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덩이/정종배
응봉능선 높이와 깊이를
가을 가뭄 때문에
골골거려 흐르는 물소리가
단풍잎 향기를 실고서
한치의 오차없이 잘도 재며 흐른다
그 물소리 향기로운 노고를 아는듯
목청을 가다듬고 쉬었다 가라며
물소리 흰머리통 휘어잡아
웅덩이가 하얗게 받아준다
바위 위를 흐르는 물소리는 해맑고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바위 위에 고인물은 소리가 나지않고
그림자 뚜렷하고
제 눈 주변에 있거나
제 하늘을 지나가는 물체는 아낌없이 비춘다
철새들 날개짓도 울음소리도 한참을 놀다간다
고인물은 햇빛을 반사하여
나뭇잎 밑바닥을 물빛이 비춘다
단풍잎은 제 때를 잊지 않고
목숨 걸고 옷을 갈아 입는다
햇볕 받은 위쪽보다
밑에는 각광받지 못한다
고인물이 걱정을 덜어준다
작고 얕은 웅덩이로
눈에 띄지 않는 외진 곳을 비추는
물웅덩이 반짝이는 힘입어
골고루 비추는 물비늘로
이 가을 거듭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