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재림교회 교인 송계 김정규 독립운동가 62주기를 맞이하며

정종배 2022. 9. 13. 19:17


재림교회 교인 송계 김정규 독립운동가 소천 62주기를 맞이하여 / 정종배



북간도 훈춘현 1919년 3월 20일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송계 김정규 선생은
1883년 함경도 함흥군 성내동에서 태어났다
1900년대 초 연해주에 터를 잡은 치과 의료인으로
봄이 오면 심심산골 진달래가 붉게 피고
마을마다 열사비가 없는 동네가 없을 정도로
아직도 어느 한 심심 산 산골에
이름 없이 누워 있는 열사들을 헬 수 없는 곳곳에
독립자금을 보냈으며
1913년 북간도 용정촌 북장로파
영국인 목사 박걸朴傑이 훈춘琿春지회를 조직할 때 참여했다
박태항 한수현 등과 함께 선교활동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북돋우며 계몽활동을 펼치었다

송계 김정규 선생의 재림신앙은 홀로 성경을 봉독하다 찾아왔다.
성경에 쓰인 제칠일 안식일이란 표현을 보고서
자신이 지키던 주일과는 다르다는 생각에
가족들은 장로교회를 다녔지만
1927년부터 외로이 안식일을 지키다
한반도에서 연해주로 파견된 선교사에게
1934년 침례를 받은 뒤
5대에 이르는 재림교회 명문가로 거듭났다.
6·25전쟁 후 삼육치과병원에서 근무하며
소천할 때까지 이문동교회에 출석하였다.

송계 김정규 독립운동가는
1919년 3월 20일 북간도 훈춘지역
3·1 독립선언 축하 민중대회를 앞장서서 이끌었다
안중근 의사와 1909년에 결성한 단지회 11인 중 한 명인
주동자 황병길의 뒤를 이어
송계 김정규 선생이 연설하고
시위에 모인 군중 800여 명과 함께
큰 태극기를 앞세워
군중들은 손마다 작은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를
목구멍이 찢어져라 외치며
행진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1919년 9월 11일 노령의 대한국민의회 회장인 문창범으로부터
"국제연맹회의에서 한민족의 독립 문제를 논의할 때
세계 각국의 여론을 환기하기 위하여
군중들에 의한 시위를 거사하여야 한다."는 밀서를 받고
고일섭·안태국·김한익 등과 함께 협의하여
대한국민의회 본부에 시위운동 후원자의 파견을 요청하는 한편
시위운동의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활동을 펼쳤다.

1921년 9월에는 전 상해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동휘의 국권회복운동을 위해 협력 활동하는 등
2년 6월간에 걸친 사실이 확인되었다.

1960년 9월 14일 서울 이문동에서 소천하시어
망우리공동묘지에 9월 16일 안장됐다.
진산인 망우산 정상인 제3보루 7부 능선 북향으로
안산은 구릉산 조산은 불암산 수락산으로 회룡고조형국이다

비석의 앞면에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인 고 송계 김정규지 묘
부활의 소망'이라고 새기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 묘지 터는 2010년 곤파스 태풍에 옆 계곡은 큰물에 휩쓸려 갔어도
이곳은 무너지지 않을 만큼 명당이다

2011년 3월 30일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4묘역-345로 이장했다.
묘비는 세워두었으나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흙 속에 묻혔다.
한국재림교회 독립운동 기념사업회에서 2021년 8월 15일 다시 찾아 일으켜 세운 후
2021년 9월 14일 기일에 처음으로 61주기 추모식을 치렀다.

앞으로도 매년 김 선생의 소천 일에 맞춰 추모식을 진행하고
교회와 나라 사랑 정신을 기리고 이어받아
소나무 숲에 계곡물이 흐르는 늘 푸른 역사를 쌓겠습니다.
송계 김정규 선생이시여 부디 천상 영복을 누리시길 빕니다.

사진
송계 김정규 독립운동가
송계의 맏이인 김중정 할아버지 비닐하우스 집 내부
망우역사문화공원 송계 김정규 묘지 터 입구 사색의 길에 내걸린 추모식을 알리는 현수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