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관동 조선인 대학살 100년 <위령의 종루> 개보수 모금을 위한 답사

정종배 2022. 12. 21. 16:23

관동 조선인 대학살 100년 <위령의 종루> 개보수 모금을 위한 답사

첫 번째 답사는 2023년 2월 9일 목요일 오후 2시 망우역사문화공원 중랑망우공간 앞에서 출발합니다.

두 번째 답사는 2023년 2월 11일 토요일 오후 2시 양원역에서 출발하겠습니다.

올해 9월 1일이면 관동 조선인 대학살 100년
<위령의 종루> 개보수 모금을 홍보하기 위해서 망우역사문화공원 답사를 실시합니다.

주중 한 번 주말 한 번 일주일에 두 번 계획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격려와 응원 참여 부탁드립니다. 모금은 자발적입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을 20여 년 넘게 답사하면 할수록 아쉬운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독립운동가에 대한 국가 관리가 소홀한 점이다. 특히 보훈처 서훈에 대한 기준이나 심사 그리고 사후 관리에 대한 민낯이 드러났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서훈을 받을만한 독립운동가 몇 분이 무덤조차 방치되어 있다. 대부분 월남한 북한 출신이다.

둘째, 재일한국인들의 트라우마인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에 대한 진상 파악과 일본 당국과의 외교적 관계 설정 그리고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인 제 영향 등을 자료를 찾고 연구하는 학문적인 토대가 얕고 연구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문학 분야에서는 손으로 꼽을 만큼 연구자가 귀하다. 올해가 관동 조선인 대학살 참상이 일어난 지 100년이다.

셋째,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자리매김이 되어 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 친일에 대한 진상을 좀 더 명확하게 자료를 근거로 파악하면서 후손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공과를 명시하기를 바란다.

 
양윤석 페친의 글입니다.
 
2023년은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 참혹한 비극을 노래한 노래는 현재 신채원 작시, 문진오 작곡, 노래의 <조선인의 발>(2021년 작) 외에는 들어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직후 일본에 유학생으로 가 있던 우리 지식인들은 다음 시에서 보다시피 이 사건을 <추도가>를 통해 노래했었습니다. 그 노래가 어떻게 불렸는지 알고 싶군요. 이렇게 우리의 문인들은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이 계속 자행되고 있던 1924년에 그 사건을 노래했지만, 우리는 그 노래를 알지 못합니다. 이후 우리의 문인들은 일본 당국의 검열 때문에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에 대해 이렇게 직접적으로 노래하지는 못하고 비유적으로만 표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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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가
(감동가곡조로)
 
B生 (개벽 1924. 2)
- 작년 9월 2일 이강(以降) 이 땅에서 피살된 동포의 일은 아아 무엇으로써 말슴을 드리릿가. 지난번에 이곳(=동경)에 잇는 여러 단체의 주최로 추도회를 개최하은 바 그때의 추도가를 태정(胎呈)하오니 그들의 원흔을 대하는 듯한 늣김으로써 닑어주시오.
 
슬프도다 우리 동포야
반만리이역(半萬里異域)에 이 웬일인가
평생의 이상은 일조(一朝)에 피요
십년의 근로는 해골뿐이라
 
해심산고(海深山高)의 (OO)의 한을
무슨 말로써 위로하리요
우리의 이상이 실현되는 날
황폐한 무덤에 꼿이 피리라
 
무사시노(武藏野) 느진 달빗 초이는 곳
그대들의 무덤이 어대이든가
가을밤 벽공(碧空)에 흐르는 별은
그대들의 원혼이 방황함인가
 
해심산고(海深山高)의 (OO)의 한을
무슨 말로써 위로하리요
우리의 이상이 실현되는 날
황폐한 무덤에 꼿이 피리라
 
* 이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고 원혼들을 진혼하기 위한 시설이 아직도 대한민국엔 없습니다. 그러나 38년 전 1985년에 대한민국 본국 시민들이 세운 유일한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희생자 기림시설인 위령의 종루 <보화종루(鍾樓)>는 일본 현지 학살 현장에 있습니다.
 
그 희생자들의 유해가 모셔진 일본 지바현 관음사의 이 위령의 종루가 지금 그동안 잦은 지진으로 훼손과 파손이 심해져 붕괴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이 종루를 개보수해서 그 해원과 상생의 뜻이 한일 양국 시민들에게 계속 전해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동참과 홍보를 바랍니다.
 
 
모금계좌 : 신한은행 100-035-910772 (예금주 : 사단법인유라시아문화연대) ※ 연말정산 시 기부금 영수증 발급 * 연락처 : 010-3380-6090 (기획위원장 최유진)
 
● (일본 측) 모금계좌 : 千葉銀行 店番號 048 口座番號 3403751
(예금주 : 宗敎法人 觀音寺代表役員 關琢磨)
* 연락처 : 觀音寺 047-450-2753, 問合せ先 吳 充功 090-6940-4723 chkong55@gmail.com
 
여기까지 양윤석 페친의 글입니다.
 
