예 민요 민화 등 민속까지 이르렀다. 고려청자 – 전남 강진 대구면, 분청사기 – 충남 공주군 반포면(계룡산), 백자 – 경기 광주 남종면(분원)
만주사변 발발
10 홍순혁 〈아사카와 다쿠미 지음 《조선의 소반》을 읽고> 발표
1932. 1 도이 하마이치가 추도문 발표
유저 『주요 수묘에 관한 비료 3요소 실험』 출판
4 1주기 기념 강연회 열림
6 야나기, 돗토리 민예점을 ‘다쿠미’이라 이름짓다
9 아베 요시시게 《청구잡지》 출판
이 해에 형님인 노라다카 묘비 건립(현 망우역사문화공원 다쿠미 묘역에 남아 있음)
1934. 4 와쓰지 데쓰로 《청구잡지》를 읽다 발표
《고게이-공예》가 아사카와 다쿠미 추도(기념)호를 간행
유고 「김해」, 「조선의 절임(김치 등)」 발표
다쿠미 편지 발표
아사카와 노리타카 「고향과 할아버지」
아사카와 마사토시 「고인이 된(가고 없는) 다쿠미형(군)에 대해서」
하마구치 요시미쓰 「다쿠미 씨와 나」
도이 하마이치 「다쿠미 씨와 여승」
나카이 모노신 「아사카와 다무미군에게」
최복현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의 추억」 - 아들 이름을 지어 줌. 항렬 돌림자
야나기 무네요시 「아사카와에 대해서」 「동인잡록」
8 아베 요시시게 「인간의 가치」가 교과서에 게재
10 아베 요시시게 《정야집》 출판
이 무렵 아사카와 마사토시 《아사카와 다쿠미 형의 회상》을 제작
1937. 4 7주기
중일전쟁 발발
8 모친 케이 씨 사망
1941 가을 ‘다쿠미 모따기 항아리’가 화제가 되다

2026년 3월 다쿠미 유택 봉분에 떨어진 도토리 주워 모아놓음 / 사진 정종배
1942. 7 묘 망우리로 이장. 부인 사키 중심. 도로 개설로 이장. 유명 지관이 70년 후 발복 예언 한국 유명인사 반열에 오름. 해방 후 일본인 묘지 일부 파손 훼손되었으나, 다쿠미 묘지는 이장 어르신이 ‘이분은 한국인으로 모셔야 할 분이고 보호해야 할 분이라고 하여 훼손을 면함’
12 태평양 전쟁 발발
1945. 8 일본 패전. 아사카와 노리타카 소장품 한국에 기증
9 노리타카 다쿠미의 일기 김성진 씨에게 맡김
10 야나기, 묘코닌을 알게 됨
12 사키와 소노에 일본으로 귀국
1946. 11 노리타카 일본으로 귀국. 전국 8도 8권 구사기점적(舊沙器店跡) 687개소 도요지 조사 도편 30 상자. 도자기 3,000여점 국립민속박물관(석남 송석하 관장)(국립중앙박물관에 흡수)에 기증.
1947. 3 사쿠와 소노에가 일본민예관에 취직
1948. 8 대한민국 정부 수립
1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1949. 노리다카 지바현 지바시로 이주
1950. 6 한국전쟁 발발
9 야나기, 《묘코닌 이나바노 겐자》 출간
1954. 노리다카 야마나시현 예술제 심사위원 역임
1955. 11 ‘사랑과 성실을 한국에 바친 일본인에게 감사하는 모임’ 개최
1956. 노리다카 [조선 도자] 간행
1960. 노리다카 [조선 백자 염색, 철사] 간행
1961. 5 야나기 무네요시 사망
1964. 1. 14 노리타카 사망 지바현 지바시에서, 《민게이》 추도호 발간
6. 24 아사카와 다쿠미 묘가 복원하여 수복제를 지냄
7 가토 쇼린진 ‘아사카와 다쿠미 씨의 묘’ 발표
8. 25 한글 묘비 세움 ‘한국이 좋아서 한국인을 사랑하고, 한국의 산과 민예에 바친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1966. 6 「淺川巧 功德之墓」 건립(망우리 묘지)-제안 김이만 이승윤 장장 조재명 과장 정인구 연구관 등
9 이완석 ‘서울 동쪽 근교에 잠든 아사카와 다쿠미 씨의 묘’ 발표
