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밤
눈분패 몰아치고 강치한 밤이면
충신각 뒤 소나무 숲
진주성싸움 마지막 전투대장 성재공 감 하내 말무덤 언덕의 움집에
6.25 전쟁 피난민으로
공달에 태어나서 장가 들지 못하고
온동네 허드렛일 거들어 끼니를 이어가다
이제 늙고 병들어
이집 저집 돌아가며 밥을 얻어 먹어
어른들은 못간양반
아이들이 놀래먹은 공달이는
밤새 잠을 못 이뤄 뒤척인다
뒷산의 내려 쌓인 눈으로
곰솔 가지 부러지는 소리에
문풍지가 울어대는 밤이면
할머니는 손자 셋 앞세워
움집에 쌓인 눈을 쓸어내고
새벽이면 대빗자루 가래질로
숫눈길 길을 내
거적때기 문 앞에
고봉밥과 시래기국 내려놓고
돌아오는 손주들 등 뒤에
철성산과 수박재 사이에 물드는 여명과
대나무 이파리에 소복한 눈이 내리 쏟아져
대밭의 죽로차 새순이 멱을 감고
집집이 굴뚝마다 연기가 피어올라
감나무 까치밥을 발갛게 휘감고
우데미 아래데미 고샅을 내달리다
당산나무 키를 넘는
아침밥 뜸들이는 냄새에
구렛들 눈 덮인 보리밭을
헤치던 까치 떼가
당산나무 둥지로 날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