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 인물열전 조종완 독립운동가
흥사단 단우 수양동우회 사건 군자금 모금 독립운동가
조종완(趙鍾完, 1891.3.15.~1945.3.5.) 77주기
조종완은 1891년 3월 15일 평남 강서에서 태어나 1945년 3월 5일 서거하였다. 본적은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포리 324번지이다.
1911년 대성학교를 졸업한 후 국권회복의 방안을 모색하던 중 1920년부터 상해 임시정부의 지원을 위하여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였다. 이후 일경에 붙잡혀 1921년 6월 9일에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5년 평양에서 이윤재·오경숙·김찬종·김항복 등이 중심이 된 동우구락부에 가입하였다. 동우구락부가 수양동맹회와 통합하여 결성된 수양동우회 1926년 1월경 가입하여 민족의식 고취를 통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35년경 일경에 붙잡혀 예심에서 면소판결을 받았으나 다시 기소되어 1936년 8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48년 8월 14일 망우리공동묘지(묘지번호 109831)에 묻혔다. 1995년 5월 10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ㅡ367 구역에 안장되었다.
조종완 독립운동가의 묘지는 사색의 길 일방통행 반대로 걸어 올라 시인 김상용 묘지를 참배하고 100여 미터 굽이돌면 도로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1990년 전후 유명인사 묘역이 이장됐다. 특히 독립운동가 묘역들이 국립현충원으로 이장했다. 그 무렵 망우리공원 정비 사업으로 일환으로 이장을 권고하며 이장 비용도 국가에서 대주었다.
2020년 4월 4일 토요일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망우분과 위원들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열리지 못하는 ‘도전 러닝맨’을 대신하여 망우리공원 한 바퀴를 돌았다. 먼저 옥구 장해윤 군속 묘비를 찾아 읽었다. 일본 군속으로 중국 태항산 석가장전투에 통역관으로 참가하여, 일본군의 훈8등급을 받았다는 비문을 확인했다.
두 번째로 독립운동가 조종완 묘지 터를 확인했다. 다행히 묘비번호가 낙엽 위로 드러나 있어 쉽게 찾았다. 묘비는 묻고 간 것으로 생각하고 망우리공원에 묻고 간 유명인사 김영랑 시인, 나운규 감독, 김동명 시인, 김사국 독립운동가 등의 묘비를 다시 세우는 날을 기대하며 아사카와 다쿠미 묘역을 참배했다. 지난 4월 2일이 89주기였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추모행사는 갖지 않고 화환으로 헌화의식을 치렀다. 한국측 아사카와 노리타카 다쿠미 형제 추모회, 문화재청장, 문화유산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 수림문화재단 유진룡 이사장 등의 화환과 꽃바구니가 묘지를 지키고 있었다. 봉분을 한 바퀴 도는데 묘역 뒤 언덕에 두더지 구멍이 많이 보였다. 예년에 없던 현상이었다.
위창 오세창 선생과 호암 문일평 선생의 연보비와 묘지 안내석이 묘지 위치로 봐서 뒤바꿨다고 확인했다. 김이석 소설가 묘비가 이제는 봉분과 떨어져 정상적으로 위치에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또한 박순녀 소설가와의 소통을 통해 귀중한 자료를 중랑구 자료관에 유치하는 작업도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서병호 연보비를 뒤로 하고 구리둘레길 1길 능선을 넘어 솔샘약수터 내려가는 오솔길을 길섶 임숙재 초장지 묘지 터 묘비를 확인했다. 임숙재 묘지 터는 능선 너머 한강을 바라보는 곳에도 묘비가 남아 있다. 이곳에서 이장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볼 수 있었다. 독립운동가 강학린 목사 추념비를 확인하며 똑바로 세우는 작업도 협의했다. 가수 강수지 본명이 증손녀 수지(修智)라고 비문에 새겨져 있었다.
망우리공원 인물들의 전수조사가 왜 필요한지 네 명의 망우리공원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으로 내년 봄 꼭 마무리 짓기로 다짐했다. 2020년 식목일 하루 전 망우리공원 하루였다.
망우리공원에 흥사단 단우와 단우 번호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안창호 41, 조종완 563, 동우 이탁 559, 나우 222, 이영학 1095, 문명훤 562, 유상규 199, 허연 265, 김봉성 554, 김기만 142 등이다.
안창호 선생을 둘러싸고 이영학, 김봉성, 유상규, 문명훤, 김기,만 조종완, 허연, 나우 등 단우들이 묻혔다.
현재 유상규 이영학 나우 허연 김기만 단우들의 유택이 남았다. 단우 모두 독립운동을 하였다. 이 중에 유상규 단우만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았다. 중랑구청과 흥사단 및 관계 기관에서는 자료를 준비하고 제출하여 국가보훈처에서 서훈을 받아야 마땅하다. 이영학 단우는 이북 출신이라 후손들이 유택을 돌보지 않고 있다. 허연 단우는 후손이 신청했다 보훈처와 갈등으로 철회했다. 흥사단에서 표지비라도 세워 민족을 위해 피땀을 흘린 노고를 위로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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