1974. 5 박병래 야나기와 와사카와 형제 비판. 감상과 동정 및 우월 의식으로 조선인을 더욱 비하하고 우월의식 드러냄. 시인이며 미술평론가 최하림 ‘한국 현대동양화의 복고 성 검토’에서 아첨하는 논조로 일축. 1920~1930년대 고대미술 붐은 ‘충실한 생활을’이라는 일본인 식민지 특권계급의 취향에 따라 형성된 것이며 세 분이 처음 불을 붙인 것일 뿐이다. 김정희 오경석 민영익 민영환 오세창 김세진 등의 수준 높은 감식안에 의해 이미 확인되었다. 한국미술에 대한 이해가 없는 그들에게는 발견에 불과한 것이다. 총독의 하수인 공범자. 식민지 지배론(식민사관) - 민족사관
1976. 10 사쿠 사망
11 소노에 사망
1977. 3 야마나시현 다카네정(현 호쿠토시시 다카네정)에 묘지 건립
1978. 3 쓰루미케, 이진희가 아사카와 다쿠미 평가. 에비나 노리 엮음 ‘아사카와 다쿠미 저작집’ 출판
1980. 5 다카사키 소지 외 ‘조선과 일본 사이’ 출판
1981. 1 야나기 무네요시 전집 제6권 출간
1982. 7 다카사키 소지가 평전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소후칸) 출판
1984. 8 한국임업시험장 유지(홍림회-아사카와 다쿠미 기념사업위원회-아사카와 다쿠미 현창회- 아사카와 노리타카 다쿠미 형제 추모회)들이 망우리 다쿠미 묘지 앞에 기념비 설립
1986. 6 이바라가 노리코 ‘한글로의 여행’ 출판. 아사카와 다쿠미 묘에 성묘한 내용 수록
1988. 8 야마나시 현립미술관 아사카와 노리타카 자료관 건립
1990. 교토 고려미술관 아사카와 노리타카 다쿠미 특별전시회
1991. 3 다카네정(현 호쿠토시시 다카네정)에 「탄생의 땅」 비석을 세움
1994. 5 망우리 산소 기념비를 새로 세움.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이 마음속에 살다 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5월 23일 서울시시설관리공단으로부터 장묘시설사용허가를 받음(사용자-조재명, 임업연구원장, 사용기간: 1993.2.1.~2008.1.13. 면적 13평. 묘적 N203363. 한상배 국립산림과학원 근무-조재명 법정 관리인을 대신하여 상시관리인(다쿠미 생전 절친한 동료직원 한수업 선생 4남)
에미야 다카유키 ‘백자같은 사람’ 출간(일본 고교 필독서 100만명 독서)
정양모 박물관장: 청자는 기품 있고 아름답기 때문에 보는 쪽도 여성을 대하듯 소중하게 다룹니다. 그것에 비해, 백자는 고요하고 대범하여 자가 주장을 하지 않고 부담을 주지 않는다. 백자를 보고 있으면, 마치 소중한 벗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1995. 11 아사카와 다쿠미선생기념사업회 창립

1932년에 제작한 추모비 조각을 전공한 형님 노리다카 / 사진 정종배
1996. 2 김성진 씨가 다쿠미 일기를 다카네정(현 호쿠토시 다카네정)에 기증
4 세이도 구니히로 ‘임업 기술자로서의 아사카와 다쿠미’를 발표
한국에서 ‘조선의 소반’, ‘ 조선도자명고’ 번역 출간 심우성 학고재
6 「아사카와 노리타카〮 다쿠미 형제를 그리워하는 모임」 결성
김영복 ‘망우리 묘지를 찾아서’ 발표
9 한국에서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 번역 출간
한국에서 ‘아사카와 다쿠미에 대하여’ 세미나 개최
10 김영범 ‘아사카와 다쿠미 진실된 조선 사랑’ 발표
이병진 ‘다이쇼 시대의 어떤 시대 정신’ 발표
11 『아사카와 다쿠미 전집』(소후칸) 출판
1997. 5 『예술신조(藝術新潮)에 아사카와 형제 특집 기사
7 망우리 묘지 정비(한국 홍림회 다카네정-오른쪽으로 1M 옮김. 병풍제 수복. 진입로 계단 개설. 한국식 상석. 석향로. 석화병 건립. 상석 비문 ‘삼가 유덕을 기리며 명복을 비옵니다’ 새겨 넣음.
