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1923년 9월 3일 윤치호 진판옥 HY생 일기

정종배 2023. 9. 3. 02:03

김교신 최태용의 스승인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 아쿠타가와상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도 자경단원으로 활동하였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의 담론으로 알려진
자연재해를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징벌로 생각하여
재난을 계기로 민심의 쇄신을 꾀하는 천견론天譴論 등으로 조선인 대학살을 변명했다.

1923년 9월 3일 신문 기사와 윤치호 진판옥 HY生 일기

일본 유사 이래 초유의 대지진에 대한
1923년 9월 3일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사 요약
염려되는 조선인의 소식
동경 부근에 흩어져 있던 수천의 학생과 노동자
그네의 생사존몰은 과연 어찌 되었는가?
아아! 일본의 큰 지진! 동경의 큰불!
그 같은 참상을 겪게 된 조선사람의
동경 유학생의 안위는 과연 어떠한가?
다행히 방학 중임으로 유학생의 대부분은 아직 고향에 돌아와
그저 거주 중이라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으나
방학이 되어도 사정에 끌려서 동경에 남아있던 학생들과
노동에 골몰하여 고향에 돌아올 뜻도 없고 마음먹지 못한
고학생들이 수가 거의 일천 명에 이르렀다
그들의 생사는 아직까지 조사할 길이 끊어져 있는 것이다
고학생이 제일 많이 있는 심천구[深川區] 천초구[淺草區]가 전멸이다
구사일생을 얻게 된 동포가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애호하는 자질을 가세가 빈한한 탓으로
외지에 고학을 보내고 방학이 되나 만나보지 못하여
가뜩이나 애를 끓은 부모의 애는 마디마디 끊는 일 것이다
그 외에도 동경 부근에는 조선인으로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이 매우 많아서
그 인명 수가 실로 학생 이상의 다수인 바
그네들은 하기방학도 없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을 터인즉
그네의 생사존몰은 실로 멀리 앉아 듣는
우리들의 애를 끓는 문제라 하겠다

윤치호(친일, 제국의회) 일기 1923년 9월 3일 월요일
‘통신이 두절 된 탓에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도 있긴 하지만, 도쿄와 요코하마가 거의 완전히 파괴된 것만큼은 틀림없는 모양이다. 15만 명이 화재, 해일, 기아, 열기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되었다. 9월 1일 오전 11시 50분쯤 대지진이 발생해, 24시간도 채 못 돼서 대도시인 도쿄와 요코하마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세계대전에서 과학의 파괴력이 증명되었으나, 이번 대지진을 통해 과학의 무기력함이 여실히 입증되었다. 이 두 사건을 통해 인간이 탁월하다는 게 얼마나 불안한 일인가를 엿볼 수 있다’ - (역사비평사, 2005)

1923년 9월 3일 월 날씨 청 기온
四時 頃에 起床하였다. 洗手를 하고 河錫柱 氏하고 오늘부터 避難을 하기로 約束을 하였다. 昨夜에 밖에서 하룻밤 밝히고 온 사람이 兵隊들이 韓人을 取調한다기에 이 時期를 利用하여 무슨 活動을 하는가 한 感이 들더라. 粥 한 그릇씩으로 요기를 하고 主人公을 作別하고 河公과 同伴하여 品川便으로 向하고 出發하였다. 사람이 混雜하여 오고가고 避難하는 中에 兵隊들 온거리 々々 지켜서々 鮮人을 取調하더라. 그中에도 內閣 組織은 하여 電車에다 廣告를 붙였더라. 또 橫濱은 變化라는 廣告가 붙어있었다. 그리되어가는 中 河公은 한번 取調를 當하고 次々로 피하여 品川이란 곳까지 이르렀다. 日本人들이 퇴머리를 하고 가라고 하기에 수건을 내어 퇴머리를 하고 거기서 바로 魯炳春 君을 訪問하였다. 아직껏 오지 않았다고 하기에 또 出하여 河公과 같이 電車 終点에 막 넘어서니 日人들이 막아서々 오는 住所를 묻고 人種 區別을 찾더라. 그래 韓人이라고 하였더니, 대번 그 곁 派出所로 가자고 하여 따라갔다. 대강 取調를 받고 警察署까지 가자고 하여서 따라가는 中 거리々々 창든 놈, 몽둥이든 놈
其外 여러 가지 연장을 들고, 툭々 사람에게 던지더라. 어느 영문인 줄 모르고 警察署까지 이르렀다. 나 혼자만 잡혀왔는 줄 알았더니, 여러 同胞가 있더라. 事實 罪는 없으나 日記冊 하나가 있어서 夛小間 거치않게 생겼더라. 住所 姓名을 알려준 다음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앉았다. 벌써 点心 때는 겨우고 이제나 내줄까 저제나 내줄까 하였으나 오늘 해가 마치도록 내여놓지를 않았다. 이제까지 아무 영문인 줄 몰랐다가 우리 同胞한테 들어서 알았다. 橫濱에 있는 鮮人 로가隊들이 平素에 日本로가대들과 일을 할 제 意味없이 많이 맞아 죽었음을 원통
케 알고 있다가 마침 이 機會를 타서 活動을 하자고 술들을 먹고, 우물에 다 藥을 풀고, 불을 놓고 한 일이 있었는 貌樣인데, 朝鮮사람이 二千名이 총칼을 들고 東京으로 向하고 온단 말이 있어々 朝鮮人이라고는 경찰서에서 잡아가고 靑年團, 民間自警團들이 나서 鮮人이라고는 搏殺을 시켜 鮮이라고는 依支할 곳 없이 죽게 되었다. 나중에 事實을 調査하여보니 虛言이었어서 平難들을 시키려고 다녔었다. 밥은 먹지 않아서 배는 고픈데 저녁이 되어서 한숨 자고 나니까 玄米밥 주먹보다 작은 걸 한 덩이 갖다주기에 요기하고 또 오그리고 잤다.