 
관동대지진 관련 세계 유일 다큐 두 편을 제작하고 세 번째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재일한국인 오충공Choongkong OH 감독은
"조선인학살을 추도한 재일조선인 허남기시인의 노래가 존재합니다" 라고 답글을 달았습니다.
 
추도가의 작자인 'B生'에 대한 본명이 누구인지 사단법인 방정환연구소 소장 장정희 교수와 혹시 방정환 선생이 아닌지 소통하였으나 현재까지 확인을 못하고 있다.
 
혹 아시는 분 계시면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동경에서 B생'이란 필명으로 개벽(1923년 7월호, 1924년 2월호) 어린이(1924년 2월 13일 발행) 등에 글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년 <위령의 종루> 개보수 모금을 하고 있습니다.
동참과 홍보 바랍니다.
 
카카오 같이가치 모금함 링크 :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102012
 
 

관동대지진조선인학살 100주년 위령의 종루 개보수 모금

댓글, 응원, 공유만 해도 카카오가 대신 기부합니다. 카카오같이가치

together.kakao.com



제25회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된 오충공 감독

관동 조선인 제노사이드 참상을 기록하는
한일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작업을 1983년 최초로 다큐멘터리 <감춰진 손톱자국>을,
두번째 작품으로 1986년 <불하된 조선인>을 제작하여
한일은 물론 세계 각국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재일한국인들이 현재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문제를 고발하고
한일간의 화해를 제시하며
한민족의 아픔을 잘 드러내고 기록했던
재일한국인 오충공 감독이
제25회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자로 결정 됐습니다.

오충공 감독께서 투표해주신 분들께 고마운 인사를 올립니다.

오감독은 <1923년 제노사이드 93년의 침묵>을 2012년부터 제작 중입니다.
2023년 9월 1일 100년 관동 조선인 제노사이드 즈음에 상영할 예정으로 막바지 작업 중입니다.

지난 11월 14일 일본 지바현 관음사 보화종루 보수작업 후원 성금 모금에 준비 모임으로
현지에서 한국 모금단체 일본 현지 후원단체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의하였습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영상작업 오충공 감독
오충공 감독
2017년 8월 30일 최초 유족회 발족과 부산항 수미루공원 유족회 추모제

2018년 진관사 국행 수륙재 관동대진재 희생자 위패 봉안

위령의 종루 보수 및 추모문화제 기금 모금 계좌

올해가 ‘관동 조선인 제노사이드’가 일어난 지 100년이다. 한일 관련 단체들이 활발하게 행사를 치르고 영상 작업을 통해 진상 규명과 사과를 요구할 예정이나 일본 정부는 요지부동일 것이다. 1923년 9월 1일 일어난 간토대진재 혼란에서 우리 민족이 무고하게 제노사이드 당한 참상을 경험하고 한국인들은 대부분 귀국했다. 일본의 경찰과 군인 및 자경단의 제노사이드로 인해, 한국인들의 분노를 수습하기 위해 간토대진재 이후 2년 동안 유학생과 한국인을 전면 일본 입국을 통제하였다. 당시 동경 유학생 400여 명은 대부분 희생당하지 않았다. 하층민인 노동자들은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조선인 희생자는 임시정부가 간행하는 독립신문 집계 6661명이다. 그러나 많게는 2만 명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 묻혔던 석남 송석하 선생은 일본 유학 중에 경제학에서 방향을 틀어 민족의 뿌리를 찾기 위해 민속학을 공부하였다. 석남은 당시 참상을 목격한 이들 중에 드물게 자신의 진로가 바뀐 이유를 관동대지진 제노사이드라 밝혔다. 일곱 살 위인 소파 방정환의 어린이 운동과 잡지 발간을 돕고 망우리에 소파의 묘지를 마련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최신복은 아동문학과 어린이 운동을 하였다. 정치인 조봉암은 사회주의 독립운동, 시인 김영랑은 남도 정서를 바탕으로 한 순수시와 항일 저항시, 유상규는 임시정부 활동과 일본에서 노동을 경험하고 경성의전 부속병원 외과의사로서 대중 의료보건 홍보 및 교육에 힘을 쏟다 급성세균감염증으로 39세로 타계했다. 장형두는 식물분류학에서 비록 일본인 선생님의 교육 아래 공부를 하였지만, 그 일본인 학자와 맞선 거의 유일한 조선 식물학자로 활동하였다.