9 ‘월간 미술’ 아사카와 다쿠미 특집 기사
10 이데 마고로쿠 ‘여행자들의 기록-아사카와 다쿠미’ 연재
11 아사카와 다쿠미 한일합동추모제 개최. NHK 교육텔레비전 아사카와 다쿠미 방영
1998. 3 간다 켄지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 기독교 신자’ 발표
전원자 ‘우호의 가교’ 발표
5 야마나시 텔레비전 ‘형제에게 바치는 진혼가’ 방영
6 다카사키 소지 ‘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 개정증보판 출판
11 다카네정과 포천군 자매결연 맺음
한국에서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 방영
1999. 2 기무라 가쓰아키 전람회 ‘시대의 기억-아사카와 다쿠미가 간다’ 개최
4 ‘1999 자료 현대사회’가 아사카와 다쿠미 소개
5 김병종 ‘한국인의 예술혼에 살다간 일본인’ 발표
2000. 3 극단 코메디 오프 예스터데이 ‘아름다운 아침의 나라, 조선의 산을 푸르게-아사카와 다쿠미’ 상연
2001. 2 다카사키 소지 등 ‘ 한국 민예 여행’ 출판
3. 31 한국에 70주기 개최. 고향 다카네정 꽃나무 만텐쇼(滿天星)철쭉 2주 기념식수.
8. 25 야마나시현 다카네정(현 호쿠토시시 다카네정)에 아사카와 노리타가 다쿠미 형제 자료관 개관 – 김병윤 도유 정호연 사장 참석
11 미즈키 료 ‘아름다운 아침의 나라’ 출판
12 임영철 ‘미오쓰쿠시의 연꽃’ 전국 투어
2002. 3 하정웅 ‘한국과 일본, 두 조국에 산다, 출판
2003. 7 아사카와 다쿠미 저 다카사키 소지 편 『조선민예론집』(이와나미문고) 출판
2005. 11 『아사카와 다쿠미 평전- 조선의 흙이 되다』 다카사키 소지 저 | 김순희 역 한국어판 출판
2006. 하정웅 실업가 및 메세나(그림 및 사진 1만 여점 수집 기도미술관 건립 계획) 청리은하숙 가족과 함께 추모제
2008. 10. 3 개천절 한일합동음악회(나카가와 시게토시씨의 알폰클럽과 한국 요델클럽 추모 음악회 – 알폰 다쿠미 고향 나무로 깎아 만듬)
2009. 3. 28 아사카와 다쿠미 자료 인수(서울국제친선협회)
10 고바야시 후지오 ‘아사카와 다쿠미 – 조선의 흙이 된, 임업기술자이며 조선민예연구자(산림 제1505호) 1882년 발간 월간지 다쿠미도 2회 논문 기재함.
2011. 9 아사카와 다쿠미 80주기 학술대회 개최(프레스센터) 주최 서울국제친선협회 협찬 일본국제교류기금 재단법인 수림문화재단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포천시 야마시현 호쿠토시 국립산림과학원 한국공예협동조합연합회 한국 아사카와 현창회 일본 아사카와 사모회 해강고려청자연구소
『한국을 사랑한 일본인』(부키) 출판- 헌정식(4월 2일 묘소, 백조종 부회장 청담고 및 체험 봉사 방과후학교 지도 교사 정종배)
2010. 6.12~8.15 고려미술관 개최 ‘아사카와 노리타카 다쿠미 형제가 사랑한 조선 미술전’
2011. 탄생 120주년 기념 미술관 연락 협의회 주최 ‘아사카와 노리타카 다쿠미 형제의 마음과 눈-조선시대의 미’가 4월 9일부터 3개 회장 순회 개최
2012. 7 영화 『백자의 사람-한국의 흙이 되다』 상영
2014. 3 『아사카와 다쿠미 일기와 서간』 한국어판 출판
2014. 10 아사카와 다쿠미 묘 재정비
2015. 4. 2 아사카와 다쿠미 84주기 추모제

2026년 3월 망우역사문화공원 아사카와 다쿠미 유택 / 사진 정종배
한국 : 홍림회(산림과학원 퇴직자 중심모임-김병윤 부회장). 서울시국제문화교류회(서울시공무원 모임). 기요사토 긴자쥬쿠(靑里銀河塾) 운영(2015년 12회 일본에서 운영. 하정웅 수림문화 재단 이사장-홍릉 산림과학원 앞 리모델링 후 한국청리은하숙을 운영할 예정). 아사카와 다쿠미 현창회(고 조재명, 현 회장 조만제), 서울국제친선협회(회장 이순주). 망우리묘지공원 저명인사 탐구 및 답사반(교사 정종배), 중랑문화연구소(소장 남화창), 이수현의인문화재단설립위원회(노치환 기자, 회장 강지원변호사)
일본측 : 아사카와 노리타카 다쿠미 형제 기리는 모임(시노부카아-아사카와형제들 고향사람들) 회보 발행. 후지모토 다쿠미 사진작가(화구상 아버지 바람 김해 농촌 1970년대 인사동 거리)
