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망우인문학

계산 김승민

정종배 2019. 6. 12. 14:12

계산 김승민/정종배

 

 

서울시 한강 이북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사계절 막힌 마음 꿰뚫어

힘을 얻고 갈 수 있는

숨겨둔 비밀의 장소

또랑시인 북서쪽 서해 최학송 묘지 참배 후

몇 번을 그냥 지나친 계산 선생의 묘지터를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눈 밝은 김금호국장이 반쯤 묻혀 누운 비석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알아보고

계산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을 알렸다

일으켜 세운 비석에는


김승민 선생의 자는 성극星極이요 호는 계산桂山 단기 4205년(1872, 고종9년) 임신 12월 11일 함주군 연포면에서 탄생. 소시부터 면학. 그 뒤 주요천하 하며 산천을 즐기다가 24,5세부터는 영흥군 소재 도안암에서 오도일매悟道一昧 한때 삼남三南에서 이 암자에 모인 제자만도 수천 명을 헤아렸음. 광무 10년(1906) 5월 정3품 통정대부 비서감승(비서실장)에 임명되어 황제로부터 사전師傳의 대접을 받았음. 동년 황제의 밀지사건(일제 경찰이 말하는 김승문 사건)으로 말미암아 남대문 일인 감옥에서 1년 반 복역. 동사건의 탄로로 광무황제는 마침내 양위. 그 뒤 해삼위로 밀항 도중 일 헌병에 피체. 다시 함흥옥에서 6개월 복역. 출감 후 만주로 망명. 이후 30년간 북만 일대를 전전하셔 독립군 백여 명과 더불어 광복단장 혹은 대동회장으로서 무력 항일투쟁에 전념 한편으로는 이민의 권장 후진교육의 개발 독립군의 양성 등에 심혈을 기울이던 중, 단기 4264년(1931) 9월경 안도安圖에서 흉도의 저격으로 순국. 단기 4301년(1968) 독립유공자로서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장을 추서받음. 좌부 성재문 여사는 4207년(1874)년 감술 9월 12일생 일찌기 부군인 선생의 뒤를 따라 도만. '독립군의 어머니'로서 필성에 절하는 고난을 겪으며 선생의 독립운동에 협조 그 업적 두더러진 바 있었음. 단기 4292년(1959) 음 8월 14일 선생의 안부에 집념하며 고국의 품에 안겨 장서. 두 분의 빛나는 독립운동 사적을 기리 새겨두기 위하여 이에 추모비를 건립하며 삼가 두 분의 명복을 비는 비임.


건국기원 4301년(1968) 8월 일

재만공복동지 대표

후학 이현익 李顯翼 찬지撰識

학남 정환섭 鄭桓燮 경서敬書


사색의 길 길섶과

묘터 입구에

계산지묘 묘지 안내석 2개 남아

주인의 명성을 말하고 있다

소전 손재형 선생의 수제자인

서울대 미대 출신 학남 정환섭 선생은

또랑시인 서예와 풍수 선생인

서예 60년 풍수 50년 인전 신덕선 선생의 스승이시다.


1990년 대한민국 애국장 서훈

1994년 대전현충원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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