- 「진판옥 일기」, 박경하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소장하여 제공함.

9月 3日
早朝에 3人이 議論 - 배 곱흐고 갈 데 업고 危險하고 - 남아 잇는 市社會局으로 行 - 3人이 가티 社會局救護班이 되여 群衆에게 주먹밥을 - 鮮人이 다이나마이트 投下라는 所聞 - 人心恟恟 - 群衆鐵棒과 長劍을 携帶 - XXXXX으로 月島에 避難한 5萬名을 XX하엿다고 所聞 - 사람마다 殺氣가 등등 - (同志 H와 S는 日本人이엿스나 그러나 그 混亂中에도 最後의 日까지 生死를 가티 하야 나의 本色을 감차 주엇다) - 午後 4時 替番하야 社會局 3層으로 - 모혀잇든 班員 一同도 激奮하야 人心이 騷亂 - 夕暮 -
져녁때 上野에서는 數萬群衆이 사흘재 굴멋다는 消息이 왓다. 그리하야 다시 한 分隊를 組織하야 가지고 그리로 가게 되엿스나 나는 엇지할가 - 하고 여러 번 망서리다가 필경은 가기로 決心하고 말엇다. 왜 그런고 하니 2人의 親友를 떠나 혼자 단이는 것도 조금 자미가 업지만 첫재 먹을 것이 업스니까. 그리하야 午後 7時까지는 캄캄한 때에 이르러 一同은 貨物自働車를 타고 上野로 향하게 되엿다. 一行은 40餘人이고 自働車는 4臺이엿스나 玄米와 간쓰몌 等屬을 잔득 실허 지금 생각하여도 도모지 어듸몌 달녀 갓섯는지 까닭을 모를 일이엿다. 간신히 火災를 면한 東京府廳 압헤는 騎馬巡査와 數만흔 憲兵이 느러잇고 四方으로 派遣되는 數十臺의 自働車가 큰길가에 길게 서 잇섯다. 暗黑한 街上의 群衆의 雜踏이며 地面에 끌니는 鐵鎗의 소리! 騷騷한 가운대도 狀大하고 무서운 沈黙이 繼續되나 때때로는 喊聲과 悲鳴이 끈일 사이 업다. 그 중에도 심하든 이 第3日의 밤을 누가 佛蘭西의 恐怖時代만 못하다 하리요. 煤煙과 惡嗅에 눈코는 거의 그 本能을 일흘 地境이요 타죽은 屍軆는 길가에 너저분하엿다. 아무리 生覺하여도 이 世上일 갓지는 안이한 人間의 生地獄을 通過하고 自働車는 須田町까지 이르럿다. 아아! 須田町의 慘狀! 鋼像만이 悄然히 서 잇는 것도 悲慘의 全部를 말하는 듯. 아직도 타는 中인 架空의 다리 밋을 지내엿다. 그러나 다다른 萬歲橋는 임이 斷絶이 된 後이고 바로 上野를 갈 수는 업시 되엿다. 할 수 업시 돌아서 泉橋方面으로 向하엿스나 그러나 泉橋에도 電車의 線路만 남아 잇슬 뿐이오 다리의 形骸조차 업는 밋흐로 검은 물만 흐르고 잇섯다. 그리고 그 附近에는 自警團과 決死隊員이 數十名 鐵棒과 銃劍으롊� 一行을 막으며 너희는 누구이냐? 하고 물엇다. 그 近處에는 自警團의 交通 遮斷으로 通行하는 사람은 하나도 볼 수 업섯다. 그러나 몃 마대의 問答이(37) 잇슨 後에 社會局의 救護隊임을 알고 通過를 許諾하엿다. 그러치만 自働車로는 건널 수 업고 하야 運轉手에게는 븬 車를 가지고 松住町으로 도라가 보라하고 사람만 근너 가기로 되엿다. 그러하야 한 사람씩 - 떠러지면 풍덩이지만 - 線路를 타고 가만가만히 한 졀반 근너섯다. 그러나 마침 그때이엿다. 이 때에 自警團의 探偵員 數名이 달녀와 急告하야 曰 小傳馬町 附近에서 OO 50名이 XX을 손에 들고 襲來하야 온다고-. 설마 아무리...라고 하엿스나 境遇가경우이다. 