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기념일 홀로 앉아 꽃이름 중얼댄다/정종배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 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진영숙양(15세, 당시 한성여중 2년)의 유서>
진영숙 양은 19일 오후 4시 학교를 파한 후 시위에 나가기에 앞서 홀몸인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일단 집에 갔었다. 그러나 시장에 장사하러 나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편지를 써놓고 거리로 나섰던 것이다. 저녁 8시경 그녀는 성북 경찰서 앞에서 버스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민 채 구호를 외치다가 경찰의 총격에 희생되었다.
아, 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올 때면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녁노을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노을을
오빠와 언니들은 피로 물들였어요.
오빠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 먹고
저녁도 안 먹고
말없이 쓰러졌나요.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잊을 수 없는 4월 19일
그리고 25일과 26일
학교에서 파하는 길에
총알은 날아오고
피는 길을 덮는데
외로이 남은 책가방
무겁기도 하더군요.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 말 안 해도
오빠와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오빠와 언니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서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강명희(당시 서울수송초등 5)
1960년 4월 19일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양의 유서와
수송초등학교 5학년 강명희양의 추모시
4.19기념일
학급 조종례 훈화와
수업 시간을 이용하여 두 글을 읽고
추모하는 계기수업
입시라는 파도 앞에 물거품 되어 사라진지 아득하다
혁신학교 고3 학생
입맛맞는 급식 메뉴 외우고 새치기로 점심 먹고
오후 수업 잠을 자 밤샘 알바 대비한다
학생회 자발적인 추모 행사 택도 없다
정년 1년 앞 둔 교사 비담임 동아리 담당 제외
3학년 창체 독서 수시로 입시를 치를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
내신성적 공부 위해 자습
1학년 국어수업 주당 1시간 맡아 중간고사 범위 쫓겨
전동차 출근길 임산부 배려석 안내 멘트보다
4.3 4.9 4.16 가볍게 지나쳤고
오늘도 마음만 빼앗기다
퇴근길 새로 산 등산화 길을 낼 겸
아름다운 가게 종로 책방 들러
우리 민물고기 백가지 책을 사고 나오니
종각역 사거리
장애인단체를 중심으로 한
장애 인권 노동 사회 분야 13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오늘 오후
"문재인 정부의 장애인등급제 폐지는 '가짜 폐지'라고 주장하며
1박 2일 집중 투쟁 행진 대열로 뜨거워 자동차들이 정체되어
전옥서 터에 앉은 전봉준 장군 좌상에 목례하고
광화문광장 세월호 천막 4년 8개월만에 철거하고
그 자리에 개관한 '기억과 안전전시공간' 건물을 지나쳐
이순신 장군 동상 앞 분수대 물소리 사열 받고
교보문고 광고 글귀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뒤돌아 보고 서서 눈으로 훑고서
세종대왕 동상 앞
4.19기념 행사장
4.19 세대 거물스런 정치인들 호명당해
김밥 마는 퍼포먼스 영상을 한참 들여다 보다
횡단보도 핸드폰 보며 건너
세종문화회관 계단 외제 찦차 전시를 무심히 쳐다보다
사랑방시낭송회 기억을 더듬다
왜 제 시간에 들어오지 않으려면
전화 하지 않느냐는 사모님 날선 목소리에 움츠리다
세종문화회관 지하 주차장 1층
어린이 책 중심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점을
다른 손님 없어 책장을 휘 둘러보고
3호선 광화문역 들어가기 전
광화문과 북악산 비봉 인왕산 사진 찍고
정부서울청사본관 건물에 그림으로 서 계시는
일제에 저항한 의사들의 힘을 받고
노약자석 비워 있어
버젓이 끼어 앉아
집에 와 저녁 먹고
멧돼지 출몰하는
진관사 산책 갔다 들어 앉아
진영숙 양이 총에 맞을 시각에
연금과 퇴직금 들여다 보고
퇴근길 학교 건너편 담벼락 화단의 꽃이름 알기 위해
컴퓨터 앞에서
침침한 눈으로 이명을 달래가며
주님 수난 성금요일 미사는 집사람만 드리고
입술에 붙지 않는 외래종 지면패랭이꽃 이름을 아름답게 중얼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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