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수도권에 사는 고향 깨복쟁이 친구들
코로나 이후 전원 첫 모임
시청역 내려서 덕수궁 정문 앞에 질로 먼저 도착한 애순이와 종춘이는 말을 걸고 몇 마디 나누고도 둘이 서로 알아보지 못했다
뭐시기 거시기 그놈의 마스크 탓으로 돌리기엔
거시기 뭐시기 오매야
아무리 근다고 그래야 쓰겄어

덕수궁 돌담길을 돕시러
남는 것은 이것뿐인께
이리들 서서 잘들 폼 한번 잡어봐
사진 몇 방 박고서
중명전 을사늑약 조인식
을사오적 낯바닥 확인하고
돈의문역사박물관 휘돌아
골목길을 나오며 혀를 찬 뒤

대구탕으로 점심 먹고
시인 이상 윤동주 노천명 김광규 화가 구본웅 거주지와
살아 서촌 죽어 망우
망우역사문화공원 화가 대향 이중섭
흥사단 단우 재림교인 독립운동가 시인 허연
<우리나라 꽃> 작곡가 함이영
우리나라 최초 임업시험소 고원인 아사카와 다쿠미
또랑시인 묘지기인 빈궁문학 최고봉인 떠돌이 서해 최학송 사망진단서 주소지인 체부동 118번지 등을 기웃대며
차 마시려 서촌까지 진출했으나
아홉명 자리가 없어서

밀려 밀려 들어선 곳이 아 글씨
고향인 함평 읍내 기각리 출신에다 갑장인 박노해사진전 '아이들은 놀라워라'가 열리는 라 카페 갤러리
커피 향이 초미세먼지를 막아내는 카페 안 화분에
피고 지는 동백꽃이 향수를 불러내
구로공단 공돌이 공순이 시절부터
천리 먼길 서울살이 서러운 세월을 달래준다

늦은 오후 보안여관 지나다 동리와 말당 선생님 동인지 '시인부락' 끄집어내 펼친 뒤
몇 발 걷다 두 눈에 확 띄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신학철 선생님 전시장인
인디프레스 갤러리 들어가
대한민국 근현대사 인물들 모타놓은
그림이 걸린 계단에서 손구락욕으로 몇 분의 낯짝을 가리켰다

생일이 같은 삼기 아재는 이른 오전 출생이라 코 훌쩍일 적부터 지금까지 여자가 들끓고
또랑시인 오후 술참 한참 뒤에 태어나
늦바람 콧구멍 스치다 뚝 끊겼다고 놀래먹는 처지인디
삼기 아재 '갑돌이와 갑순이 시리즈' 앞에 서서
카섹스 원조가 여기 있네
대번에 알아봐
한 바탕 큰 웃음 바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