한편, 오기선은 당시 동경 한인교회 목사로 목숨 건 구조 및 구호 활동으로, 방정환은 조선인 제노사이드 당한 인적 물적 조사반원 활동과 천도교를 주축으로 모금한 후원금 전달로, 나운규는 영화 <아리랑> 제작으로, 계용묵은 「인두지주人頭蜘蛛」 소설로, 아사카와 다쿠미는 1923년 9월 10일 일기에 조선인은 유언비어와 같은 행동할 민족성이 아니고 동경으로 가 구조하겠다, 다음 날 일기에는 임엄시험장 장장에게 불려가 조선 대학살에 관련하여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 내용 등은 관동대지진 직간접 관련을 맺고 있다. 제노사이드 참혹한 경험을 하거나 그분들과 일을 함께한 분들은 대부분 우리 민족의 자존감과 정체성 확립에 헌신했다. 월파 김상용 시인도 당시 일본 릿쿄대학에 유학 중이었다. 월파 시인의 작품에서 시조 형식의 작품과 죽음과 허무 의식을 노래하였다.

조선 작가들은 재일한국인들을 직접적으로 업신여기는 차별을 당한 그 민족적 사건에 대하여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관동 조선인 대학살’을 체험한 작가와 비체험 작가로 구분될 수 있다. 고국으로 돌아온 지식인들은 대부분 민족적 참상을 일제 검열로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나마 파인 김동환 「승천하는 청춘」, 이기영 「고난을 뚫고」·「두만강」, 유진오의 「귀향」 등에서 실제 목격한 도쿄 현장 참혹한 상황을 다루었다. 당시 일제 감시와 탄압 때문에, 이를테면 간토대진재 문학으로 꼽을 만한 작품 수효가 많지 않다. 그래도 다수를 점한 것이 시 갈래이다. 이상화의 「독백」, 김소월의 「車와 船」은 대화체 발화법을 채택함으로써 그 파멸적 사건의 문학적 형상화에 성공적인 경지를 보였다.

일본 유학 중에 그 대지진을 만나 간신히 목숨을 유지하고 귀국한 유학생은 이상화와 채만식 등이었다.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는 반체제적 저항시로 유명하지만, 대부분의 독자는 그 시인이 ‘관동 조선인 대학살’의 체험자인 것을 모르고 있다. 이상화는 ‘관동 조선인 제노사이드’ 때 절감한 민족적 울분을 그 시에 드러낸 것이다. 김소월의 시 「초혼」도 세속적인 남녀 관계와 우리 민족의 전통 장례 절차인 고복 의식을 설정하여 일제의 검열을 피하며 용의주도하게 민족의식을 표출한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관동대지진 제노사이드 당하는 경험을 한 항일의식을 바탕으로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관동 조선인 대학살’을 직접 체험하지 않았지만, 그 사건과 관련하여 저항적인 작품을 쓴 작가는 염상섭과 이상과 설정식 등이다. 염상섭은 단편소설 「숙박기」(1928)에서 ‘관동 조선인 대학살’ 이후 일본에서 더 심해진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언급했다. 주인공인 젊은 조선인 유학생이 일본 동경에서 하숙집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진 이유가 그 민족차별에 있었다는 것이다. 무고한 조선인을 대량 학살하고서도 설상가상으로 잔인하게 민족차별을 하는 일본 민족은 과연 문명국가의 국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관동 조선인 대학살’의 조선인 학살사건을 가장 신랄하게 항의한 작가는 이상이었다. 그는 수필 「동경」(1936)에서 이렇게 썼다. “에드벌룬이 착륙한 뒤의 은좌 하늘에는 신의 사려에 의하여 별도 반짝이련만, 이미 이 ‘카인의 말예’는 별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밤하늘의 ‘별’은 ‘신’의 배려를 받아야만 뜨는데, 조선인을 대량 학살한 중심지가 ‘동경’이기 때문에 그곳의 밤하늘에는 ‘별’이 없다는 것이다. 이상은 그 학살자들을 죄 없는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의 후손으로 비유했다. 이상에게 ‘동경’은 대학살 도시였다. 설정식의 시 「진혼곡」(1949) 등이 있다

일본 정부는 ‘관동 조선인 대학살’의 조선인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적이 없다. 이는 태평양전쟁의 피해자인 성 노예로서의 한국 여성들에게 사과하지 않는 것과 그 맥락이 똑같다. 이렇게 볼 때 ‘간토대진재’ 때의 조선인 대량 학살사건은 결코 잊어버리고 싶거나 잊어도 좋은 과거사가 아니라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오늘의 문제이다. 현재까지 일본 정부는 진상을 밝히거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일본 정부에 공식적으로 진상 공개를 요청한 적도 없다. 재일한국인들이 제일 겁나는 게 지금도 그와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100년 전과 똑같은 제노사이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는 현실이다
.
관동대지진 이후 국내로 들어온 유명 문인과 인물은
김소월·이상화·김동환·김영랑·박용철·이육사·이기영·채만식·한설야·최신복·함석헌·조봉암·송석하·오기선·최승만·유상규·유치진·유치환·유치상·김소운·윤극영·장형두·안창남·변희용·박열·윤세주·한승인·허남기 손우성 등이다.