爆彈이란 바람에 도장 - 왈자를 치던 自警團도 「小傳馬町이면 바로 요긔이다!」하고 다라나는 친구 걸녀 떠러트린다고 樓上의 線路우에 鐵索을 가로 매다가 잘 되지도 안으니까 고만 殘灰黑煙 속으로 사라져 가는 친구, 가진 各色으로 덤비엿다. 事實 찜찜하엿다. 캄캄은 하고 四方에서 쾅- 쾅- 하는 소래가 火藥庫의 터지는 소리인지 工兵의 危險物爆破인지 혹은 그러치 안으면 다른 그 무엇인지 當時에는 아무리 冷靜히 생각하여 보려도 그런 餘裕는 생기지 안엇다. 그러나 캄캄한 중에 뿔뿔이 도망질하야 가기도 실코 그대로 서 잇슬 수도 업고 急急한 語調로 한참 議論이 분분하다가 及其也 上野로는 中止하고 그만 도라가기로 되엿다. 그리하야 第一 뒤에 섯든 車부터 머리를 돌녀 가기 始作하엿다. 그리고 내가 타고 오든 압섯든 車는 도라갈 때 第一 뒤스게 되엿다. 그런대 이 運轉手가 원수에ㅅ 것이엿다. 조금 運轉을 始作하다가 딱 멈츄고 나서 고개를 끼웃둥 끼웃둥 하고 하는 말이 「으응 나는 그 생각은 못하엿드 니 으응... 암만해도...」
別 말이 안이라 10餘人이 탄 이 自働車 안에도 OOO이 탓슬넌지 모르겟다는 말이엿다. 當時에는 누구나 XXX이란 석字에는 莫大한 恐怖心을 갓고 잇섯든 터이다. 그리고 누구나 依例히 죽일 것으로만 알고 잇섯다. - 나는 이에 한 마듸 하야 두고저 한다. 나는 民族主義者는 안이다. 나의 本主義는 또 다른 곳에 잇지만 그 方面으로 말하자면 人類主義者이다. 震災통의 XXXXXXXX 悲慘한 事實에 대하여서는 眞心으로의 熱淚를 禁치 못하는 터이나 또한 當時의 混沌한 情狀과 混錯한 心理狀態를 생각하야 엇지할 수 업는 彼此의 不幸으로 돌녀둘 수 밧게는 업지 안이한가 생각한다. 第4日의 午後에 나도 엇더한 光景을 目睹하고 엇더헌 感情이 잇섯는지 지금에 그것을 말할 수도 업스나 日本이나 露國이나 中國 米國을 勿論하고 다 갓흔 同胞로 보는 눈으로는 또한 저편의 當時 情狀을 돌려 생각하야 주는(38) 것이 반듯이 무슨 妥協이랄 것이 안이며 所謂 무슨 親日派라는 名目아레 辱하지 안아도 조흐리라고 생간한다. 그것도 亦 一種의 群衆心理라 할는지 헛소문(이것이 第一原因이지만)이나 或은 非常한 境遇에 이러난 악에 밧쳐 한 것이라고 할 수 밧게 - 愛子를 일흔 父母의 마음은 몰나도 몃 번 죽을 번 하다 말은 나쯤은 그만하면 足하리라고 생각한다. 안이 足이니 不足이 니가 안이라 서로히 不幸으로 돌리고 말 수 밧게 업다는 것을 - 이야기가 조금 느젓스나 한 마듸 하여둔다.
이야기는 다시 도라가나 何如하든 그 때에는 XXXXXXX 모도 죽일 것으로만 알엇다. 갓치 단이든 H와 S는 조금 類 다른 사람이니까 日本人이라도 넉넉히 安心할 수 잇스나 갓치 타고 갓든 남아지 10餘人은 전혀 모르는 - 멋도 모르고 XXXXX면 奮慨하는 者들이엿다. 그 자리에 나의 行色이 탄로 낫드면 여긔 안저 이런 것을 쓰게도 되지 안엇슬 터이나 兩君이 시침 뚝 떼고 하는 雄辯으로 겨오 그 자리는 免하고 말엇다. 그러나 지금 안저서는 이와 갓치 마음 편한 소리를 하는 터이나 當時에는 여간이 안이엿다. 그야말로 「죽엄」이란 것이 코ㅅ날에 와 부튼 때이엿단 말이다. 쇼펜하우엘의 影響을 밧아 「自殺」을 自己의 天職으로 알고 잇든 떄도 업지 안엇스나 이 때만은 죽은 것 갓치 실코 무서운 것은 또다시 업는 것으로 참말 마음것 아라먹엇다.
