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망우인문학

망우리공원 5월 21일 부부의 날

정종배 2020. 5. 19. 16:13

망우리공원 521 부부의 날/ 정종배

 

521일 부부의 날

 

평등하고 민주적인 부부문화를 만들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 매년 521이다. 1995년 민간단체인 부부의 날 위원회가 표어를 내걸고 관련 행사를 개최한 것에서 시작되어, 2001년 청원을 제출하면서 마침내 2007년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521일은 가정의 달 5월에 두 사람(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가 있다.

 

망우리공원 인물 중 부부의 연을 맺어 결혼을 하거나

결혼하지 않았으나 연애하였다고 소문이 난 경우도 있어 흥미를 배가 한다.

특히 몇 분은 한 여인이 아니고 몇 번째 이렇게 헬 수 있다.

더욱이 남편을 헬 수 있는 여장부도 망우리공원에 잠들어 계신다.

 

동요작사 어린의 영원한 벗 소천(小泉) 강용율(姜龍律, 1915~1963)

1954년 최수정(1919~1988) 여사에게 늦장가 들어 복된 내조를 받다

소천 사후 생명보험 판매원 최우수상을 연3년 차지했다

21남 잘 기르고

남편과 함께 망우리 구리시 딸기원 마을 뒤편 남향받이 능선에 누워있다

 

대중소설가 여장부 '찔레꽃'의 끝뫼 김말봉(말봉(末鳳), 보옥(步玉), 1901~1960)

동지사대 1년 후배 시인 정지용 청혼을 거절했다.

부산 경제계 기린아 뭇 여성 선망의 남자 전상명

두 여인 김경순 여운영에게 양보하고

끝 모를 구애를 한 은행원 이석현과 결혼했다

혼인신고 하지 않은 채 갈라서고

수주 변영로 귀띔으로 엇갈린 기차를 되짚어 경성으로 돌아와 불같은 동거에

절망한 여운영 만주로 떠난 뒤 정식 부부가 되었다

전상명 과로와 장티푸스 걸려 5명 자식 두고 40세 사망

전상명의 친구로 2명의 자식을 둔 상처한 이종하의 구애에 정식 두 번째 남편을 맞이했다

 

조선일보 편집국장 연재 의뢰 신문 지가를 드높인

'찔레꽃' 상범이 좋아했던 꽃이었다

이은상의 씨앗 아들 문제를 말봉이 응원했다.

찔레꽃이 흐드러진 망우리공원 묘역 옆에는

두 번째 남편 아나키스크 이종하 선생이다.

 

50년대 대표 시인 명동의 미남 박인환은

마리서사 서점 손님인 이정숙 여사와 결혼하여 21녀들 두고

서른 살에 생을 마감했다

유품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이정숙 여사의 마음 졸임의 보복이라 할 수 있다.

 

김영랑은 꼬마 신랑으로 어린 신부를 잃고

서울에 올라와 공부하던 중 최승희를 보고 반해

결혼하려 애를 쓰다 두 집안 반대하여

강진 생가 뒤안 동백나무 가지에 목을 매다는 자살 소동을.......

 

관동대지진 유학 중 충격으로 상과대에서 방향은 틀어 민속학의 태두 석남 송석하

경남 언양 만석꾼 집안 아내는 전북 정읍 만석꾼 집안 결혼

삼성그룹과 대상그룹의 혼사의 모델

 

독립운동가 서동일 다물단 단원은 부인 최옥경 여사의 유택에 이장하여

묘비에 이름을 새겨져 있지 않다

우측 능선 삼형제 바위와

계곡에 은사시나무와 왕버들나무의 연리지가 세 번이 굳게 만나

두 분의 씁쓸한 현실을 위로하고 있는 듯 싶어 참배하며 되새긴다

 

대향(大鄕) 이중섭(李重燮, 1916~1956)

도쿄문화학원 두 살 아래 후배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 1918~ )

