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시

유기견

정종배 2018. 11. 15. 18:43

 

 

 

유기견/정종배

 

 

단풍잎이 가을볕을 거의 다 떨어트릴 기세다

내 삶의 계절도 때 맞춰 연식이 닳았다고

수능시험 감독관 탈락하고

불러줄 여인도 시들하며

집사람은 고구마만 구어놓고

새로 옮긴 작업실로 줄행랑

오늘 허리 곧추 세워

좌우이념 대립 월북 6.25 전쟁 중

평양에서 미군 폭격에 의한 사망으로

남조선 문단에서 사라진

고향 함평 읍내 출신

최석두 시인의 시집 <새벽길>을 독파하고

시는 현실이다 주먹쥐며

노을과 마실길을 걸었다

 

이른 봄부터 자주 마주친

유기견 삼형제 우애가 부러웠다

두 마리가 정분이 나 왕따 시켜

저 홀로 절둑이며 살아가는 유기견

설익은 눈으로 각별한 정을 줬다

나하고 동갑인 스물아홉 남편 잃고

어린 남매 앞세우고

익산에서 1번국도 타고 서울에 짐을 푼

아랫동생 걱정하던 심정이 되살아나

며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안부가 궁금했다

용출정 곁에서 마주쳤다

한 달만이라 반가워

눈에 확 들어온

땅에 끌린 젖무덤이 출렁였다

 

불편한 걸음걸이 몇 굽이 골목길을 쫓아갔다

단풍잎 절정인 공원식당 뒤편에 머뭇거린

어미개와 눈치 싸움 한참하다

단풍나무 숲 속의

새나 쥐를 사냥하는 것으로 여겼으나

식당 겸 함바집 바깥주인 대화 중에 궁금증이 풀렸다

 

은평뉴타운개발 시작하여

주민들이 정든 집을 떠나

지금 아니면 언제 아파트 살아보나

좋아라 들떠 처치 곤란한

견공을 내다버려

한때는 30여마리 밥을 줬다

어느 개는 2주 동안

버림받은 장소에서 꼼짝 않고 주인을 기다렸다

 

저 놈은 8형제로 다섯은 멧돼지 먹이감으로

희생되었는데

저 몸 불편한 녀석은 어찌 살아

저 혼자 새끼까지 기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로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며

안쓰러워 고기 섞인 밥을 주기 시작하니

굶주린 멧돼지 가족이

붉게 타는 단풍나무 울타리를 무너트리고

무단침입 자주하여 애먹는다

외갓집에 3년 넘게 요양하며

어린 자식 눈에 밟혀

몇 번이나 뛰쳐나온 어머니 마음이

저토록 붉게 타지 않았을까

 

식당은 바람받이 자리잡아

비닐천막으로 둘러싸

소나무와 단풍나무 숲 속 가장 나중까지

단풍잎 계절을 자랑하듯 즐기고

사람들의 마음을 꼭 붙들고 있으니

젊어서 즐겨먹던 개고기도 이젠 끊은 식당주인

유기견과 길냥이에게

먹이를 줄 자격이 충분하고

또랑시인 시보다 사랑이 차고 넘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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