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정종배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 진도 7.9 관동대지진이 일어났다. 10만명 이상 인명 피해가 났다.
일본 정부는 일본인 민심을 돌리기 위해 유언비어를 유포하였다.
그 이면에 깔린 정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3.1혁명 당시 조선인의 폭동 진압에 대한 보복할까 두려움과,
둘째, 조선인들이 대거 유입하여 일자리를 일본인 노동자들이 빼앗겼다.
셋째, 교과서에서 조선인 중국인 대만인은 더럽고 미개하다고 수록하여 지속적으로 가르쳤다.
넷째, 중국 조선 민족해방운동에 직면하여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를 탄압할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국가 권력인 경찰서 경비대 등을 통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극물을 풀거나, 살인 방화로 일본인을 죽이고 있다 등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이에 군인 경찰과
동학혁명 때 군인으로 조선에 들어와 동학군은 독립운동을 할 자들이라며 씨를 말려야 한다며 잔혹하게 죽이고,
동학혁명 때 동학군을 살상한 퇴역 군인들을 주축으로 조직한 자경단 등이
주고엔 고짓센 15엔 50전 발음하여 추고엔 고짓센으로 발음하면 조선인이라하여 죽였다.
유학생들은 발음이 정확해, 주로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죽었다. 일본인도 발음을 잘못하여 죽었다.
조선인 피해자는 공식적으로 독립신문에 6,661명,
비공식으로 2만명까지 보고 있다.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비문을 세우거나 문서에 주소를 남겨 후손을 찾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시인 구상 맏형도 행방불명 되었다.
윤동주 시인 아버지도 참상을 목격했다 무사하다고 전보를 보냈다.
당시 유학생은 400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중에 귀국하여 민족을 위하여
자기 분야에 일가를 이룬 분은
김동환 염상섭 김소월 이기영 한설야 김영랑 채만식 이육사 이상화 양주동 박용철 최신복 조봉암 유상규 안창남 송석하 나운규 함석헌 등이다.
망우리공원 김영랑 송석하 조봉암 최신복 유상규 나운규 등이 당시 유학생으로 참혹한 민족의 아픔과 서러움을 경험하고,
민족의 뿌리에 대한 민속학 문학 정치 영화 의학 등을 하였다.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은 일기에 조선인을 옹호하는 내용을 썼다.
소파 방정환은 피해 조사단 활동과 후원금 전달을 하였다.
김소월 이상화 김영랑 이육사 이기영 한설야 등의 저항시나 일제를 비판하는 소설과 글의 배경이 관동대지진이라고 주장하는 평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잡지 발간과 신간회 카프 등 조직과 연대를 통하여 일제에 저항하게 되었다.
2017년 2월 릿쿄대학 제10회 윤동주시낭송회에서 만난 관동대지진 다큐감독 재일한국인 오충공감독 발품으로 조직한 관동대지진희생자유족회 발족식 부산항제4부두 우키시마호 희생자 추모비가 있는 수미르공원에 참석은 못하고 시 한 편을 아침에 카톡으로 보냈다.
목선재 윤중목 시인이 낭송하였다.
관동대지진 조선인대학살 희생자 추도식
축문을 대신하여
15엔 50전/주고엔 고짓센/탁한 발음으로 생사가 갈린//
19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희생자 영혼들이시여//
15엔 50전/주고엔 고짓센/저 파도 넘어//
15엔 50전/주고엔 고짓센/저 바다 건너//
15엔 50전/주고엔 고짓센/저 하늘 아래//
이제 이제는 그만/그만 외우시고//
산을 넘어/숲을 지나/강을 건너/얽매이지 마시고//
고개 넘어/들을 지나/내를 건너/미련두지 마시고//
씨줄 날줄 손 잡아/시나브로 일으켜/오시라/오시라/
피맺힌 영혼들이시여//
모두모두 더불어/아름답고 향기롭게/거침없이 걸어오시어/이제는/ 그 깊고 깊은 한/원한을 풀어놓으시라//
지금여기/ 저 높은 가을하늘 아래에/이 파도와/ 파도 소리에/한 맺힌 후손들의 마음/마음 안에//
15엔 50전/주고엔 고짓센//
피 터지게/시원스레 외치십시오//
15엔 50전/주고엔 고짓센//
94년만에 관동대지진 희생자 유족들이 모여 갖는 추도식과
관동대지진 조선인대학살 희생자 유족회와
그 유족들과 함께하는 시민모임 발족식
그리고 기자회견
발족의 기틀을 35년 동안 발로 뛰신
오충공 감독님과
그 뜻으로 인연이 되어
함께하신 모든 분들과 단체의 정성으로
뜻 깊고 의미 있는 계기와 장이 되어
피와 한의 역사를 올곧게 정립하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민족성을 이어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2017.8.30
정종배 합장
오감독은 일본 청리은하숙 참여하고
망우리공원 두 번 방문하여
엄청난 역사에 놀라 촬영기사를 써 제작하고
태경 김병기 화백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공주 우금치 정읍 황토현 및 전적지 광주 김준태 시인 5.18 묘역 거창 전성은 선생과 이명행 소설가 김동환 시인 따님 김채원 소설가 김영랑 시인 따님 김애란 여사 화봉문고 여승구 대표 김청조 작가 등과 만남을 주선하고 대담과 촬영을 하는데 운전 봉사를 하였다.
안동 이육사 따님 이옥비 여사와 만남을 약속했다.
2017년 10월 국가무형문화재 126호 진관사 국행수륙재에 희생자 17분의 위패를 모시었다. 총무스님 법해스님 배려였다.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은 일기에
조선인은 유언비어와 같은 언행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본 사회주의자들의 소행으로 동경으로 가서 변호사 비용을 대 변호하겠다는 내용을 써,
현재도 일본 보수쪽에서 배척당하고 있다.
오충공감독 세 번째 작품 다큐 제작은 더디다.
4년이 지나도 제작이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뜻있는 일본인 후원자들이 연세가 많아
후원자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 어려워하고 있다.
후원자를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
아직까지 한국 정부나 어느 단체에서도
공식적으로 일본에 항의나 사죄를 요구하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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