- (한국명 이남덕 따뜻한 남쪽에서 온 덕이 많은 여자)와 연애할 때 우편엽서 그림과

6.25한국전쟁 중 혼자 남고 일본으로 보내고 난 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 우편엽서 그림은

은지화와 함께 대향 이중섭 화업에 길이 남을 스토리가 담겨 있다

 

일본의 명문 무사시노미술대학 개교 80주년 졸업생 중 가장 예술적으로 성공한 작가를 선정해 그의 회고전(2009.10.19.~12.5)을 열었던 한국 근대 사실주의 조각의 선구자 냉대 속에 자살한 테라코타 작가 권진규(權鎭圭, 1922~1973)

권진규는 자소상을 유난히 많이 제작했다. 일본인 부인 가사이 도모의 도모상도 제작했다. 그가 사랑한 여인 도모의 모습을 형상화한 시리즈는 몇 점 되지 않지만, 신라의 석공의 혼과 조형의 본질을 담은 불상을 연상시키며 그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일본 대학생 시절에 결혼한 일본인 도모를 평생 못 잊어했다. 여인상에서 얻은 선을 좋아했기 때문에 '잊을 수 없는 여인'으로 여러 점 제작했다.

부르델의 제자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말년에 외로워 누구나 오면 반가워했다.

항상 마음속에 도모가 있어 도모 그림을 붙여 놓고 보았다. 뒤에 도모가 재혼한 것을 알고 상심이 컸다.

1959년 일본에서 귀국하면서 73년까지 15년 정도의 짧은 기간 많은 작품으로 자기 셰계를 구축한 작가이다. 자살 자체도 자기 관리의 하나로 볼 수도 있다.

 

네 번째 아내를 맞이하는 서해(曙海) 최학송(崔鶴松, 1901~1932)과 조분녀 결혼식은

당시 조선문단잡지 편집 담당자와

간도에서 떠돌 때 만난 영광 조운 시조시인 누이로 두 아들을 두었다

 

조선이 낳은 10대 운동가 부동의 1위 이영민(李榮敏, 1905~1954))

7살 때 이혼으로 상처받아 아버지를 증오하여 삐뚤어진 셋째 아들

불량배 친구들 불러들여 귀중 물건 훔치려 필운동 자택에 들어와 다투다

권총 오발로 만능 스포츠맨 허망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기붕 박마리아 1공화국 독재 권력의 2인자와 두 번째 국모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지아비의 바람을

두 번에 걸쳐 '~고려해 보겠다'로 고쳐

4.19혁명 민주의 섶에 기름을 부어버려

비운의 가족 권총 자살로

이장한 가족묘지 드러낼 수 없다

 

죽산 조봉암 네 명의 여인 그 중에 김조이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 출가 전 결혼 아들 보국 친일에 월북

노년 병 간호 유여사 묘지 오른쪽에 함께 했다.

 

소파(小派) 방정환(方定煥, 1899~1931)

의암(義庵) 손병희(孫秉熙, 1861~1922)) 선생의 셋째 딸 용화와 결혼

33살 땅딸보 단 음식 좋아해 당뇨 합병증으로 생을 마감

연인 줄리아 S 신준려 망우리공원 소파 쑥돌 묘비 맴돌았다

 

19982월간미술미술평론가들의 투표 근대유화베스트10’ 선정에 경주의 산곡에서가을 어느 날이 각각 공동 1위와 7위를 차지한 아소(我笑) 이인성(李仁星, 1912~1950) 대향 이중섭의 흰 소가 단독 2위였다

대구 유지들의 지원으로 일본 유학 중 만난 대구 의사 집안의 딸 김옥순과 결혼하고

병으로 죽자 음주벽 서울로 올라와 두 번 더 결혼하여

통행금지 시비로 북아현동 자택에서 초짜순경 권총 오발로 천재의 예술혼을 접었다

 

삼학병 중 학병동맹 군사부장 박진동(朴晉東, ~1946) 남해군수 출신 아들이자 LG그룹 창업자 구인회의 맏사위 푸른 꿈 낙이망우 하늘과 아리수 강물소리 75년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