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이야기

주포일기

정종배 2020. 12. 10. 07:25



<천승세 선생님 생전에 낸 시집 ≪산당화≫(문학과행동사, 2016)에서>

<주포酒浦일기>

누구 게 없느냐
아무라도 한 사람 비틀거려다오
기름 절절 끓는 무쇠솥에다 못 이룰 첫사랑 담아놓고
한여름 염통 짜들게 울며 꽈배기 됐던 날
나 오늘사 그렇게 원없이 원없이 비틀거리다 죽고싶다

누구 한 사람 비틀거려다오
아무라도 한 사람만 휘청이는 그림자 보듬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다오
파장의 잔판머리 못 다 팔려 쩍쩍 엿판에 달라붙어
피 절인 육즙 서로 부둥켜안고 엿가락끼리 비틀거리던
그 춤 한번만 죽을 때까지 비틀거려다오

저 해제반도 춤사위 비틀거리다 옴팡 굳고
이 함평만 물이랑도 비틀거리며 들며 나느니
이 캄캄한 불망不忘의 핏줄 같은 그리움들, 이렇게
잠잠히 서서만 버틸 것이냐, 아무 몸살 없기냐

누구 나설 사람 없느냐
아무라도 한 사람만 원없이 비틀거리며 쓰러져다오
연꽃잎 구르며 정화수 한 방울 떠안으며 목이 타던 날
이제사 맘 놓고 죽을 자리 주포 아니냐

* 시집 ≪산당화≫는 2016년 6월 선생님의 소설 <신궁>이 희곡으로 각색, 무대에 오르게 됨을 기념하여 펴낸 것이다. 위 시는 목포에 계실 때 쓰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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