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늦게 오고
시냇물이 느릿느릿 걸어가는 연서로에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 쏟아진다
경비원은 휴식시간이지만 눈가래질로 바쁘다
간만에 대빗자루질로 온몸을 풀었다
어릴적 큰집 작은집 대문까지
눈길을 내주던 추억을 불러내
진관사 한 바퀴 돌려나온 아들과
아파트 519동 521동 입구와
분리수거 및 음식물쓰레기자동처리시설과
버스정류장 나가는 길까지
한참 동안 눈길을 뚫었다
땀이 솟고 허리가 뻣뻣하며
아픈 어깨 신호가 왔지만
마음은 뭔가 한듯 싶었다
진관사 5층석탑 탑돌이 하고서 돌아와
또 다시 눈길을 내고서
집에 들어와 샤워하고
의정부 금오동 경비원하면서
치매 아내 10년 간병으로
손수 담은 솔잎주 같은 시를 쓰는
이문길 시인의 함박눈 눈발같은 웃음소리 기억하며
선물로 받은 솔잎주와
안동 원촌 이육사 고향 옛 육우당 자리에서
집사람과 뜯어 5년 발효한 쑥차를 번갈아 마시니
훈훈한 기운이 온몸을 녹인다
창밖에는 함박눈이 오지게 내린다
경비원 아저씨 지하주차장 내리막길
눈가래 두 개로 눈치는 소리가
휘날리는 눈과 누가 이기는가 다투는듯 들려온다
연말연시 켜놓은 점멸등은
나와는 상관없다 깜박이며
눈발을 쉬지 않고 맞이한다
오늘 오후 우편과 택배로 도착한
한국가톨릭문인회 창립 50주년 기념문집
'은총이 꽃으로 서 있다'와
충청도 홍성 노동문학관 이사장
정세훈 시인의 시집 '동면'을 읽으며
한겨울밤 따끈따끈 지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