2015.4. 2 정종배 학생들과 추모식에 참석
2015.10 제1기 청리은하숙 세계시민학교 개설- 주최 수림문화재단 주관 중랑문화연구원
일한국교정상화50주년기념 아사카와 노리타카 다쿠미 형제 추모회
2016.4 아사카와 다쿠미 85주기 추모제 및 제2기 청리은하숙 세계시민학교 개학식. 추모식에 참석하여 추모에 글을 읽은 청량고 학생 서울대 산림학과 입학 대학원까지 식물분류학 전공함
2016.6 일본 야마나시현 호쿠도시 기요사토 긴자쥬크(청리은하숙) 참가(청리은하숙 세계시민학교 학생 5 교사 4) 빨간 신호등도 함께 건너면 무섭지 않다(일본인의 양면성). 묘지에서 만난 일본인 헌화 값 일본 추모제엔 참석하지 않음)
2016.9 대향 이중섭 화가 탄생 100주년 기념 사생대회 개최
2016.11 제2기 청리은하숙 세계시민학교 종업식 및 윤동주 탄생 100주년 시낭송대회 개최
2017. 2 일본 릿쿄대학교 윤동주 시낭송회 참가(학생 2 교사 2) 최학송 윤동주 문학 연구자인 오무라 마스오 선생과 지명관 선생 뵙고 격려의 말씀 들음.
2017.4 아사카와 다쿠미 86주기 추모식(서울친선협회, 아사카와 노리타카 다쿠미 형제 추모회) 및 제3기 청리은하숙 세계시민학교 개학식
2017.6 기요사토 긴자쥬크(청리은하숙) 청리은하숙 세계시민학교 참가(학생 5명 교사 5명)
2017.9 재일한국인 영화감독 오충공 제노사이드 촬영(1923년 관동대진재 - 아사카와 다쿠미, 송석하, 조봉암, 유상규, 김영랑, 방정환)
2017.11 제3기 청리은하숙 세계시민학교 종업식 및 윤동주 시낭대회 개최
2019.4.2. 코로나19로 꽃바구니 헌화(국민신탁 김종규 수림문화재단 유진룡 형제추모회 등)
2021. 4. 15. 후지모토 다쿠미 사진 활동 50주년 기념 특별 순회전 「성신교린」
〜서로 속이거나 싸우지 않으며, 진심으로 교류하는 것〜 2021년 4월 15일(목) ~ 6월 1일(화) 10:00~17:00 주일한국문화원 갤러리 MI(1F), 사랑방(4F)
2023. 9. 2011년 출간한 ‘한국을 사랑한 일본인’ 재출간할 예정
2024. 9. 8. 《서울신문》 총독부의 광화문 철거 반대... 한국 산림과 문화 지킨 일본인[대한외국인] <9> 아사카와 다쿠미, 허백윤
2024. 10. 11일 정종배·백조종 공저 『조선의 흙이 된 다쿠미』(북키아) 간행
2025년 8. 30. 『조선의 흙이 되다 아사카와 다쿠미 14권의 일기장(평전)』 한국어판 발행(만화) / 원작 사와야 시게코, 그림 사스카 아루토, 역자 이순주, / 발행자 일본 야마나시현 호쿠토시 / 발행처 아사카와 노리다카·다쿠미 형제자료관

조재명 회장이 쓴 표지비 / 사진 정종배
2026. 4. 2. 95주기 추도식 아사카와 다쿠미 현창회
2026. 4. 2. 서울공예박물관(관장 김수정)은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기록한 일본인 연구자, 아사카와 다쿠미(浅川巧, 1891~1931)를 조명하는 행사를 개최한다. 4월 2일(목) 서울공예박물관 교육동 강당에서 진행되는 <공예-人-토크: 아사카와 다쿠미와 조선공예>다.
○ 오전 10시 영화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2012) 상영으로 시작해 오후 1시 전문가 발표와 토크 콘서트로 이어진다.
○ 발표는 ▲최공호 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가 ‘조선의 미를 발견한 아사카와 다쿠미’를 주제로 발표하고 ▲사와야 시게코(澤谷滋子) 전 아사카와 형제자료관 관장이 일본 호쿠토시에 위치한 아사카와 형제자료관의 소장 자료와 연구 현황 등을 소개할 예정이다.
□ 이번 행사는 아사카와 다쿠미 서거 95주기를 맞아 그의 삶과 연구 활동을 통해 바라본 조선 공예의 가치와 의미를 시민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서울국제친선협회(SIFO)와 공동 주최로 진행된다(서울정보소통광장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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