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잔 다르크 유관순 열사 102주기와 강소천의 <유관순 노래>
강소천은 6·25전쟁 흥남부두 철수 배편으로 거제에 도착했다. 그때 기독교인이라 먼저 구조되고, 언 주먹밥 하나로 견디어 큰 병의 원인이라 고백했다. 혼자 피난 나올 때 원고지 보퉁이만 가슴에 꼭 안고 내려왔다. 부산 영도다리 근처에서 우연히 만나 곧바로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문교부 편수국에 취직시킨, 당시 문교부장관 비서였던 영생고보 동창인 박창해는 1945년 광복 직후부터 3년 동안 미군정청 문교부 편수사로 근무하며 한국 최초 국민학교 국어교과서를 제작했다. 한국의 잔 다르크를 찾기 시작하여 유관순 열사가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곳에서 함께 일한 평생지기 최태호와 전시 국어 교재를 편찬한 강소천 작시의 동요 <어린이 노래>, <금강산>, <스승의 은혜>, <유관순 노래>, <꼬마 눈사람>, <산토끼야>, <태극기>, <코끼리 아저씨> 등 많은 노래가 교과서에 게재된 것이 이해되었다. 강소천 작시 나운영 작곡인 <유관순 노래>는 1952년 청소년의 애국심과 국가관 고취를 위해 문교부 편수국 의뢰로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중 널리 알려진 인물은 유관순이다. 한국의 잔 다르크로 영웅화하는데 <유관순의 노래>를 빼놓을 수 없다. 대한민국 독립운동 및 한 인물에 대한 노래 중 이 노래만큼 널리 부르는 노래는 없다. 강소천 작시 나운영 작곡 <유관순 노래>보다 먼저 유관순 열사에 대한 노래가 있었다. 그 노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전남 담양 판소리 명가 출신 박동실(朴東實, 1897∼1968)이 1930년대에 창작하여 녹음한 판소리 <열사가>는 <이준열사가>, <안중근열사가>, <윤봉길열사가>, <유관순열사가> 등 일련의 ‘열사가’들로 구성되었다. 1947년 이화여고 교사 김재인(金在寅, 1913~2005) 작시 작곡가 박은용(朴殷用, 1919~1985)이 작곡한 <유관순의 노래>가 유관순 열사를 기념하는 최초의 양악곡이다. 그해 11월 아우내 장터에서 열린 ‘유관순과 21열사 행적비 개막식’ 행사 때 이화여중 합창단이 이 노래를 불렀다. 1948년 임학수(林學洙, 1911~1982) 작시 안기영(安基永, 1900~1980)이 작곡한 합창곡 <유관순>은 서울국민음악연구회가 만든 '중학음악교본 제3권'에 실렸다.
명창 박동실은 평양음악대학민족성악학부 교원으로 인민배우, 서울대 음악학부 교수이며 작곡가인 박은용은 평양음악연구소 실장, 작사가 임학수는 김일성종합대학교 영문학 교수, 작곡가 안기영은 평양음대 교수 등 월북하여 모두 금지곡이 되었다. 1988년 해금 이후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유관순의 노래>와 합창곡 <유관순>, 이 두 곡은 필자의 모교 한성고 2년 선배인 서지학자 오영식 선생님이 구입한 고문서 뭉치 속에서 끼어 있는 악보를 정리하여 2014년 2월 발표하며 세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되었다.
유관순 추모는 소설·영화로도 이뤄졌다. 단편 「화수분」으로 유명한 소설가 전영택이 1948년 소설 『순국처녀 유관순전』을 썼다. 같은 해 이구영이 시나리오를 쓰고 윤봉춘이 감독한 영화 <순국의 처녀 유관순>이 상영됐다. 《영화시대》라는 잡지는 개봉에 즈음해 이 영화를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면 / 유관순 누나를 생각 합니다 /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
여학생들이 고무줄놀이하면서 부르던 동요 <유관순 노래>. 이 노랫말을 지은 분은 강소천 유택은 망우리고개를 사이에 두고, 3.1운동 유관순 열사의 유해가 묻혀 있다 추정되는 이태원묘지무연분묘합장비와 마주하고 있다. 망우리공원 건너편 구리시 교문동 딸기원마을 뒤편 가족묘지에 소천 강용율 묘비에 동시「닭」이 새겨져 있다. 소천의 묘역 주변은 봄이면 개나리 꽃밭으로, 평소에도 묘지 관리가 잘 되어,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마주 보면 제일 밝고 환하다.
서울시 중랑구에서 망우역사문화공원 낙이망우교를 지나면 망우리역사문화공원 버스 정류장이다. 그곳에서 내려 구리시 쪽으로 걸어가 망우리고개를 넘으면 경기도 구리시 교문리 상덕마을이다. 그 첫 번째 횡단보도 건너편에 자리 잡은 딸기원마을이다. 마을 들어가는 도로 왼쪽 인도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계단을 올라 서북쪽 산자락 100미터 오르면 소천 강용율 부부 유택이 망우산과 서울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은 망우역사문화공원에 포함되지 않은 사유지이다. 어린이날을 맞이하면 소파 방정환 선생 유택과 어린이와 어린이 관련 단체와 관련자 참배객이 붐빈다. "망우산마을공동체 마을과 아이들" 대표 최성호 선생님께서 퇴근길 강소천 묘역을 자주 참배한다. 소파 방정환 선생 묘역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강소천 묘역을 찾아가는 안내판이나 묘역 안에 안내문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뜻있는 지인들과 방법을 찾고 있다. 강소천 묘지 탐방 및 동요부르기 대회와 강소천문학관 건립 등 다양한 활동을 계획하고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임학수 작시 안기영 작곡 유관순 1948년 중학음악 교본 제3권
강소천의 묘비 제막식
강소천의 장례식
강소천 유택에서 바라본 망우역사문화공원
강소천의 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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