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시

먹방

정종배 2018. 9. 9. 13:03

 

 

 

 

먹방/정종배

 

 

저녁노을 솔밭에 번질 때

새끼를 앞세운 멧돼지와

유기견 가족들 맞닥트린

적묵당과 소각장 뒤 계곡은

물놀이와 무속인 기도처이다

 

가래나무 두 그루를

올 여름에 알아보고

맘 먹고 일요일 아침 일찍

가래를 주으려 보호난간 넘어가

풀숲과 바위와 돌멩이 사이에 햇열매와

세월을 이겨내다 겉껍질 썩어들어

푸석한 옛것을 주어들며

여러 음식 찌거기와

고수레 썩은 냄새를 맡았다

 

멧돼지와 유기견의 전쟁터

싸우며 내지른 소리를

쏘쩍새와 두견이가 받아 넘겨

담장 너머 덕현스님 볼 닮은

약사여래 상호가 가늘게 떨리면

달빛과 밤바람이 알아채고

솔향기를 부처님께 바치면

청설모와 족제비 제 집으로

들냥이도 나른하게 명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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