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능선/정종배
30여년 전부터 종주한 삼각산 의상능선
문수봉 나한봉 나월봉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지나서
서른아홉 늦가을 토요일 달밤에
동갑내기 처녀와 의상봉 억새꽃 앞에서
지나온 삶과 사랑을 아스라히 풀어내고
손잡고 대서문 능선을 아슬아슬 내려왔다
그 뒤로도 마음이 느슨하면 의상능선 올랐다
사계절 좋은 풍경 산성길 이어졌다
이석증이 가시자 시험 삼아
종합병동 몸을 끌고 의상봉만 찍고온다
스틱 하나 집고는 여기소지 지나서
백화사 코스 잡아
바위길을 몇 번이나 쉬면서 정상에 올랐다
10여년 전에 보이지 않던
북한산성 역사를 설명한 안내문
산정상 높이를 밝힌 말둑
산행의 거리를 알리는 이정표
국립공원 시설을 갖췄다
서른 아홉 중년의 추억을 확인하려
설레는 가슴으로 바위를 돌아서니
남과 녀가 다정히 도란거렸다
사랑의 명소는 드러나기 마련인가
집에 나와 산책길에 사진을 찍은
한옥마을 야생동물생태보호구역 나무테크
지정석 위에서 가늠한
의상봉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 순서로
정상의 높이가 높아보였는데
안내문을 확인하니 거꾸로 높았다
원근법을 무시하고 잊고 산 나날이다
멀리 있는 사랑도 깊고 높다
눈에 보이지 않은 세계가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