何如하든 살엇다. 그리하야 自働車는 도로 가기가 되엿다. 그러나 재수업시 떠드는 運轉手로 因하야 먼저 간 세 채는 보이지도 안엇다. 아모리 速力을 내인대도 보이지 안는 것이라 엇지 할 수 업고 혼자 떠러저서 도라서고 보니 뒤떨미에서 XX이 날나 들어오는 것만 갓다. 황소 반마리는 어듸서 낫는지 싯뻘건 고기떵이 우에 玄米가 몃 包袋. 그리고 그 우에 올나서서 바라보는 暗黑한 市街의 慘憺한 光景과 엇지 되여 갈는지 모를 自己의 運命! 이것들을 이름지여 現實이라 부를 수는 到底히 업슬 뜻 하엿다. 등뒤에서는 무엇이 날나오는 듯허나 悲壯이라 할는지 壯快라 할는지 모를 이 때의 全景도 안이 바라볼 수는 업섯다.
한참 가다가 自働車는 또 停止되엿다. 지금은 때 느젓는대 어듸로 가야 갓가우냐-는 議論이다. 애써 오든 지긋지긋한 그 길로 도로 가기는 자미업다는 말이엿다. 외따로히 가기는 맛찬가지이니 아조 上野로 가보자는 結論이 낫다. 나는 그들의 하자는 대로이다. 말 참관한대야 利로울 것은 半點업겟슴으로 이래도 조코 저래도 좃코 조치 안아도 조코로 通用이다.(39)
車머리는 松住町 편으로 向하엿다. 언덕을 올나 本鄕 三丁目에 이르럿슬 때에 그곳은 警戒가 극히 嚴重하엿다. 그리고 「廣小路」까지의 사이에 數十名씩 몰키여 잇는 自警團이 數十處이엿다. 그리고 그들의 압을 지날 때마다 停止命令이 서리갓다. 발서 밤은 임이 깁혓스나 한 곳에서 調査밧는 동안이 한참씩 된다. 대단히 怯이 만흔 모양인 運轉手도 땀을 뻘뻘 흘니지만 長劍을 듸려대고 「그 안에 XXX업느냐!」 할 때마다 나의 가슴도 적지 안이하게 조릿조릿하엿다. 그 中路에 10餘번을 停車한 後이엿다. 運轉手도 하도 질력이 낫든지 한번은 命令이 잇슴을 不拘하고 그대로 내모라 보앗다. 왼거니! 아가가... 하고 數十名이 따라온다.
그 다음번 次例도 뿐이 뵈는 곳이니까 더 다라나도 所用이 업섯다. 달녀왓다. 부셔라 부셔라로 하나씩 들고 잇든 鐵棒으로 車軆를 亂打 - 그럿치만 사람 치지 안는 것만 萬幸이엿다. 때렷슬넌지도 모르나 運轉手가 얼핏 機械의 故障이라고 빌엇다. 그리고 社會局이라고 주어 댓다. 그러니까 社會局은 어듸 댄여왓느냐의 意味의 말과 「一般의 危險을 생각하야 XXX 잡으려는 줄 모르고 이 놈!」 하고 呼令이 秋霜 갓하엿다
上野에 到着되엿다. - 人山人海의 上野公園 - 때는 正히 11時 - 馬場先門에서 上野까지 自働車로 네 時間 - 途中에 死를 覺悟하기 그 몃 번! - 언제인가 音樂會를 구경하던 自治會舘이 群衆에의 炊出場 - 밥 짓는 가마는 즉고 列은 길다 - 밤을 새워가며 列을 지여서 잇는 그 끗은 어듸? - 한 덩이 엇기까지에는 4時間 半 - 꼿이 붓그러 할 어엿분 處女 - 가엽슨 어린애 - 제턱인거지 - 아라볼 수 업는 富者 -

一年이 되여 온 震災통 - 日記와 그 때의 回想 /  필자 HY生

2023년 9월 3일 오후 3시 중랑망우공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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