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묘지 무연분묘 합장비
망우리공동묘지 개설 초기
1937년 6월 9일
동아일보 기사에
"이태원을 주택지로 만들기 위해
1935년부터 이장을 추진하여
1936년 4월 8일까지
유연고 4,778기는 미아리로
무연고 28,000여 기는 망우리로
경성부 위생과에서 화장 후 합장했다
그 불쌍한 혼을 위로하기 위해
9일 오후 2시부터 공동묘지에서 위령제를 거행한다"
유관순 열사의 분묘는
1920년 10월 12일 감옥에서 순국하여
10월 14일 일제 경찰의 경비 속에
이태원공동묘지에 묻혔으나
집안 식구들의 독립운동 순국과 투옥으로
열사의 묘지를 망실하여
무연고 합장묘에 함께 잠들어 있으리라 추정하여
관리사무소에서 명절마다 제사를 지내다
2018년 또랑시인 작은책 연재하며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연락하여
10월에 이화여고동창회 중심으로
기념 묘표를 세웠다
3.1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망우리공원 유택 중
참배객들의 발자국으로 유택이 무너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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