김소월은 지진 이후 한 달 동안 연락이 두절 되어 가족들이 죽었다고 포기했다. 시인 구상의 맏형님도 도쿄 유학 중 지진 이후 행방불명 됐다. 윤동주 시인 아버지도 당시 참상을 목격하고 명동촌에 무사하다는 전보를 보내고 급히 귀국했다. 시사만화가 박재동의 할아버지도 관동 조선인 대학살 때 부두 하역 노동자로서 하숙집 주인이 숨겨줌으로써 살아 돌아왔다.

양주동·이장희·유엽 등은 방학 중 귀국하여 일본에 돌아가지 못하고 백기만·손진태·이상백 등과 우리 근대문학사에 나타난 최초의 본격적 시 전문지였던 금성金星》을 1923년 11월 10일 창간했다.

재일한국인 다큐 제작 오충공 감독은 1983년 조선인 입장에서 관동대지진의 참상을 고발하는 <감춰진 손톱자국>, 1986년 일본인 입장에서 관동대지진 참상을 얘기하는 <불하된 조선인>, 2023년 100년인 관동대지진을 유족들 입장에서 잊혀진 현실을 말하는 <1923년 제노사이드 93- 93년간의 침묵>을 8년 동안 제작하고 있다.

스물 일곱의 청년인 오충공 감독이 만든 대학 졸업작품이지만, 제작 직후 일본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다큐멘터리로서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국내에서는 1998년이 되어서야 부산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재일코리안 작품 초청작)

김소월의 「초혼」,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김영랑·이육사 저항시 뿌리에는 관동대지진 참상을 목격한 민족애가 표출되었다고 주장하며, 전남대 일어일문학과 교수였던 고영자 평론가는 2004년 평론집 『바로잡는 국문학』을 탱자출판사에서 간행했다.

미디어 세림 신채원 대표는 2016년부터 지난 7년간 오충공 감독의 영화상영운동과 새 작품 제작을 함께하고 있다. 전국 순회상영을 열어가는 한편 서울 경복궁 역 근처 레코딩스튜디오 통인에서 매월 1회, 누구든 이 영화를 보실 수 있도록 열어놓고 관객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무료상영입니다

영화 <암살>(이준익 감독, 2017)의 주인공인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부부 독립운동가로 관동대지진 참상을 고발하고 널리 알리는 계기였다.

2017년 8월 30일 오전 10시 30분 부산항 제4부두 수미르공원 공원에서 초혼제사 시낭송 헌주재배 살풀이 춤 유족헌화 등을 통해 유가족들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추도식을 치렀다. 이때 필자의 추모시를 행사에 참석한 윤종목 시인이 낭송하였다. 이어서 오후 2시 부산시 국립일제강제동원 역사관에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희생자 유족회 발족식과 기자회견을 통해 본격적인 국내 유가족들과의 추모를 함께 하는 첫발을 내딛었다. 기자회견장에는 사진전 영화상영 유족회 결성 메시지 낭송 기자회견 등으로 이어졌다.

2018년 10월 진관사 국행수륙재 치르며 주지 계호 스님과 총무스님 법해 스님의 관심과 배려로 새로 이름이 밝혀진 제노사이드 희생자 위패를 모셨다.

2021년 2월 21일 KBS <역사저널 그날>에서 다룬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에서 자료로 제공된 관동대지진 제노사이드를 다룬 오충공 감독이 제작한 영상을 보고 제작진들이 녹화하면서 울음을 터트려 중단되었다는 후문이다.

2023년 9월 1일 100년 간토대진재 제노사이드 즈음에 상영할 예정으로 막바지 작업 중이다. 2022년 5월 도봉문화원에서 개최한 ‘관동대지진 한국인학살 100년 맞이’ 세미나 후 발족한 관동 조선인 학살 100주는 일본 현지 위령의 종루 보수 및 추모문화제 추친위원회가 결성되었다. 11월 14일 일본 지바현 관음사 보화종루 보수작업 후원 성금 모금에 준비 모임으로 현지에서 한국 모금단체와 일본 현지 후원단체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의하였다.

세계 유일 최초로 관동대지진 관련 다큐를 제작하여 국내외 언론과 영화 관계자 및 뜻 있는 분들의 관심과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각종 영화제에 초청·상영과 수상을 하였다. 2023년 3월 10일 명동성당 내 꼬스트홀에서 시상하는 제25회 지학순정의평화상을 수상자로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